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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효원 Jun 21. 2024

➇딸기는 오늘도 달린다

[김효원의 어쩌다 농부]

    

딸기는 매우 뛰어난 달리기 선수다. 

딸기에게는 나이키 러닝화를 신지 않아도 밤낮없이 부지런히 달리는 유전자가 아로새겨져 있다.


상상해보라. 딸기가 신발 끈을 단단히 조이고 맹렬히 달려 나가는 모습을.

설향과 킹스베리를 놓고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농사 카페 선배님께서 "일단 키워보라"고 나눔해주신 설향 모종. 


딸기는 러너와 씨앗 두 개로 번식한다. 그 의미는 다른 식물보다 2배 더 번식이 왕성하다는 뜻이다. 사람의 돈벌이로 치면 건물주로 월세를 받고 직장인으로 월급도 받는 형국이랄까.


따라서 한번 심어놓으면 주변으로 마구 번져나가 텃밭 전체가 딸기밭이 될 가능성이 크다. 나 같은 초보 농부에게 더없이 ‘혜자로운’ 식물이 아닐 수 없다.


농사를 시작하며 나의 모토가 무엇이었나 다시 상기해본다.


‘손이 많이 가지 않을 것. 알아서 잘 클 것. 병충해에 강할 것. 풀을 이겨낼 것.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될 것. 한 번 심어두면 월동하고 내년에 알아서 또 나올 것.’


딸기는 내가 원하는 조건을 모두 가진, ‘게으른 농부를 위해 신이 내린 식물’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다.


딸기를 심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 마트에 가서 딸기 한 팩을 사 먹는 대신 언제 달릴지도 모르는 딸기 모종을 주문하기 위해 휴대폰 검색 창을 열었다. 내일 지구가 망하더라도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는 웅장한 기분이 잠시 스쳐 가기도 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모종으로 파는 딸기는 크게 2가지 종류가 있었다. 설향과 킹스베리.


무엇을 사서 심으면 좋을까? 설향은 단맛과 신맛의 균형감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킹스베리는 일반 딸기보다 크기가 크고 당도가 높다. 따라서 한 입 크게 베어 물면 향긋하게 터지는 과즙미를 만끽할 수 있다는 정보를 얻어낼 수 있었다.


이왕 검색을 가동한 김에 조금 더 조사해본다. 설향은 충남농업기술원 과채연구소 논산딸기 시험장에서 개발된 국산 딸기 품종이다. 단맛 신맛 균형감이 좋다.


킹스베리는 충남농업기술원에서 일본 딸기인 아키히메를 대체하기 위해 10년 연구 끝에 개발한 품종으로 크기가 크고 과즙이 풍부하다. 킹스베리가 재배가 더 까다로워 가격이 조금 더 비싸다.


매향은 1997년 논산딸기시험장이 일본의 도치노미네와 아키히메를 교배해 탄생시킨 품종이다.  큰 원뿔 모양이 특징이다.


금실딸기는 설향과 매향의 교배종으로 과육이 단단해 식감이 좋고 새콤달콤한 맛이 어우러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현재 국내 유통되는 딸기 중 국산 품종 점유율은 96.3%(2021년 기준)를 넘는다. 20년 전에는 국산 점유율이 10%도 안 됐다. 당시 딸기는 대부분 일본 품종이었다. 2005년까지만 해도 일본 품종 점유율이 85.9%, 국산은 9.2%였다. 2006년 정부가 국산 딸기 육성 정책을 펼쳐 농촌진흥청 ‘딸기연구사업단’이 품종개발에 나선 결과 일본 딸기를 이기고 시장을 지배하게 됐다. 이쯤 되니 딸기 하나로 애국심이 차오른다.


현재 국내 시장에 유통되는 국산 품종 딸기는 18종으로 설향이 84.5%로 1위를 차지한다. 2위는 ‘금실’, 3위는 ‘죽향’, 4위는 ‘매향’이다.


여기까지 공부했으니 어떤 딸기를 심을지 결정이 명쾌해졌...을리가 있나. 두 품종을 다 키우고 있는, 농사 카페 선배님께 질문을 남겼다.


“설향과 킹스베리, 어떤 딸기를 심을까요?”


농사 카페 선배님의 답변은 나를 더 결정장애로 몰아넣었다.


“설향이 킹스베리보다 새콤함이 더 있구요. 딸기잼을 만드니 어릴 때 엄마가 만들어준 딸기잼 느낌 났어요. 저희 강아지가 딸기 좋아하는데 설향보다 킹스를 선호하더라구요.”


설향이냐, 킹스베리냐.


사람이 좋아하는 딸기냐, 강아지가 좋아하는 딸기냐.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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