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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ha Oct 17. 2020

단순한 여행의 비밀

진정한 휴식과 행복한 여행의 본질

진정한 휴식과 행복한 여행의 본질은 무엇일까? 더 소유하고, 넘치게 먹고, 많이 경험하면 좋은 것일까?

"내 비밀을 말해줄게. ……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아."라고 대화 나눈 여우와 어린 왕자처럼 우리 부부도 눈에 보이지 않는 여행의 비밀을 함께 찾아간다. 식탐을 조금 내려놓을 때, 간단히 준비하고 적당히 먹을 때 찾아오는 잔잔한 기쁨을 우리는 발견했다.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를 다른 것들로 채울 때 비로소 경험할 수 있는 선물들이 바로 단순한 여행의 비밀이다.


우리 세 식구는 시골의 작은 펜션에 자주 놀러가는데 바비큐를 굽지 않고 몇 가지 식재료를 챙겨간다. 최대한 평소처럼 먹고 치우며 담백한 식사 시간을 즐긴다. 고기가 타지 않을까, 빼놓은 음식이 있진 않나 우왕좌왕할 필요 없이 창을 열어놓고 와인 한 잔 정도만 특별하게 곁들인다. 차분하게 각자의 한 그릇에 집중하며 밤의 다양한 소리를 함께 들으면 유난히 더 따뜻하고 기분 좋은 대화들이 오간다.


안면도 펜션에서 만들어 먹은 카레와 비건까스


어느 날은 남편이 와인 한 잔 대신 운전을 해서 밤바다를 보러 가자 했다. 맑은 정신으로 모래사장을 걸으며 내가 "달빛 아래 우리 셋" 말하니 그가 "파도 소리 들으며" 이어간다. “깔깔 뭐야~ 릴레이 시야?” 웃으며 시도 함께 완성해 본다. 먹는 것이 중요한 여행에서는 볼 수 없던 우리의 풍경이다.


세 발자국


달빛 아래 우리 셋

파도 소리 들으며

사각사각 모래를 밟네

모래 위 세 발자국

크기는 다 달라도

참 다정하구나.


마주 잡은 우리 손

말없이 걸어도

조곤조곤 마음을 나누네

앞서가던 강아지도

뒤돌아 달려오니

한마음이구나.






결혼 1주년을 맞은 달에는 남편과 코타키나발루의 한 리조트로 휴양 여행을 다녀왔다. 채식을 지향한 후 첫 해외여행이었는데 유난히 몸도 마음도 가볍게 떠나고 싶었다. 매번 해외여행을 출발하기 전부터 온라인 면세점을 드나들며 에너지를 쏟아왔는데 이번에는 아무것도 사고 싶지 않았다. 면세 쇼핑을 하다 보면 과소비를 하게 되고 쓰레기도 많이 나와서 마음이 불편하다. 무엇보다 고작 소비 목록을 두고 고민을 하느라 나의 소중한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 마냥 아쉽다. ‘지금 당장 없으면 큰일 나는 물건 없잖아? 그래, 설레는 마음만 안고 떠나자!’


도착하니 숙소가 높은 곳에 자리잡아 전망이 아주 좋았다. 나무들의 숱 많은 정수리와 햇살을 잔뜩 머금은 바다의 피부결을 발코니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눈앞에 펼쳐진 장면이 꿈만 같아서 날마다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났다. 하늘이 아침 옷으로 갈아입는 풍경과 새소리로 명상을 하고 있으면 남편이 뒤이어 일어났고 함께 아침 요가를 했다. 하루는 물속에서 아쿠아사나를, 다음 날은 해변에서 빈야사 요가를 했다. 전문가처럼은 못하지만 수련원 다니며 익힌 몇 가지 동작들을 정성껏 시도했다. 요가는 힘과 스피드에만 의지하여 동작을 이어갈 수 없다. ‘중심을 잃지 않는 것’ 즉, 밸런스가 중요하다. 중심을 잃지 않으려면 이 순간에 집중해야 한다. 내가 지금 요가를 하고 있다는 사실, 내 몸이 움직이거나 멈춰있다는 느낌에 온 에너지를 쏟는다. ‘점심으로 무엇을 먹지?’, ‘내 옆에 사람은 나보다 더 잘하나?’ 마음을 뺏기면 현재가 무너진다. 요가 수련도, 여행도, 삶도 중심을 잃지 않아야 바른 동작이 나온다.


아침 해변에서 요가를 하다가 남편이 기념 사진을 찍어줬다.


점심에는 리조트 내부에 있는 야외 도서관을 적극 활용했다. 소로의 <월든>을 두 권 가져가서 함께 읽으며 대화를 나눴는데 일상에서 나누지 못했던 깊은 생각과 가치관을 자연스럽게 공유할 수 있었다. 부부라고 해서 똑같은 생각을 가질 수도 없고 그래야 할 필요도 없지만, 서로의 마음을 잘 읽고 발맞추어 나간다면 행복에 한 발짝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 우리는 행복해 보이는 부부 말고, 진짜 행복한 부부로 살기로 약속했다.


야외 도서관에서 함께 <월든>을 읽었다.






집으로 돌아와 최근의 여행들을 추억한다. 열심히 쇼핑몰을 둘러본 후 보기 좋은 물건을 손에 많이 넣었다면 더 만족스러웠을까? 소유를 통해 얻는 기쁨은 오래가지 못함을 알기에 여행에서만큼은 쇼핑을 잊어본다. 또 우리는 채식 중심의 식사를 하고 천천히 꼭꼭 씹어먹으며 과식을 하지 않는다. 속이 편하고 몸이 가벼워서 기분 좋게 활동할 수 있는 비결이다. 고기나 가공식품 중심으로 먹으면 온전히 소화하는데 8시간 정도가 걸리고 밤새 장기들이 계속 움직이느라 숙면을 취하기 힘들다고 한다. 때문에 여행에 왔다고 평소보다 더 무겁게 먹으면 다음날 피곤하고 늦게 일어나게 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다. 반면 덜 가공된 채식 중심의 식사를 하면 소화는 1~2시간면 충분하다. 속이 살짝 빈 상태로 잠이 들면 밤새 몸이 깊숙이 휴식을 취할 수 있고, 넘치는 기운과 맑은 정신으로 하루를 상쾌하게 시작할 수 있다.


과거에는 집을 나와 돌아다니면 내가 왜 금세 지쳤는지, 여행을 다녀오면 추억은 쌓였지만 마음 에너지는 가득 충전되지 못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휴식을 취하거나 새로운 기운을 얻기 위해 떠난 여행에서 소비에 집중하고, 과하게 먹고, 정신없이 돌아다니며 내 에너지를 낭비했었기 때문이다.

내 에너지는 유한하다. 가볍게 먹자. 지혜롭게 휴식하자. 단순하게 여행하자.

Treat Yourself Better.

 

코타키나발루에서 먹은 비건 음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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