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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ha Oct 11. 2020

마음 문을 열어보니

채식을 넘어 신중한 식사로

남을 위하다 보니 나에게 좋기도 하고, 내 것을 챙기며 욕심을 부린 행동이 결국 내가 가장 손해인 경우도 있다.


회사에 점심 도시락을 챙겨 다닌다. 구내식당을 이용하면서 적당히 고기류를 받지 않고 나물이나 두부 음식 등을 두 배로 받아먹었는데, 내 입이 변한 것인지 어느 순간부터 식당 음식에서 화학조미료 맛이 훅 느껴졌다. 그리고 은근하고 지속적인 포만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순간적으로 배가 확 불러오고 금세 다시 배가 고파지는데 기분이 참 좋지 않은 부름과 고픔의 연속이다. 그래서 매일은 아니지만 마음이 내키는 수준에서 주 2~3회 먹음직스럽고 건강에도 좋은 채식 도시락을 준비한다. 편안한 공간에 찾아가 밥을 먹고 20~30분 책을 읽는다. 소소하지만 단단한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공짜로 주는 밥을 먹지 않고 왜 도시락을 챙겨 다니는지 종종 주변에서 물어본다. 채식을 해서? 입맛이 까다로워서? 혼자 먹고 싶어서? 글쎄, 나도 짧게 대답해 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고민하다가 “이렇게 먹는 게 좋아서요”라고 웃으며 대답한다.


이분법적 사고로 단순하게 구분하고 해석하는 것은 편리하다. 좋고 나쁨, 이기적인 행동과 이타적인 행동으로 나누는 것 등이 그러하다. 하지만 실제 삶은 그리 간단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남을 위하다 보니 나에게 좋기도 하고, 내 것을 챙기며 욕심을 부린 행동이 결국 내가 가장 손해인 경우도 있다. 무엇 때문에 채식 중심의 식습관으로 바꾸었으며 지속할 수 있는지 질문하는 사람이 많고 종종 설문조사도 이뤄진다. 건강 때문인가요? 동물권을 지지하기 때문인가요? 환경을 위한 노력의 일부인가요? 지금의 나라면 이 질문에 대답하기 굉장히 곤란하다. 시작은 동물권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을 테다. 하지만 처음부터 나는 그런 거창한 단어를 떠올리지 않았다. 또 지금은 동물을 위하는 마음만으로 채식을 지향하고 있지 않다. 만약 그 이유 하나였다면 이렇게 즐겁고 만족스럽게 지속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날의 도시락 메뉴는 채식 카레, 나물 2종, 김부각






채식, 육식의 흑백논리를 떠나 입체적이고 넓은 시각에서 음식을 바라볼 필요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처음 채식을 시작했을 때는 그냥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유통 과정과 포장지 등 환경과 관련된 부분을 신경 쓰지 않았고 영양 성분과 조리 법 등 건강한 식습관에도 관심이 없었다. 특히 건강은 젊은 내가 굳이 애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채소 중에서도 화학 비료나 방부제가 많이 쓰인 것들은 좋지 않다고 했지만 굳이 신경 쓰지 않았다. ‘난 고기를 먹지 않잖아? 그러니 더 이상 노력하긴 힘들어’라고 생각했다.


이런 내 생각은 여러 책을 접하며 서서히 변화했다. 공장식 축산과 관련된 책들을 읽다 보니 동물들에게 주입되는 화학약품과 위생 문제가 심각해 보였다. 동물들이 얼마나 많은 양의 항생제와 성장 촉진제 주사를 맞아야만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지, 이런 약물들이 고기를 섭취하는 인간의 몸에 차곡차곡 쌓이고 어떠한 작용을 하는지 등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영양학과 관련된 책도 읽어 보기로 했다. 채식과 관련된 책만 읽지는 않았다. 키토제닉, 간헐적 단식, 화학물질, 밀가루, 설탕, 비만, 노화, 뇌 등 다양한 주제로 관심을 계속 넓혀갔다. 그러면서 특정 식품들은 자연스럽게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단순히 채식, 육식의 흑백논리를 떠나 입체적이고 넓은 시각에서 음식을 바라볼 필요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예를 들어 밀가루가 좋지 않다는 입장에 대해서는 ‘우리 선조들도 예부터 밀가루를 먹어 왔는데 뭐가 문제지?’라고 가볍게 생각해 왔다. 하지만 정보를 접하면 접할수록 알면 알수록 멀리하게 되는 식품이 밀가루다. 1)오늘날 우리가 먹는 밀가루는 선조들이 재배하고 제분했던 것과 같은 종류가 아니다. 유전 생명 공학, 특히 이종 교배를 포함한 현대의 음식 제조업 때문에 수십 년 전의 곡물에 든 글루텐보다 몸에 더 해로운 글루텐을 함유한, 구조적으로 변형된 밀가루가 재배되고 있다. 달콤한 케이크나 도넛을 먹으면 순간적인 행복감이 밀려드는데 그것은 과학적인 현상이다. 글루텐은 위에서 분해되어 혈액뇌관문을 넘을 수 있는 폴리펩티드(polypeptide) 혼합물이 된다는 사실이 1970년대에 알려졌는데, 이 폴리펩티드는 뇌의 모르핀수용체에 엉겨 붙어 황홀감을 유도한다. 즉, 밀은 우리 뇌를 중독시키고 금단 현상까지 야기한다. 더 자세한 정보가 궁금한 사람들에게는 <그레인 브레인>, <밀가루 똥배>, <비만 코드> 일독을 권한다.


