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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ha Oct 11. 2020

선택하는 삶

고기를 먹지 않기로 선택한 것이다.

자발적 선택이기에 기쁨이 따른다.


국외에서는 채식이 환경과 건강에 좋다는 연구 결과가 쌓이고 적극적으로 공유되며 보편적인 식단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유럽 국가에서는 대부분의 식당에서 Vegetarian옵션이 가능하며, 1)프랑스는 유치원부터 초중고까지 최소 일주일에 한 번은 채식 급식을 제공하도록 의무화했다. 이 법안은 2018년 10월에 통과되었는데 60%의 프랑스인들이 이 법안에 찬성하였고 15~26세 청소년층 11%는 채식 급식을 ‘매일’ 먹을 의향까지 있다고 답했다. 2)포르투갈에서는 2015년 모든 학교, 대학, 병원에 채식 선택권을 갖게 해달라는 청원운동이 시작되었고 그 결과 모든 공공기관의 식당 시설은 최소한 하루 한 가지 채식 메뉴를 제공해야 한다는 법이 통과되었다.


안타깝게도 국내의 움직임은 다소 더디다. 3)2008년 15만명 수준이었던 채식 인구가 2019년 기준 200만명까지 10배 이상 성장하였지만 아직 학교, 병원, 직장 급식에서 채식 식단을 접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채식이 가능한 식당이나 간편 식품의 종류도 국외에 비해 제한적이다. 개개인의 변화가 사회의 움직임을 이끌기도 하지만 공공 시스템이 채식 친화적으로 바뀔 때 보다 많은 개인이 쉽게 동참할 수 있을 것이다. 채식의 긍정성을 먼저 알게 된 사람들이 각자의 상황과 여건에 맞춰 실천하면서 그러한 움직임을 지지하는 정치인을 위해 투표권을 행사하는 태도도 필요하다. 문화와 정치, 개인과 사회는 서로 역동적으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


현재로서는 나도 채식을 하며 불편함을 느낄 때가 많다. 회사 급식에서, 외식이나 회식을 할 때, 국내 여행을 떠났을 때가 그러하다. 오히려 해외 여행을 갔을 때는 채식이 어렵지 않았다. 골목 식당부터 호텔 레스토랑까지 다양한 공간에 채식 메뉴가 준비되어 있었고 없으면 “이 메뉴에 이런 저런 재료는 빼고 조리해 주세요”라고 요청하면 된다. 아무도 이유를 물어보거나 불편한 내색을 보이지 않았다. 자주 받던 요청인 듯 흔쾌히 “당연히 해 드리지요.”라고 대답했다. 국내에서는 눈치가 조금 보인다. 하지만 완벽하게 채식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상황에 따라 상대적으로 나은 선택을 하는 것에 집중하니 마음이 편안하다. 또 강요에 의한 무기력한 행동이 아니라 이유 있는 자발적 선택이기에 기쁨이 따른다. 겉으로 드러나는 불편함이 있을지언정 내적인 평안과 뿌듯함이 더 크게 나를 채우고 그렇기 때문에 지속 가능하게 채식을 지향할 수 있다.






나는 생크림 케이크를 먹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먹지 않기로 선택한 것이다.


내 생일이 껴있는 주말, 부모님이 밥을 차려 주신 다며 우리 부부를 초대하셨다. 채식하는 딸을 위해 잡채와 미역국에 고기를 넣지 않으시고 감자전도 부쳐 주셨다. “케이크는 어떻게 할까? 너는 생크림 안 먹지?” 엄마가 물어 보셔서 “저는 그냥 떡에 촛불 꽂고 싶어요!” 말씀 드렸다. 비건 케이크를 구할 수 있었지만 부모님이 구매하기에 먼 곳에 있기도 했고 건강에 유익할 것이 없는 밀가루 섭취도 최근 줄이고 있기 때문에 떡을 선택했다. 당일, 작은 시루 떡에 초를 꽂고 생일 노래를 불렀다. “생일 축하 합니다~ 생일 축하 합니다~ 사랑하는 소영이~ 생일 축하 합니다~ 후~” 노래가 끝나고 아빠는 아무리 그래도 먹음직스러운 케이크 하나쯤은 준비해야 했다며 후회 하시는 눈치셨다. 작은 떡이 초라해 보여 마음에 걸리신 것일까? “나는 너무 좋아! 행복해!”라고 내가 말하니 아빠도 씩 웃으신다.


돈이 부족해 케이크를 살 수 없었다거나 내 생일을 축하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면 나는 외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생일 케이크의 부재는 적극적인 선택의 결과였다. 보여지는 화려함보다는 나의 능동적 선택, 가족들의 마음, 서로 존중하는 태도가 내 생일을 더욱 빛내준다는 것을 알기에 감사와 평온함으로 생일을 기념할 수 있었다.


나는 생크림 케이크를 먹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먹지 않기로 선택한 것이다. 선택이 줄어들었지만 또한 가장 적극적으로 선택하며 살고 있다. 일상적인 선택 앞에 더 본질적인 선택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의사결정의 우선순위가 재편된다. 생크림 케이크를 먹을지, 초코 케이크를 먹을지 선택하기 이전에 생일에는 꼭 케이크를 먹어야 하는지 한번 생각해 본다. 유제품 섭취를 되도록 하지 않기로 결정한 나의 생일에까지 케이크가 꼭 필요할까? 이런 내 마음을 우리 가족은 이해할까? 솔직하고 편안한 대화가 가능한 사람들과 함께라면 새로운 시도도 두렵지 않다. 작은 시루떡만큼이나 무해하고 다정했던 그 시간은 그 어떤 기념일보다 기분 좋게 기억되고 있다.


내 생일 케이크






선택하는 삶에 대해 생각해 본다. 무엇이 내가 자유로운 인간임을 깨닫게 해 주지? 에어컨 바람 시원한 거실에서 포근한 담요를 덮고 TV를 볼 때? 나는 그 어떤 깊은 감정도 느끼지 못한다. 이런 안락함은 짱구도 누리는 것들이다. 오늘은 너무 덥지 않으니 에어컨을 키지 말자고 선택 할 때, TV를 끄고 독서와 명상으로 나의 지성과 내면을 채울 때, 나는 내가 습관의 노예가 아님을 자각한다. 사유하는 인간임을 느낀다. 음식에 대한 선택도 마찬가지다. 입에서 당기는 음식을 즉시 주문해서 넘치게 먹을 때 배는 부르고 입은 흡족하지만 그게 다이다. 먹을 수 있음에도, 살 수 있음에도, 한 번 고민해보고 손을 내려놓을 때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만족감을 느낀다. 신체적 안락함이 아닌 자유로운 마음과 선택 속에서 인간성을 누리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자유롭고 능동적인 태도로 음식을 고른다. 선택하는 삶을 살아간다.








Reference.

1) 목수정. ““먹는 일도 교육이다” 프랑스 ‘채식 급식’ 의무화” OhmyNews.

http://www.ohmynews.com/NWS_Web/Event/Premium/at_pg.aspx?CNTN_CD=A0002584504 (2019년 11월 8일)

2) 김현지. “포르투갈, 국가가 채식을 권리로 보장하다” 프레시안.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160200?no=160200#0DKU (2017년 6월 10일)

3) 박진욱, 박지영. “폭풍 성장하는 베지노믹스-햄버거·화장품…일상 파고든 ‘비거니즘’” 매일경제.

https://www.mk.co.kr/news/business/view/2020/09/981807/ (2020년 9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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