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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ha Oct 11. 2020

차오르는 평온함

채식을 하면 삶이 더 고달파지지 않아?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삶에 대한 의욕과 애정이 넘쳐나는 아침이다.


잠에서 깨니 「Not Going Anywhere」가 들려오고 흥얼거리며 커피를 내리는 남자의 부스스한 뒷모습도 보인다. 인기척을 느끼고 침실로 달려온 작은 강아지는 내 앞에 얌전히 앉아 포옹을 기다린다. "오늘도 엄마와 개아들로 만나 함께 하게 되었어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볼을 비비며 속삭이니 순진무구한 그 눈빛이 가만히 나를 응시한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삶에 대한 의욕과 애정이 넘쳐나는 아침이다.


주말 아침, 남편이 타주는 커피






사실 어제저녁에는 마음이 괴로웠다. 우연히 글을 하나 읽었는데 고기가 되는 개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어떤 환경에서 살아가는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지, 고통 가득한 삶에 대한 글이었다. 다 옛날 일이라고, 요즘에 누가 개를 먹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직 우리나라에는 개 식용 문화가 사라지지 않았다.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정확한 집계는 어렵지만, 1)우리나라에서 하루에 약 3천 마리의 개들이 식용으로 도살된다고 한다. 일년이 아니고 하루이다. 최근 숫자가 계속 줄고 있겠지만 반려문화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배경을 고려했을 때 충격적인 숫자다. 물론 나는 개뿐만 아니라 돼지, 소, 닭 등 다른 동물들도 먹지 않는다. 하지만, 짱구를 반려하고 있어서인지 유독 개 식용 문제가 내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한다. 그래서 고통 받는 개들의 이야기를 읽으면 가슴이 와르르 무너지곤 한다.


어제 글을 읽고 식욕이 사라질 만큼 가슴이 저려와 저녁도 먹지 못했다. 기분전환을 위해 남편, 짱구와 밤 산책을 나가 충분히 걸었고 나무 아래에 앉아 풀벌레 소리도 오랫동안 들었다. 남편과의 소소한 대화, 짱구의 해맑은 표정, 시원한 밤공기 덕분에 다시 삶에 대한 희망과 애정을 채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긍정적인 감정에만 집중하면 오히려 그런 마음, 그런 삶과 멀어진다.


타자의 고통을 알게 되면 예상치 못한 순간에 슬픔이 밀려오고 마음이 괴로워진다. 하지만 강한 회복력도 함께 얻는다. 작은 일에 지치거나 공허함을 잘 느끼지 않게 된다. 나도 이런 말에 처음에는 의아해 했는데 경험해 보니 정말 그렇다. 슬픔이 느껴지는데 그것을 외면하고 모른 척 한다고 마음이 편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시선이 가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 아픈 현실을 직시하고, 마음껏 슬퍼할 때 진실된 감정을 느끼는 진짜 내가 된다. 슬픔으로 마음이 씻겨져 나간 후에는 오히려 새로운 에너지가 내 안에 차오르고 다시 씩씩하게 나의 삶에 집중할 수 있다.


“나는 예쁜 것만 보고 좋은 감정만 느낄 거야”라는 말은 자신을 아끼고 존중하는 태도처럼 보여지지만 사실 자기 파괴적인 다짐이 될 수 있다. 보기 좋은 것, 긍정적인 감정에만 집중하면 오히려 그런 마음, 그런 삶과 멀어지기 때문이다. 우아해 보이기 위해 고가의 물건에 집착하면 그 모습이 가장 경박해 보인다. 할인을 따라다니면 돈을 더 쓰게 되고, 멋져 보이는 모습을 계속 갈망하면 자기애는 바닥을 드러낸다. 물질이나 위치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려 하면 할수록 초라함의 순간은 더 많아진다. 음식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이 음식이 어디에서 왔는지, 무슨 과정을 거쳤는지, 내 몸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 외면할 수는 있지만 사실이 바뀌지는 않는다. 깨끗한 접시에 담겨 있다고 깨끗하게 만들어진 음식이 아니며 먹음직스러워 보인다고 내 몸에도 유익한 것은 아닐 테다. 고기를 보고 더 이상 군침이 돌지 않는 이유는 그 이면의 모습들도 마음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공장식 축산의 현실을 직시하고 채식을 지향하니 내 마음에 여러 존재의 고통이 겹쳐지게 되었다. 나와 모습이 완전 다른 타자, 바로 동물들이 나와 연결된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채식을 하면서 동물들의 삶을 떠올리면 삶이 더 고달파지지 않아?” 라고 묻는다. 그런가? 내 삶이 더 힘들고 우울해졌나?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아니다. 동물이 처한 환경을 직면하며 가슴 아프고 슬픈 순간들이 늘어나긴 했지만 막상 내 삶은 더 평온해지고 기쁨이 넘쳤다. 가족과 가까운 지인들이 내 표정과 말투, 태도가 온화하고 긍정적으로 변했다며 신기해한다.