요컨대 책을 읽으며 식품, 의료, 축산 업계 등 돈을 버는 시스템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내가 전혀 몰랐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이제껏 순진하게 다 믿었다는 점, 주는 대로 먹고 살았다는 점, 그리고 이런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라는 점이 놀라웠다. ‘아차!’ 싶었다. 그때부터 한 가지 관점으로만 음식을 바라보지 않았다. ‘건강에도 좋고, 환경오염도 덜 되고, 맛도 좋고, 동물도 해치지 않는 음식을 더 자주 먹자’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여러 측면을 고려하며 보다 나은 식사로 계속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마음 문을 열어 채식을 맞이하니, 너무 많은 선물이 내 삶에 찾아왔다.


‘채식’이라는 길을 발견하여 걸었고, 덕분에 ‘신중한 식사’라는 또 다른 길을 발견하였다. 이 길을 걸어가며 나는 열린 마음과 스스로를 존중하는 태도를 함께 배워간다. 다양한 정보를 선입견 없이 듣고 참고하되 내 몸의 정직한 반응도 꼭 확인하는 것이다. 현미밥, 채소, 과일 등을 먹은 후에는 내 몸이 두통이나 소화 불량, 컨디션 저조를 경험 하지 않는다는 것을 관찰했다. 식사 후 아픈 적이 가끔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날은 밀가루나 가공식품을 많이 먹은 날이었다. 또 나는 월경 증후군으로 두통이 심한 편인데 신선한 식품으로만 섭취한 기간에는 두통이 완화되었고 전반적인 컨디션이 평소와 같았다. 카페인, 설탕 등에 반응하는 내 기분과 몸 상태도 주의 깊게 관찰하니 아예 피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양을 조절하는 것이 적당한지 점점 감이 잡힌다. 가장 신기한 것은 정보를 모으고 내 몸에 적용하며 나의 것으로 만들어 갈 수록 이 모든 과정이 더 즐겁게 다가온다는 사실이다. 흥미롭고 재미난 일을 할 때 노력은 의미가 없어진다. 나에게 ‘신중한 식사’는 이제 노력을 넘어 놀이가 되어간다.


나는 이제 식습관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간다. ‘먹으면 안 되는데…… 미칠 것 같다. 먹어버릴까?’ 이런 내적 갈등도 빈도수가 현저하게 줄어든다. 머리 속의 ‘먹으면 좋은 음식’과 입에서 당기는 ‘먹고 싶은 음식’의 교집합이 계속 커진다. 이 공을 나의 의지력에 돌리고 싶지 않다. 타자를 위한 의지력만으로는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내 건강만 챙기자는 생각도 아니었다. 마음 문을 열어 타자의 삶, 새로운 이야기, 낯선 습관을 내 안에 들였다. 내 마음 속 모든 공간을 내어 준 것은 아니지만, 내쫓지는 않은 것이다. 그렇게 하나의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보니 또 다른 이야기 보따리가 궁금해지고, 그렇게 하나씩 풀다 보니 이 모든 보따리가 나만을 위한 것도, 너만을 위한 것도 아님을 알게 되었다. 마음 문을 열어 채식을 맞이하니, 너무 많은 선물이 내 삶에 찾아왔다.


두부면 요리, 나물, 신선한 채소, 고기 안 들어간 미역국. 이렇게 먹으면 월경통이 없지요. :)








Reference.

1) 데이비드 펄머터 (2015년). 그레인브레인. 지식너머. P7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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