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원의 어쩌다 농부]
조팝나무를 옮겼다. 마당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심었는데 자꾸자꾸 옆으로 번지더니 급기야는 사람 출입이 불편해질 정도로 세력을 키워 더는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초보 농사꾼 3명이 달라붙어 조팝나무를 삽질했는데 뿌리가 워낙 크고 깊어 온전히 캐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제일 큰 뿌리를 삽으로 뚝 끊어준 후에야 겨우 조팝나무를 들어 올릴 수 있었다.
조팝나무를 어디에 옮겨야 대대손손 자리 옮김 없이 잘 자라줄까 심사숙고한 끝에 마당 한 켠 감나무와 감나무 사이로 결정했다. 물을 듬뿍 주었지만 큰 뿌리를 잘렸기 때문인지 조팝나무는 여러 날 몸살을 했다. 힘을 내라고 응원했지만 5분의 1 정도의 잎만 겨우 살아남았다. 처음부터 제 자리를 잡아주지 못한 집사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조팝나무에 미안했다.
자리를 잘못 잡아준 것은 조팝나무뿐이 아니다. 마당 한 가운데서 풍성하게 핀 분홍 꽃을 보고 싶어 심었던 겹벚꽃 나무는 우량아 선발대회에 나가면 1등 할 만큼 무럭무럭 자랐다. 가지 지름이 엄지손가락만 한 걸 심었는데 3년 만에 손목만큼 굵어졌다. 그늘도 꽤 크게 만들어 벚나무 밑은 작물 심기가 애매해졌다. 벚나무가 이렇게 빨리 자라는 나무라는 걸 왜 몰랐을까.
검색해보니 벚나무는 속성수라고 한다. 빨리 크는 나무. 나무도 빨리 크는 나무, 더디 크는 나무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아니, 그럴 거라고 어렴풋이 생각했지만 도시에서 나는 바빴고 관심 둘 것이 많았다. 나무가 일 년에 얼마만큼 크는지는 나에게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심지어 겹벚꽃이라고 나무사장님이 준 나무는 홑 벚꽃이었다. 홑 벚꽃이면 꽃이 먼저 나고 잎이 나야 하는데, 이 나무는 잎이 먼저 나고 꽃이 나서 이 나무가 벚나무라는 걸 알아채기 어렵다. “나무사장님 왜 저에게 이런 시련을 주셨습니까?”
뿌리가 얼마나 뻗는 나무인지도 반드시 점검해야 할 중요한 요소다. 나무마다 뿌리의 특성도 제각각이다. 키는 작지만 뿌리는 크고 깊은 나무, 키는 크지만 뿌리는 작은 나무, 키도 크고 뿌리도 큰 나무…. 사람으로 치면 외유내강, 외강내유, 외강내강 식이다. 대나무는 뿌리가 하도 잘 번식해 집 가까이 심어서는 안 되는 수종이라고 한다. 조금 과장하면 집 가까이 대나무를 심으면 구들장을 뚫고 나오는 죽순을 발견할 수 있다고.
얼마 전부터는 큰금계국이 새 골칫거리로 급부상했다. 노란색이 예뻐서 담벼락에 조르르 심었는데 쑥쑥 잘 자라줘 흐뭇했던 마음도 잠시. 큰금계국이 뉴스에 나오는 게 아닌가. 북아메리카에서 온 여러해살이풀인 큰금계국은 국립생태원이 외래식물 유해성 2등급으로 지정한 ‘생태계 교란종’이라는 것. 큰금계국이 뿌리와 씨앗 등으로 전방위로 번식하기 때문에 땅을 점령해 토종 식물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단다. 큰금계국이를 퇴출시켜야 하는 숙제가 생기고 나니 잘 자라는 모습도 어쩐지 미워 보이기 시작했다. “오라고 할 땐 언제고 이젠 가라고? 난 못 가!”하는 큰금계국이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농사 카페에서 “소나무 옮기고 싶어요”, “대나무 어떻게 죽일까요” 이런 질문이 올라오면 남 일 같지 않아 유심히 보게 된다.
미래를 내다보는 눈은 어디에서나 필요하다. 공부도, 일도 그렇고, 사람과의 관계, 주식까지 그렇다. 낭만적(?)으로만 접근했던 시골 농가주택의 나무심기는 훗날을 내다보지 못해 대부분 원점으로 돌아갔다. 식물이나 나무를 공부 없이 마구 심어대다가는 ‘심고 또 심고’, ‘옮기고 옮기고’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다. 심고 보자가 아니라 (알아) 보고 심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