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움 Jun 18. 2023

8. 발맞춤

주고받기의 첫걸음은 표현과 반응이다.

주고받기의 첫걸음은 표현과 반응이다.

“누나! 누나, 누나, 누나!”

진오가 헐레벌떡 카페로 뛰어들어왔다. 소형청소기로 빈백을 청소하던 여정이 진오를 보고 전원을 껐다.

“뭔 일이야?”

“왔어, 왔어! 저기.”

“저기 뭐?”

여정이 무덤덤하게 반응하자 진오가 답답한 듯 여정의 휠체어를 밀고 밖으로 나갔다.

“어디가? 나 장사해야 돼.”

“어차피 다 자동이잖아. 무인카페 해도 된다니까. 그게 문제가 아니고...”

“누가 왔는데?”

여정이 물었으나 진오의 입이 딱 붙어 열리지 않았다.

“별이 엄마 온 거야?”

진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야! 그럼 네가 만나면 되지! 날 왜 데려가?”

“무서워.”

진오가 여정을 쳐다보지 않고 대꾸했다. 여정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지만 더 이상 뭐라 하지 않았다. 심상의 마당에 있던 풍이 여정을 반겼다.

“풍이는 왜 여기 있어?”

“혼자 심심할까 봐 데려다 놨지.”

“야, 건물주! 여기 엄연히 남의 영업장이야. 아무리 네 건물이라도 세입자가 따로 있는데.”

“시연씨가 괜찮다고 했어. 사고를 치긴 했지만...”

“사고?”

“나 별이 데리러 가야 돼...”

여정이 다그치듯 쏘아보자 진오가 여정의 시선을 피했다. 그러곤 재빠르게 휠체어의 기어를 잠그고 풍을 데리고 나갔다.

“아니, 갈 거면서 날 왜 데리고 온 거야?”

여정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별이 뽑기 기계 앞에 쪼그리고 앉아 진오를 쳐다봤다. 간절한 눈빛이었다.

“하나만 뽑기로 했잖아. 아빠 간다.”

진오가 풍의 목줄을 끌고 가려하자 별이 울먹거렸다. 풍이 귀를 쫑긋하고 별에게 다가갔다. 목줄이 짧아 더 갈 수 없자 풍이 진오를 쳐다봤다. 진오가 목줄을 느슨하게 잡자 풍이 한 발짝 더 다가가 별의 얼굴을 핥았다.

“마음에 안 들어도 어쩔 수 없어. 약속했잖아. 그래... 나도 약속했지. 너랑 너의 그...여자...”

진오가 한숨을 쉬며 중얼거리다 생각에 잠겼다. 편의점 주인이 별에게 손을 흔들며 나왔다.

“별이 왔구나! 별이 아빠는 뭘 그렇게 중얼거려?”

편의점 주인이 진오의 팔을 툭 치자, 진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쳐다봤다.

“아! 아뇨, 아뇨. 별이 이제 가야 되는데 저렇게 버티고 있어요.”

“아유, 그래도 별이는 아주 착한 거야. 울지도 않고 소리 지르지도 않고 발버둥 치지도 않고. 아주 멋져!”

편의점 주인이 엄지를 치켜세우며 별에게 오백 원짜리 동전 두 개를 건넸다.

“이건 별이 아주 잘 참아서 주는 거야.”

별이 가만히 서서 주인과 진오를 번갈아 쳐다봤다.

“별이, 두 손으로, 고맙습니다.”    

별이 진오의 말에 주인을 빤히 쳐다본 채 두 손을 내밀었다.


심상 마당에 하영과 여정이 앉아 있었다. 시연이 쟁반에 시원한 레몬티 두 잔을 가지고 나왔다.

“너무 서운해하지 말아요. 걔가 원래 자기 말고는 남한테 관심이 없어. 어릴 때도 맨날 혼자 다녔다니까. 마셔요.”

여정이 애써 하영을 위로하듯 말하자 하영이 고개를 끄덕이고 레몬티를 마셨다.

“별이 만나는데 기분이 어때요? 많이 긴장돼요?”

시연이 여정의 앞에 레몬티를 놔주고 하영에게 물었다. 하영이 굳은 얼굴을 애써 움직여 생긋 웃었다.

“아무리 삼 년이어도 별이는 엄마 알아보겠지? 별이 엄마는 별이 한눈에 알아봤어요?”

여정이 부드럽게 바라보자 하영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치원에 애들이 많았는데 한눈에 딱 들어오더라고요. 아기 때 얼굴이랑 똑같았어요. 아기 때는 방긋방긋 잘 웃고 사람도 좋아했었는데, 유치원에서는 표정도 없고 늘 혼자더라고요. 제가 그렇게 만든 거 같아서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하영의 눈시울이 빨개지더니 눈물이 뚝 떨어졌다. 시연이 손수건을 건넸다.

“앞에 보고 걸어야지. 넘어진다!”

골목에서 진오의 목소리가 크게 들렸다.

“별이 오나 봐요!”

