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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ha Oct 11. 2020

취향과 가치관

우리는 왜 우리가 먹는 방식으로 먹을까?


우리는 왜 우리가 먹는 방식으로 먹을까?


나는 카레를 김치보다는 단무지와 먹는다.

흰 쌀밥보다 현미밥을 선호한다.

무늬가 없는 단정한 접시에 음식을 담는 것을 좋아한다.

나의 식사 취향이다.


나는 이제 멸치 대신 채소로 밑 국물을 우려낸다.

볶음밥이나 면 요리에 고기와 해산물을 넣지 않는다.

우유 대신 귀리 음료로 라떼를 만들어 마신다.

나의 식사 가치관이다.


취향은 좋아하는 것, 즉 선호의 방향이고 가치관은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믿음의 방향이다. 하지만 취향이냐 가치관이냐 칼로 자르듯 정확하게 나누기는 어렵다. 우리의 행동에 늘 명확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있더라도 꼭 한 가지가 아닐 수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왜 우리가 먹는 방식으로 먹을까? 입맛에 맞아서, 편리해서, 다이어트 중이어서, 환경에 부담을 덜 주기 위해서, 건강을 챙기려고, 동물권을 위해서, 소속감을 느끼려고…… 수많은 이유가 있을 수 있고 또는 "그냥. 누가 먹는 것에 이유를 생각해?" 라고 할 수도 있을 테다.


채식 카레와 단무지의 조합은 사랑






고기를 먹지 말자고 다짐한 후 첫 몇 주는 너무 어려웠다. 고기가 들어있지 않은 음식 찾기가 불편했고 새로운 레시피를 시도하는 과정이 어색했다. 어느 날은 자장면이 너무 먹고 싶은데 채식 자장면이 동네에 없었다. 그날은 참다가 그냥 먹어버렸다. 취향만 있고 가치관은 없는 식사를 30여 년간 이어왔기 때문에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나에게는 먹기 싫은 것이 있을 뿐 먹으면 안 되는 음식은 거의 없었다. 입에서 당기면 먹으면 그만이었다. 뭐가 문제인가? 내 삶이고 내 입인데 말이다. 개고기, 푸아그라, 샥스핀 정도만 먹지 않았다. 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뭔가 잘못되었다는 인식 때문에 찾지 않았다. 물론, 내가 먹지 않아도 죽을 개는 죽겠지만 그럼에도 내가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다가 돼지를 먹지 않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내가 먹지 않아도 죽을 돼지는 죽겠지만, 그 돼지를 내가 먹고 싶지는 않게 되었다. 소를 먹지 않게 되었다. 닭을 먹지 않게 되었다. 식생활에 가치관이 생기기 시작했다. 새롭고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채식을 시도하며 세상 또는 내 공동체를 바꿔보자는 심오한 목표가 생기지는 않았다. 송아지의 삶을 마주한 후, 내가 지향하는 식사와 지향하는 삶을 완전히 분리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먹는 것에 가치관이라는 하나의 이유를 더하고 싶어졌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새로운 방식으로, 보다 신중한 태도로 음식을 바라본다. 동물들의 죽음과 최대한 연관되고 싶지 않을 뿐이고 항생제와 성장 촉진제 등으로 범벅 된 고기보다는 유기농 채소 중심의 식사가 내 건강에도 더 유익하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은 나와 세상의 관계를 새롭게 하는 멋진 과정이다.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은 완벽을 추구하거나 적어도 특정 수준 이상은 넘어야 한다는 절대적 기준이 아니다.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은 인과관계를 외면하지 않는 태도이다. 이 음식이 어디서 태어나 키워졌고 어떤 과정을 거쳐 나에게로 오게 되었을까?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다. 내 입맛이 다가 아님을 깨닫고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이기도 하다.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은 결국 나 스스로를, 그리고 나와 세상의 관계를 새롭게 하는 멋진 과정이다.


공장식 축산과 거리를 둔 삶을 살자는 가치관을 가지고 먹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다 보니 내 입맛과 취향까지 계속 변화를 맞이한다. 예전에는 먹고 싶은 고기를 절제해서 줄이고 참았는데 이제는 자연스럽게 그 맛과 향이 거북하게 느껴진다. 오히려 먹기 위해선 큰 노력과 결심이 필요할 정도가 되었다. 다양한 채식 요리를 시도해보고 신선한 식재료를 사용하다 보니 나도 몰랐던 새로운 맛과 즐거움을 계속 발견하게 된다. 멸치 없이 견과류만 볶은 반찬이 얼마나 고소하고 내 입맛에 딱 맞는지 알게 되었다. 면 요리에 고기와 해산물을 넣지 않아도 소스에 신경을 쓰고 채소를 많이 넣으면 향과 식감이 풍부해 짐을 경험하게 되었다. 7월의 국내산 블루베리, 8월의 유기농 복숭아의 달콤함은 그 어떤 가공식품도 흉내 낼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물론, 이러한 변화들이 하루 아침에 찾아온 것이 아니다. 불편하고 어려운 첫 시도들을 거쳤고 중간에 실패했다가 다시 시작하기도 했다. 사람마다 다를 테지만 나의 경우, 한 두 달 정도가 지난 후부터 입맛에 변화가 왔다. 그리고 그 변화는 아직도 멈추지 않고 계속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를 이끌고 있다.






이제는 배가 고프면 다양한 채식 요리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단호박 샐러드, 두부 조림, 감자 찌개를 떠올리면 입 안에 군침이 돈다. 어느 날은 생 당근을 아작아작 씹어먹고 싶다. 제일 좋아하는 면 요리는 양배추, 당근, 파프리카를 듬뿍 넣고, 땅콩 버터와 스리라차 소스로 만든 비건 팟타이다. 요리가 귀찮은 날은 각종 채소와 참기름, 고추장을 넣은 비빔밥 한 그릇이면 몸과 마음이 든든해 진다. 이제 내가 이렇게 먹는 이유는 가치관 때문이기도 하지만 취향 때문이기도 하다. 이렇게 먹는 것이 더 맛있고, 편안하고, 즐겁다. 우스개 소리지만, 아마 기억상실증에 걸려도 나는 채식 중심의 식사를 이어갈 것 같다. 입맛은 남아있을 테니 말이다.


비건 팟타이와 와인 한 잔의 조합 역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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