“솔직히 언니 예전에는 좀 부정적이었잖아. 말도 막 내뱉고……”
“야, 내가 그랬단 말이야?”
“응 완전. 근데 요즘 달라진 게 그냥 느껴져. 편안해 보여.”


편안해 지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는데 편안한 모습으로 달라지는 내 삶이 참 좋다. 다른 삶이다. 나는 원래 작은 불편함이나 부당함을 겪게 되면 어떻게 해결할지 차분하게 고민하기보다는 즉시 악을 쓰던 사람이었다. 내 것을 챙기기에 바빴지만 막상 계속 빼앗기고 있는 기분만 들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온전히 내 삶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선택하고 내가 책임진다. 움켜져야 할 것도 없고 조급할 이유도 없다.






세상이 확장됨을 느끼게 되었다.


먹는 음식이 달라졌을 뿐인데 어떻게 삶을 대하는 태도가 통째로 바뀌었을까? 이게 말이 되나? 솔직히 나도 정확한 답은 모른다. 그래도 추측해 보자면 채식이 가져온 두 가지 변화가 나의 전반적인 태도에 큰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채식이 가져온 첫 번째 변화는 습관적으로 반복하던 행동을 우선 멈추고, 본질을 생각해 보는 훈련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원래 필요와 욕구에 따라 아무거나 먹고 아무거나 사는 삶을 살아왔다. 치킨이 먹고 싶으면 바로 시켰고 술이 마시고 싶으면 마셨다. 살을 빼고 싶으면 한동안 적게 먹을 뿐 음식 공부를 하거나 식습관 자체를 건강하게 바꾸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공장식 축산에 반대하는 것을 계기로 고기를 지양하다 보니 피치 못하게 신중하게 먹는 것이 훈련되었다. 우선 멈추고 ‘꼭 사야 하나? 다른 더 좋은 옵션이 있나?’ 생각한다. 신중하게 먹다 보니 음식에 대한 전반적인 관심이 늘어나면서 건강 공부도 병행하게 되었다. 식사의 본질이 혀끝을 만족시켜주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오늘 먹는 한끼가 내 식습관의 일부분이 되고 식습관이 내 평생 건강을 결정짓는다는 것은 인정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단순히 고기를 먹지 않는 식단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유익한 음식이 무엇인지 계속 공부하고 고민하면서 식습관을 재형성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인내심이 생기고 소비에 집착하지 않는 삶으로 자연스럽게 바뀌면서 몸 건강, 마음 건강도 덤으로 챙겼다. 좋아하던 명품 가방, 시즌마다 모아오던 가죽 구두도 ‘꼭 사야 하나?’ ‘내 인생에 이것들이 정말 중요해?’ 고민해 보았고 지금은 아예 관심을 거두었다.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다. 이 자유로운 해방감을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채식이 가져온 두 번째 변화는 나와 가족만 바라보던 시야가 넓어지면서 내 세상이 확장됨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여행을 가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유명한 가게를 구경하고, 물건을 사고, 이런 것에 집중했다. 이제는 살아 있음을 온전히 느끼며 일상을 여행처럼 즐긴다. 나무와 새들을 자세히 관찰하고 그 속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관찰력이 늘었다. 자연과 교감하는 마음 근육이 단단해졌다고 해야 하나? 이렇게 시선이 안에서 밖으로, 나에서 세상으로 뻗어나가니 내 삶의 작은 고통들이 크게 다가오지 않는다. 불평불만이 많이 줄었다. 일상의 스쳐가는 기쁨과 충만함을 놓치지 않는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나에게 주어지는 이 삶이 너무 아름답다.


나에게 진실된 삶.
세상과 마음의 연결고리가 있는 삶.
'왜?'라고 질문할 수 있는 삶.
평온이 차오르는 삶.


가볍게 먹고, 가볍게 살아가기

 

 

 

 

 



Reference.

1) 고은경. “식용개 ‘뜬장’에 가둬놓고 하루 2740마리 꼴 도축” 한국일보.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706221138170849 (2017년 6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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