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ha Oct 14. 2020

소비 중독 탈출

덜 소비하고, 더 존재하는 삶

소비를 통한 만족감은 얕고 순간적이었다.


엄마의 생일 선물을 구매하기 위해 남편과 백화점에 들렀다. 오랜만의 쇼핑몰 방문이었는데 진입로부터 막히더니 주차하는 시간만 30분이 걸렸다. 우린 생각해둔 매장으로 직진하여 원하는 제품을 결제한 후 주차장으로 바로 돌아왔다. 그 공간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공허한 피로감이 쌓였고 앞으로도 되도록 방문하지 말자고 서로에게 이야기했다.  


생각해보면 쇼핑몰에서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을 때 개운하고 맑은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 없다. 물건을 구매 후 마음이 살짝 들뜨긴 했지만 얕고 순간적인 만족감이었다. 몸은 지쳤고 정신은 산만해졌다. 그럼에도 너무 자주, 나의 소중한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다. 시끄러운 쇼핑몰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공간을 배회하다가 카드를 긁는 그 순간이 ‘나를 아껴주는 시간’이라고 착각했다. 나는 나의 삶을 사랑할 줄 알고, 그래서 스스로에게 값진 선물을 듬뿍 줄 수 있는 멋진 어른이라는 자부심을 느꼈다. 나는 왜 그랬을까?






나는 자유로운 삶을 누리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왔다.


“무엇이 나에게 깊은 만족감을 주는가?”

스스로에게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으며 살아왔다. 내밀한 시간 속에서 삶에 대해 사유하지 않은 것이다. 결국 기업과 언론이 내 앞에 놓아주는 정보들만 흡수하며 수동적으로 살아왔다. 광고, TV 프로그램, SNS에서 제공되는 자극적인 정보들이 내 머릿속에 획일화된 이미지를 그려 넣었다. 공장에서 찍어낸 ‘행복’에 대한 그림이 내 마음 거실에 걸린 것이다.

“이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행복한 인생이지!”

“주말은 쾌적한 쇼핑몰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힐링!”


우리의 소비 행태는 자발적인 맥락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누군가에 의해 유도된 행동이라고 생각하기 힘들다. 하지만 사실, 부와 영향력을 가진 소수가 대중을 부드럽게 타이르고 있다.

“이거 새로 나온 디자인이야. 이걸 가지면 굉장해 보일걸?”

1) 철학자 한병철은 ‘절대적인 권력을 얻으려는 자는 폭력이 아니라 타자의 자유를 활용’하며 현대의 권력은 ‘습관의 자동주의’와 ‘일상성의 모습’을 띄고 있다고 주장한다.

기업과 언론은 미소 띤 얼굴을 한 채 내 삶 속에 침투하여 일상과 선택을 조정하고 있었다. 나는 미디어를 소비하며 시간을 보냈고 온갖 싸구려 뉴스에도 귀를 기울이곤 했다. 연예인의 스캔들, 유행하는 신발, 인플루언서의 SNS, 모 브랜드의 할인 이벤트에 마음을 듬뿍 쏟았다. 나는 특별하고 소중하기 때문에 맛있는 음식과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도 늘 관심을 갖고 방문 후 인증도 필수였다.

“이것 보시오! 내 삶도 꽤 근사하지 않소?"

엄청난 부자는 아니더라도 중산층의 윤택한 삶 정도는 누려야, 아니 연출해야 하기 때문에 그에 걸 맞는 물건들도 부지런히 모아서 걸쳐야 했다. 이렇게 나는 자유로운 삶을 누리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왔다.


