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원의 어쩌다 농부]벌써 2년차
전날 과도한 노동으로 실신한 듯이 자고 있을 때였다.
쾅쾅쾅쾅.
뭔가가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 사람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여봐요. 계세요.”
나는 누구이고 여기는 어디인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벌떡 일어났다. 흘끗 시계를 보니 오전 5시였다. 현관문을 여니 이웃집 어르신이 서있었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하다 들른 모양인지 곁에서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고 있다.
“무슨 일이 있으세요?”
나는 잘 떠지지 않는 눈을 부릅뜨고 부스스한 머리를 끌어내리며 물었다. 간밤에 동네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는지 불안한 마음이었다.
이웃분은 별 일 아니라는듯 태연 작약한 표정으로, 태풍이 오기 전에 집과 바싹 붙어있는 나무를 베어야겠다고 했다. 이웃분 집 뒤쪽이 우리 집 산이므로 우리 집 나무를 베도 되는지 허락을 받으러 오신 거였다. 자고 있는 사람을 깨워서 해야 할 만큼 시급한 일은 아니었다.
나무를 베는 일은 개인이 임의대로 결정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나는 “면사무소에 문의해 보고 말씀드리겠다”라고 설명하고는 새벽의 방문객을 보내드렸다.
여름이어서 날이 일찍 밝는다고는 하지만 오전 5시는 새벽에 속하는 시간이다. 서울에서라면 새벽 5시의 방문객은 상상할 수 없는 노릇이다.
대문이 없어서 이런 일이 생긴 거라고, 가을에는 꼭 대문을 만들어 달아야겠다고 중얼거리다가 다시 잠을 청하려고 자리에 누웠다.
그때 또다시 자그락자그락 마당에서 누군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당에 깔려있는 파쇄석때문에 또렷한 발자국 소리가 전해졌다. 아! 또 방문객이다.
문을 두드리면 나가려고 몸을 일으키고 기다리는데 더 이상의 기척이 없다. 의아한 마음에 창문을 내다보니 또 다른 이웃분이 우리 집을 방문했다가 돌아나가는 뒷모습이 보였다. 우리 집 평상 위에는 이웃분이 올려둔 게 분명한 배추 한 포기와 브로콜리 한 개가 놓여있었다. 시계를 보니 5시 30분이었다.
감사 인사를 드려야겠기에 서둘러 문을 열고 나가 이웃분의 뒤통수에 대고 “감사합니다”라고 소리쳤다. 저만치 가던 이웃분이 몸을 돌려 다시 우리 집 마당으로 들어왔다. 아침에 반찬 해 먹으려고 뽑았는데 먹어보라고 가져왔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더운 여름에는 낮에는 일을 못하니까 새벽과 저녁에 일을 해야 한다고 조언해주셨다.
그러고 보니 한낮에 왜 맨날 우리 집 식구들만 풀을 뽑고 있었는지 이해가 됐다. 동네분들은 다들 우리가 잠자고 있던 새벽에 일을 하고는 한낮에는 시원한 집안에서 더위를 피하고 있었던 거였다.
요즘에는 새벽 4시쯤 일어나 아침 먹기 전까지 일을 하신다고 했다. 온 동네 사람들이 새벽 4시에 움직이기 시작하니까 새벽 5시는 이웃을 방문하는 시간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친척 아재가 감자 한 박스와 마늘 한 접을 가져다 주고 가신 시간도 오전 7시 전후였다. 오전 7시는 서울의 오전 10시쯤 되는 기분이었다.
농촌의 시간을 이해하게 되자 새벽 방문객 때문에 단잠을 깬 일이 도시와 농촌의 라이프 스타일에서 오는 차이임을 알게 됐다.
여름에 폭염속에서 밭에서 일하다가 온열질환으로 사망하는 사례가 해마다 발생한다. 특히 올여름은 장마철에 비가 내리지 않았고 37도를 넘나드는 폭염이 지속돼 전국에서 온열질환자가 속출하고 있다고 한다. 무더위 속에서도 농부는 밭으로 가서 농작물을 돌봐야 한다.
농촌에서 조금이라도 땀을 흘려보면 마트에 진열된 농산물을 사먹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를 알게 된다. 물론 우리가 먹는 쌀과 채소, 과일은 농부가 공짜로 주는 것은 아니다.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우리가 우리의 저녁을 기대하는 것은 푸줏간 주인, 양조업자, 제빵업자의 자비심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이익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의 인류애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자기애에 호소하며, 우리의 필요가 아니라 그들의 이익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물론 농부가 땀 흘려 농사를 짓는 것은 돈을 벌어 생계를 이어가기 위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도 뜨거운 햇볕을 맞으며 한줌 바람도 없는 더위속에서 땀 흘려가며 풀을 매고 열매를 가꾸는 일은 에어컨 돌아가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과는 비교하기 힘들만큼 어려운 일이다. 심지어 돈만 생각하면 농사는 더더욱 계산이 나오지 않는다.
우리 시골만 해도 농사짓는 분들의 연령대가 칠팔십이 넘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젊은 사람이라고 해봐야 오육십대다. 이분들이 농사를 그만두면 앞으로 농촌에서 누가 농사를 짓게 될까. 상상만으로도 아찔하다.
5도2촌 덕분에 여름에 땀흘리는 세상 모든 농부님들의 소중함을 느끼며 그 분들의 건강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