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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ha Oct 18. 2020

담백한 음식, 일상의 기쁨

본질을 잊지 않는 마음

생일이 딱히 기다려지지 않는, 잔잔한 기쁨이 깔린 일상이 소중하다.


“생일 선물로 뭐 받고 싶어?”

“지금 갖고 싶은 게 없네…… 선물은 패스!

그리고 혹시라도 생일상 차린다고 음식 만들며 고생하지 마!”


남편 생일이 다가와 그에게 살짝 물으니 선물도, 음식도 따로 준비하지 말아 달라며 신신당부를 한다. 매년 서로의 생일을 몇 달이나 앞두고 선물부터 식사까지 어떻게 누려야 특별할지 고민하던 우리 부부는 이제 조금 힘을 빼고 생일을 맞이한다. 최근 식습관의 변화와 함께 삶에 대한 태도도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생일은 생일이니 아쉬운 마음에 미역국을 끓였다. 미역국 맛의 핵심은 품질 좋은 미역과 시간임을 채식을 지향하며 알게 되었다. 완도산 미역과 전통 간장, 다진 마늘만 적당히 넣으면 훌륭한 미역국이 완성된다. 심심하면 소금과 연두를 넣고 더 오래 푹 끓이면 된다. 복잡한 레시피도, 피곤한 장 보기와 뒷정리도 필요 없다. 내가 만든 미역국은 단순한 듯하면서도 깊은 맛을 내서 스스로도 뿌듯하고 남편도 늘 감탄하며 한 그릇을 뚝딱한다. 이날도 역시 그는 엄지를 치켜 올리며 나를 추켜세웠다. 담백한 음식을 알아보는 담백한 남자이다.


미역만 들어간 미역국과 채식 잡채


생일이 딱히 기다려지지 않는, 잔잔한 기쁨이 깔린 일상이 소중하다. 어려운 레시피 없이도 맛있고 건강에도 좋은 기본 미역국처럼 머리를 굴리지 않아도, 힘주지 않아도 오랜 시간 은은하게 빛나는 관계이고 싶다.






타인의 욕망과 내 욕망을 헷갈리지 않아야 해.


인간은 상징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 하고 만져지지 않는 것을 손에 쥐고 싶어 한다. 그래야 소유한 것 같으니까. 그래야 든든하니까. 연인의 사랑을 선물을 통해 확인하고, 화목은 행복해 보이는 가족사진을 프로필에 내걸어 보여줄 수 있다. 내가 ‘자식은 잘 키웠지’는 자식의 학벌과 직업으로 인증된다. 물론, 상징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인간에겐 어쨌든 눈으로 확인하고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존재하니까. 하지만 상징이 본질보다 더 중요해진다면? 물질이 마음보다 우선시 되고, 겉치레에 한눈이 팔려 진짜 모습을 가꾸지 못한다면? 우리 삶은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연극이 되어버린다.


어느 날 남편과 밥을 먹으며 이런 대화를 나눴다.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을 살려면 타인의 욕망을 내 욕망과 헷갈리지 않아야 해”

“갑자기? 근데 맞는 말이야. 남이 뭘 샀는데 좋아 보이면 나도 갑자기 갖고 싶어져.”

“누가 기념일에 대단한 걸 선물 받았다고 하면 나도 그 정도는 받아야 사랑받는 것 같고……”


우린 앞으로 우리의 진짜 욕망을 들여다 보기로 했다.

나는 너와 어떤 관계를 만들어가길 원하지?

이 특별한 날을 어떻게 보내고 싶은 거지?

이런 질문들을 의식적으로 던져보기로 했다. 곰곰이 생각해보고 대화 나누다 보니 우린 둘 다 기념일에 맞춰 큰 선물을 받고 싶은 욕망이 없었다. 갑자기 원하는 것이 생기는 시기가 있는데 그때 상황에 맞춰 적당한 것을 사거나 서로 선물해 주는 것이 더 기분이 좋았다. 기념일에는 선물을 신경 쓰지 않고 마음을 듬뿍 담은 손편지면 충분했다. 유명한 레스토랑도 우리 취향이 아니었다. 특별한 분위기와 맛으로 알려진 곳을 엄선 후 찾아가고, 사람 많은 곳에서 시간을 보내다 운전을 해서 돌아오면 녹초가 되었다. 이번엔 그냥 집 앞 단골집에서 가볍게 한잔할까? 손을 잡고 동네 길을 걸어 식당에 간다. 몸도 마음도 편안하니 식사도 대화도 더 맛있다. 함께 쌓아온 추억 이야기, 요즘 생각, 앞으로 함께 만들고 싶은 미래에 대해 조잘조잘 이야기 나눈다. 우리 둘의 마음이 예쁘게 물드는 이 순간…….


그래, 일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아도 충분하구나.

아니, 일상을 벗어나지 않아도 괜찮기 때문에 행복한 삶이구나.






미역만 들어간 미역국의 담백한 맛도 알아보는 이 남자, 타인과의 욕망에 휘둘리지 말자는 다소 뜬금없는 말에도 듬뿍 공감해 주는 이 남자 덕분에 더 용기를 내 본다. 그와 함께라면 연극이 아닌, 존재로서의 삶을 잘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힘을 빼고, 바라지 않고 관계할 때 더 풍족해지는 삶. 깊은 만족감은 본질적이고 더 가치 있는 것에서 온다. 내 삶에서 포기할 수 있는 것들과 그럴 수 없는 가치들을 구분해 보자. 무엇을 중심에 두고 나의 하루를, 에너지를, 관계를 채워야 할까? 나에게 질문해보자. 무엇이 본질인가?


마스크 쓰는 일상, 그래도 함께 행복한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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