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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ha Oct 12. 2020

오늘 살기

걱정과 중독에게 오늘을 내어주지 않기

걱정하는 일에 에너지를 다 빼앗겨
오늘의 행복 한 움큼까지 놓쳐버리는 어리석음은 피하고 싶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다시 보았다. 키팅 선생님의 유난히 선한 눈빛과 학생들의 순수한 표정들로 여운이 길다. 잔잔한 울림을 주는 대사가 많지만 그 중 최고는 이 대사가 아닐까?

Carpe diem.
Seize the Day, boys.
Make your lives extraordinary.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이 라틴어 “Carpe diem”은 주로 “현재를 즐겨라”로 단순하게 해석되지만 사실 “순간을 붙잡아라” “오늘을 살아라”에 더 가깝다. 우리는 오늘 살아있고 지금 이렇게 숨쉬고 있는데 키팅 선생님께서는 왜 굳이 오늘을 살라고 말씀하셨을까? 많은 사람이 과거에 머물러 있거나 미래를 기다리느라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간의 흐름을 존중하는 것과 시간에 얽매여 있는 것은 다르다.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준비하되, 나의 에너지와 마음은 현재에 존재해야만 오늘을 온몸으로 느끼며 생기 있는 삶을 누릴 수 있다.


여러 번 봐도 좋은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말은 쉽지만 때로는 이것이 굉장히 어려움을, 남편과 자금 계획을 세울 때마다 절실히 느낀다. 우리 부부는 한두 달에 한 번씩 엑셀 프로그램에 자금 현황과 계획을 함께 정리하는데 이 날에는 스스로 감정을 잘 보살펴 줘야 한다.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내놓고도 이 시간 이후에는 우울함이 슬금슬금 올라오기 때문이다. ‘뭐야! 차곡차곡 모아도 이게 전부네?’ 이 생각은 다시 수많은 걱정으로 뻗어나간다. ‘어느 정도 현금을 모으고 대출받아서 집을 산다고 쳐. 그럼 그 돈은 언제 다 갚지?’ ‘밖에 나가면 줄줄이 서 있는 것이 아파트인데 내 집 하나 마련하는 것이 왜 이리도 힘이 드는 거야?’ 내뱉지는 않지만 머릿속으로 가지각색의 걱정이 터져 나와 내 마음을 갉아먹는다. 옆을 슬쩍 쳐다보면 남편도 비슷한 표정이다. 계획과 정리는 5분 만에 끝이 나지만 걱정은 1시간 이상, 때로는 잠들기 전까지 지속된다. 어느 날은 잠까지 설친다. ‘해결할 수 없는 걱정으로 에너지 다 써버리기’활동이 퇴근 후의 소중한 시간을 잡아먹는다.


‘Michael didn’t allow what he couldn’t control to get inside his head.’ 농구 선수 마이클 조던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접한 문장이다. ‘마이클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 머리 속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로 직역할 수 있는데, 사실 그도 사람인지라 걱정은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마음의 중심을 잃지 않았기에 훈련에 집중할 수 있었다는 뜻일 것이다. 모든 걱정에서 자유로운 초인이 되고 싶은 욕심은 없다. 다만, 걱정하는 일에 에너지를 다 빼앗겨 온전히 나의 몫인 오늘의 행복 한 움큼까지 놓쳐버리는 어리석음은 피하고 싶다. 인생은 문제들로 채워진 바다와 반짝반짝 기쁨 알맹이가 깔린 해변과도 같다. 때론 바다에 풍덩 빠져버린다. 걱정 물살에 내 마음이 휩쓸려 가게 놔둘 수도 있지만, 열심히 해변까지 헤엄쳐 나온다면 사각사각 모래 위를 다시 밟을 수도 있다. 나와 남편은 이제 문제 바다를 둥둥 떠다니다가도 정신을 차리고 “우리 다시 해변으로 돌아가서 손잡고 걸을래?” 결심하는 연습을 한다. 에너지와 마음을 다시 이 순간으로 집중시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오늘을 다정하게 보내고 싶기 때문이다.






