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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ha Oct 10. 2020

바둑이가 알려준 길

채식을 시작하다.


할아버지는 개 장수 대신 나에게 짱구를 팔았다.


바쁘게 길을 가다 나비나 새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와 잠시 멈춰 설 때가 있다. 어느 날 나는 아주 귀엽게 생긴 점박이 무늬 나비를 보았고 무엇에 홀린 듯이 따라갔다. 그리고 내 앞에 펼쳐진 낯선 길을 마주하였다. 나는 용기 내어 한 발을 내 디뎠다. 땅의 느낌이 단단하고 좋았다. 조금 더 걷다 보니 내 안에서 에너지가 차올랐다. 언제든 되돌아갈 수 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아졌다. 걸을수록 이 길이 더 좋아졌기 때문이다.


사실 그 나비는 작은 바둑 강아지다. 이 강아지는 5년째 우리 부부와 함께 살고 있다. 바둑이는 사연도 아픔도 많은 아이로 남동생이 남은 견생은 걱정 없이 해맑게 살아가라는 의미로 이름을 짱구로 지어주었다. 구둣방 앞에 묶여 지내던 잡종 강아지 짱구는 무언의 신호를 보내 지나가던 나를 멈춰 세웠다. 잠시 앉아 눈을 맞췄는데 짱구는 꼬리를 미친 듯이 흔들며 나를 핥았다. 예상치 못한 스킨십 때문에 나는 짱구의 신상이 궁금해졌고, 구둣방 할아버지가 짱구를 개 장수에게 5만원에 팔까 고민하던 중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개 장수 대신 나에게 짱구를 팔았다.


개는 잘해주든 못해주든 본인에게 밥을 주는 사람을 알아보고 좋아한다는데 짱구는 그날 할아버지를 한번 뒤돌아보지도 않고 나를 따라왔다. 할아버지가 마지막으로 한번만 와 보라며 손을 내밀자 벌벌 떨며 내 품을 떠나지 않으려고 했으니 어떤 취급을 받았을지 눈에 훤하다.


바둑이와의 첫 만남






아, 이렇게 눈을 반짝이고 풀 냄새가 좋아서 팔짝 뛰는 아이가 누군가의 한 끼 식사로 끝이 났을 수도 있구나.


짱구는 겁이 많고 영리한 개이다. 구둣방 할아버지와 살던 기억이 좋지 않은지 아직도 남자 어르신들을 보면 두려움에 눈동자가 흔들린다. 짱구는 다른 개들처럼 산책을 무척 좋아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날마다 밖에 나가 뛰어 노는데, 풀잎에 몸 비비기 놀이를 가장 좋아한다. 나는 짱구와 시간을 보내며 개라는 존재가 소중하게 느껴졌다. ‘아, 이렇게 눈을 반짝이고 풀 냄새가 좋아서 팔짝 뛰는 아이가 누군가의 한 끼 식사로 끝이 났을 수도 있구나.’ 생각만해도 아찔했다. 울컥하는 감정이 솟구쳤다. 그러던 어느 날 복날을 앞두고 개식용 철폐를 위한 집회를 대구 칠성시장 앞에서 진행한다는 글을 읽었다. ‘가볼까? 한 마리의 개라도 살릴 수 있을까?’ 평소였으면 생각으로 그쳤을 테지만 어쩐 일인지 나는 이미 대구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싣고 있었다.


동행이 없어 걱정이 되었지만 막상 도착하니 나처럼 혼자 오신 분들이 많았다. 모두 한 마음 한 뜻으로 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우리는 칠성 개시장 골목에서 죽은 개들을 애도하는 의미로 국화를 들고 침묵시위로 행진하였다. 상인들은 이미 개들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겨놓았고 멀리서 낑낑거리는 소리와 하울링만 들려왔다. 살려달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누군가는 눈물을 흘렸고 나는 끝까지 꾹 참으며 걸었다. 그렇게 칠성시장을 걷던 중 뜬금없이 닭이 내 눈에 들어왔다. 작은 상자 안에 빽빽하게 채워져 움직이지 못하는, 목이 잘리는 순서를 기다리던 닭들이었다. 나는 멈춰 섰다. 금요일 저녁이면 치킨을 주문하고 다이어트 중에는 닭 가슴살을 대량으로 주문하는 내가 멈춰서 닭을 바라보았다. '아, 치킨이 원래 이 모습이구나……' 당연한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는 듯 나는 그 닭의 눈을 빤히 응시하다가 다시 걸었다.