인간이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고 자존감이 약해지면 자아 밖에서 공허함을 채워줄 대체물을 찾는다. 스스로를 입증하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는데 내면에서 충족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소비와 소유를 통해서 대리 만족을 하는 것이다. 화려해 보이는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내가 따라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찾는다. 마음 깊숙이 공허한 감정이 차오르지만 그래도 계속 그들을 지켜보고 모방한다. 그리고 광고에서 본, 유명인들이 즐겨 사용한다는 그 물건을 나도 소유함으로써, 서비스를 이용함으로써, 특정 계층에 속한다는 망상에도 빠져본다. 소비에 집착하는 삶은 이러한 망상의 연속이다. 우리는 그렇게 사회에 철저히 순응하며 자본주의가 원하는 소비 중심의 삶을 살아간다. 소비에 대해 대화하고, 소비에 대해 꿈꾸며, 죽는 순간까지 소비를 고민하는 삶. 소비는 삶의 목표인가?


<이영애 2019년 구찌 화보> 명품을 걸치면 특정 계층에 가까워 진다는 망상에 빠진다.






소비에 대한 태도를 바꾸니 가슴이 뻥- 시원해졌다.


내가 소비 행태를 바꾼 결정적인 날이 있다. 퇴근 후 소파에 누워 온라인 쇼핑을 한 날이다. 딱히 필요한 것도 없고 결론적으로 아무 것도 사지 않았으면서 스크롤을 계속 내리다 보니 두세 시간이 훌쩍 지나 잘 시간이 되었다. 짱구는 옆에서 시무룩하게 엎드려 있었고 남편은 방에서 영화 한 편을 끝냈다. 이런 날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순간 가슴이 콱 막혀왔다. 세상에! 나는 습관의 노예였다. 스마트 폰에 3시간 동안 코를 박고 눈알만 굴리다니!


앞으로 단 며칠만이라도 소비에 관심을 두지 말아보자고 결심했다. 핸드폰은 집에 두고 강아지 산책을 나갔다. 짱구의 움직임과 공원 풍경에 집중했다. 생각보다 편안해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얼마나 멋진 물건을 샀는지, 화려한 경험을 했는지 등을 공유하기 급급한 SNS 계정들을 언팔로우했다. 의류 잡화, 그릇, 인테리어 등 구매심리를 자극하는 비즈니스 계정을 차단하고, 자주 오는 문자 광고들도 정성스럽게 수신거부 처리했다. 딱히 할 일이 없을 때는 그냥 멍 때리며 주변을 관찰하거나 이런 저런 생각을 했다. 하루가 편안하게 흘러갔다. 눈이 아프지 않았고 머리가 맑아졌다. 무엇보다 가슴이 뻥- 시원해졌다.






습관적으로 TV를 틀지 않으니, 불필요한 쇼핑을 멈추니, 타인의 소비에 관심을 두지 않으니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가족과의 대화 주제가 바뀌었고 마음의 에너지와 관심은 자연스레 다른 곳으로 흘러갔다. 광고에서 명품이라고, 이것을 가지면 당신은 특별하다고 유혹하던 그 제품도 사실 찍어낸 공산품임을 자각하게 된 것은 물론이다. 이렇게 습관적 소비를 멈춘다면 돈이 많은 사람은 더 의미 있는 곳에 돈을 활용하며 보다 단단한 자아를 형성할 수 있을 테고 돈이 충분하지 않은 사람이 물질적인 것에 집착하는 것은 정말 비극인 것 같다.


쇼핑몰과 멀어지고 자연과 가까워질수록 에너지가 새어 나가지 않는 주말을 보낼 수 있다. 물질로 가득 차 있던 마음이 비워지니 새로운 호기심들이 자리잡는다.

“시를 써 볼까?”

“짱구랑 할 수 있는 재미있는 놀이를 생각해볼까?”

지금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무엇에 집중할지, 단호하게 결정하고 용기 있게 실천한다. 앞으로 더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차오른다. 나는 소비 중독에서 탈출했다.


운동화, 에코백과 함께하는 일상








1) 한병철 (2011년). 권력이란 무엇인가. 문학과지성사. P21, P69


이전 06화 오늘 살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