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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선택한 가족

가족

by 미립

내가 선택하지 않은 가족이 있다. 남해 출신으로 축구와 등산을 좋아하는 공돌이 출신 사업가 아버지와 진주에서 태어나 명문고를 졸업했으나 집안 사정으로 대학은 다니지 못하고 가정 주부로 한 평생을 살아온 어머니. 노래에 재능이 있었지만 취미와 생계를 비교적 냉정하게 분리하고 국내 최대 식품회사에 취업한 누나. 남편과 아내, 딸 하나, 아들 하나라는 20세기 인류 문명의 표준과도 같은 4인 가족이다.


평균 이상으로 공통의 유전자를 공유하는 혈연 가족의 구성원들은 참 닮은 점이 많다. 아버지와 나는 키도 체형도 비슷하고, 친척들의 증언에 따르면 전화를 받는 목소리는 거의 똑같다고 한다. 웜톤의 피부를 공유하는 아버지와 누나, 쿨톤의 어머니와 나처럼 서로 편을 갈라 닮는 경우도 있다. 네 사람은 먹성도 기호도 체질도 비슷해서 조금만 방심하면 금방 살이 찌는 것마저 닮았다. 서로 아끼고 사랑하지만 행동이나 말투는 다정하지 않은 것도, 서로 싫은 소리를 해도 그리 오래 담아두지 않고 금세 헤헤거리는 것도 비슷하다.


닮은 사람을 사랑하지 않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다만, 마음을 주면서도 나는 늘 겉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거기에는 취향의 이질감, 또는 그 차이를 만들어낸 가치관의 차이가 있었다.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내가 중학생, 또는 고등학생일 때 주말 저녁마다 반복되었다. 부모님과 누나가 TV앞에 모여 주말드라마를 보며 하하호호 웃음꽃을 피우고 있으면, 나는 혼자 방에 들어가 음악이나 라디오를 들었다. 온 가족이 함께 영화를 볼 때면, 혼자 지루해하거나 혼자 감동을 받는 일이 반복되었다. 스무살이 가까워졌을 때부턴 사회적인 이슈가 밥상머리에 올라올 때마다 1:3으로 배틀이 붙곤 했다. 여러 사회 집단에서의 경험은, 나를 제외한 나의 가족들이 나보다는 더 중심에 가까운 사람이라는 걸 알려주었다. 그래서 나는 늘 세상의 가장자리를 걷는 기분으로 살아왔다.


내가 선택한 가족과 함께한다는 것은 삶의 원심력을 다시 설정하는 것과도 같다.


가치관을 공유하는 남편과 아내. 그리고 그 두사람과 이상하리만치 삶의 태도가 닮은, 길거리 출신이면서도 우아하고 순한 겁쟁이 강아지. 이렇게 셋이 내가 선택한 지금의 가족이다.


이 가족에는 가장자리가 없다. 모두가 일상의 중심이 된다.


내가 선택한 가족은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한다. 싫은 마음이 가장 큰 건 아마도 나다. 하지만 티를 많이 내는 건 강아지다. (영원히 아가로 사는 귀여운 존재의 특권이다.)


우리는 제주를 좋아한다. 서울보다 마흔 두배(서울의 인구밀도는 제주의 42배이다)나 넓은 땅을 눈과 발로 담을 수 있는데 거기에 아름다운 바닷가, 귀여운 오름, 제주 어디서나 보이는 웅장한 한라산이 있다니. 걸어서는 닿을 수 없는 곳에 내가 선택한 가족을 보내기로 한 이유다.


늘 함께이고 싶은 가족이지만 더 좋아하는 공간에서 함께하는 미래를 위해 잠시 떨어져 있기로 했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가족과 우리가 선택한 곳에서 함께 살 수 있을까.



[커플북] 주말 부부는 그뭐냐, 그거다. 제주편 - 아내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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