일상으로 돌아왔는데 닭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살아 있는 닭, 죽기 직전 살고 싶어 버둥거리는 그 닭이 눈에 아른거렸다. 그렇게 개식용만 반대하던 나는, 동물을 먹는 다는 것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의도하지 않으면 마주하기 어려운 정보들을 찾기 시작했다. ‘나는 왜 이렇게 먹지?’ 별 생각 없이 반복하던 스스로의 행동들에 처음으로 질문을 던졌다.






나 고기 되도록 안 먹어보려고.


나는 왜 먹는 것에 대해 이토록 무신경했을까? 학교나 미디어에서는 왜 공장식 축산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지? 30년을 살았지만 공장식 축산에 대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 스스로 놀라웠다. 동물이 고기가 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고통을 받을 수 밖에 없는데 대량생산 시스템에서는 그 고통이 극대화된다. 동물들은 좁고 비위생적인 공간에서 지내다 보니 면역력도 낮아지고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려 도살 전에 이미 죽어간다고 한다. 그래서 항생제와 성장촉진제를 과다 투여하여 몸집만 빨리 불려버려 아기 때 도살해 버린다. 또 비용을 절감하면서 빠르게 도살해야 하니 마취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껍질이 벗겨지거나 뜨거운 물에 빠지는 동물들이 많다고 한다. 결국, 우리가 고기를 찾으면 찾을수록, 고기 수요가 올라갈수록, 동물들이 겪는 고통은 극대화되는 것이다.


정보를 접할수록 불편했지만 그래도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계속 찾았고 그러다 송아지에 대해서도 알아버렸다. 젖소는 늘 젖이 나오는 소가 아니라 사람처럼 임신과 출산을 반복해야만 젖이 나오는 것이었다. 어미 소는 평생 젖을 생산하고, 그 젖은 사람이 먹어야 하기 때문에 송아지들은 태어난 즉시 어미와 분리되어 좁은 틀 안에 가둬진다. 그렇게 영문도 모른 채 바들바들 떨면서 엄마를 찾는 아기 소 한 마리가 갑자기 내 마음 속에 들어와 버렸다. 눈물이 쏟아졌고 옆에 있던 남편은 영문도 모른 채 휴지를 가져다 주었다.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나 고기 되도록 안 먹어보려고. 우유도 안 마시게. 잘할지 모르겠지만 그냥 할 수 있는 만큼 해 볼게.”





그저 즐겁고 뿌듯한 마음으로 바둑이가 알려준 이 길을 계속 걸어가야지.


그렇게 나는 채식을 시작했고 벌써 일 년이 흘렀다. 어떤 이는 소소하게 시작해서 점점 더 완전한 채식(비건)으로 나아가는 것 같고, 나는 오히려 초반에 바로 비건식으로 먹다가 최근에는 채식을 지향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밖에서 먹을 때는 불완전하고 성분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을 때도 많다. 채식 중심의 식사, 채식을 지향하는 식습관을 즐겁게 유지하고 있다.


누군가는 이것을 퇴보라 하며 비난하는데 나는 크게 연연치 않는다. 나의 목적은 타인이 선포한 기준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가 왜 이걸 시작했지?" 그 마음과 방향성을 잃지 않는 것이다. 나는 나의 몸과 마음 상태를 살피며 나만의 지속 가능함으로 이 길을 걸어간다. 힘들면 쉬었다가 또는 조금 돌아서 갈 수도 있을 테지. 중요한 건 이 길을 알게 되어 기쁘고, 걷기 마냥 편한 길은 아니지만 계속 걷고 싶다는 것이다.


이 길을 아끼고 좋아한다고 해서 "어? 너는 이 길로 올 자격이 없어", "똑바로 걸어!"라고 타인을 함부로 판단하고 나무라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 많은 사람이 이 길에 관심을 갖게 되길 바랄 뿐 각자의 속도를, 걷는 스타일을 존중한다면 어떨까? 노래 부르며 걷는 자, 진지하게 걷는 자, 뛰는 자, 가다가 쉬는 자, 뒤로 돌아갔다가 다시 오는 자, 가지각색이다. 이 길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다. 길의 이름도 각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부르면 어떤가? 비거니즘, 채식, 의식적인 생활, 친환경 소비…… 길의 이름이 무엇이냐, 바르게 걷고 있느냐, 이 길에 왜 왔느냐 하나씩 따지고 구분하는 것에 에너지를 쏟지 말아야겠다. 그저 즐겁고 뿌듯한 마음으로 바둑이가 알려준 이 길을 계속 걸어가야지.


어둠 속에서도 반짝이는 짱구의 눈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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