중독은 우리의 정신을 앗아가 삶의 정수를 음미하지 못하게 한다.


비단 과거나 미래의 걱정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자주 사소한 것에 정신이 팔려 눈앞에 놓인 소중함을 놓친다. 주로 중독성 강한 것들이 우리의 정신을 앗아가 삶의 정수를 음미하지 못하게 한다. ‘포켓몬고’라는 게임이 한참 유행인 시기, 산책을 하러 공원길을 걷고 있으면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걸어가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가장 신기했던 장면은 자녀와 부모가 함께 나와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각자의 핸드폰만 쳐다보고 있었고 드문드문 나누는 짧고 건조한 대화도 모두 게임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그날은 형형색색 아름다운 낙엽들이 공원을 덮어 눈부신 풍경이 펼쳐진 날이었다. 비가 내린 후라 풀과 흙이 뒤섞인 축축한 냄새가 기분 좋게 퍼졌고 하늘은 한 뼘 더 커진 키를 자랑 중이었다. 계절이 지났지만 이 날의 흙냄새와 낙엽의 눈부심은 아직도 생생하다. 분명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포켓몬고’를 열심히 하던 아이들과 이 아름다움을 함께 하지 못해 아쉬웠다.


게임 자체가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자유롭게 여가 시간을 보내는 것이 무엇이 문제일까? 다만, 중독성이 강한 활동들은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게임이든 무엇이든 잘 활용해서 더 행복한 삶, 가치 있는 삶을 누릴 수 있다면 그것은 복지이다. 멈추고 싶을 때 멈추고 다른 활동에 방해 받지 않는다면 중독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 멈추기 힘들고 시간 흐르는 것을 인지하지 못해 다른 활동을 계속 미루게 되다면? 옆에서 말을 걸어도 듣지 못할 정도로 자주 정신을 빼앗긴다면 어떠한가? 내가 게임을 활용하는 것일까, 게임에게 내 정신의 주도권을 내어주는 것일까? 나는 개인적으로 전자기기를 활용한 그 어떤 게임도 하지 않고 앞으로도 시도할 의향이 없다. 게임을 하면서 자유로운 인간이 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이가 말을 걸어올 때 다정하게 반응하고 싶다. 강아지가 심심해 하는 순간을 눈치 채서 장난감을 던져주며 놀아주고 싶다. 스스로 중요하게 여기는 읽기와 쓰기 활동에 방해를 받지 않으면서 게임을 할 자신이 나에게는 없다.






나는 오늘의 잔향을 마지막까지 들이쉰다.


오늘도 나는 젖은 흙이 내뿜는 촉촉한 냄새, 출렁이는 풀잎들, 헥헥대는 강아지 숨소리를 온몸으로 느끼며 걷는다. 운이 좋으면 고양이와 눈인사를 나누고 작은 새의 통통거림을 목격할 수도 있다. 밤에는 도심의 붕붕대는 자동차 소리를 들으며 푹신한 소파에 기대어 책을 읽는다. 치를 시험은 없지만 밑줄도 긋고 구절을 되뇌며 맛있는 글을 꼭꼭 씹어먹는다. 지금 이 시기에만 우리 땅에서 수확되는 생블루베리도 한 움큼 사치스럽게 누린다. 단 맛이 강해서 한 알씩 먹어도 입안이 꽉 찬다. 더 열심히 먹고 알아갈수록 케이크와 과자를 찾지 않게 되는 맛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강아지에게 굿나잇 인사를 전하는 순간까지…… 나는 오늘의 잔향을 마지막까지 들이쉰다. 내일은 내일의 달고 새콤한 맛이 기다리겠지? 오늘도 나는, 오늘을 산다.


짱구와의 밤산책은 늘 향기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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