시연이 일어나 대문 앞으로 나갔다. 별이 진오의 손에 든 뽑기 통을 빤히 보며 걸어오고 있었다. 진오가 마당 안의 하영을 흘기듯 쳐다보다가 여정의 매서운 눈과 마주쳤다.

“별아, 여기 고모들 많네. 재미있게 놀고 와.”

진오가 불만스러운 듯 뚱한 목소리로 말하고 뽑기 통을 시연에게 넘겨주었다. 시연이 어리둥절하여 뽑기 통을 받자, 별의 시선이 시연의 손으로 옮겨졌다.

“별이, 이거 열어줘?”

시연이 알아차리고 묻자 별이 끄덕였다.

“들어가서 열어줄게. 들어 가자.”

별이 시연을 따라 마당으로 들어섰다. 진오가 고개를 휙 돌려 냉정하게 걸어가다가 모퉁이에 멈춰 섰다. 별은 시연의 지시대로 의자에 앉아 뽑기 통이 열리길 기다렸다. 시연이 뚜껑을 살짝 열어 별에게 주었다. 별이 기대에 찬 얼굴로 뚜껑을 돌려 열었다. 별의 얼굴이 환해졌다. 뿌듯한 듯 통 안의 피규어를 꺼내 높이 들고 흔들며 웃었다.

“별이 기분 좋구나!”

하영이 별을 따라 웃으며 말을 건넸다. 별이 무심코 하영을 쳐다보다가 표정이 굳었다. 하영도 덩달아 웃음기가 사라지고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여정이 하영에게 웃으라는 손짓을 하자, 하영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별이 하영을 빤히 쳐다봤다. 하영의 마음이 점차 안정되면서 따뜻한 미소가 지어졌다. 별이 안심한 듯 다시 피규어를 쳐다보고 웃었다.

“별아, 여기 예쁜 사람 누구야?”

여정이 조바심이 나서 물었다. 별이 말없이 피규어를 바라보다 망설이듯 입술을 삐죽거렸다. 하영과 시연, 여정이 숨죽이며 별의 입을 쳐다봤다.

“엄마...”

별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셋의 얼굴에 놀라움과 기쁨이 솟았다.

“우리 별이, 엄마 기억하는구나! 고마워 별아.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하영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별을 안았다. 별이 여전히 피규어를 빤히 바라봤지만 기분 좋은 표정이었다. 시연과 여정이 그제야 안도의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모퉁이에 서서 하영과 별을 바라보던 진오의 표정이 복잡하게 일그러졌다.  


오랜만에 화창한 토요일 오후였다. 시연이 마당에 앉아 햇빛을 쬐고 있었다. 리암이 빨간 음료가 담긴 유리잔 두 개를 들고 왔다.

“배달 왔습니다!”

“빛깔이 너무 예뻐요! 뭘로 만든 거예요?”

시연의 질문에 리암이 기억해 내려는 듯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사람 이름 같았는데... 오...?”

“오미자?”

“맞아요! 와, 바로 아네! 근데 주말에도 출근해요?”

시연이 목이 말랐던지 오미자를 벌컥벌컥 마셨다. 리암이 마주 앉아 시연의 답을 기다렸다.

“집보단 여기가 더 편해서요. 근데 리암은 무슨 뜻이에요? 한문이에요?”

시연이 궁금한 듯 묻자 리암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빠는 윌리엄이라고 불러요. 엄마가 부르는 애칭인데, 난 이게 더 마음에 들어요. 뜻은... 강한 의지의 전사? 소망? 뭐, 그런 의미였던 거 같아요. 어릴 때 엄마가 ‘너는 엄마의 소망이야. 강하게 자라줘.’라고 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러곤 날 떠났죠.”

시연이 리암을 고요하게 바라봤다. 리암이 한참 시연의 시선과 마주하다가 눈을 찡긋했다. 시연이 멍하게 있다가 깨어났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지금 나한테 빠져든 거예요?”

리암의 장난스러운 표정에 시연이 입을 쩍 벌리고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말도 할 줄 알아요? 언니는 리암이 여자한테 엄청 차갑다고 걱정하던데! 언니가 리암을 전혀 모르고 있네요.”

시연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리암이 아니라는 듯 두 손을 저었다.

“미안해요. 시연씨한테는 매번 선을 넘는 거 같아요. 마음이 더 가까워지고 싶나 봐요.”

리암이 담담하게 이야기하자 시연이 어색해져 눈만 꿈뻑였다. 마침 리암의 핸드폰이 울렸다. 리암이 일어나 시연에게 화면을 보여주었다. 여정이었다.

“이따 또 올게요!”

리암이 시연을 바라본 채 다정하게 웃으며 뒷걸음으로 걷다가 돌아섰다. 시연이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지나네 분식집은 사람들로 붐볐다. 지나가 목발을 짚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주말에는 그냥 집에 있으라니까.”

분식집주인이 떡볶이를 휘젓다가 지나를 보고 한마디 했다. 가게 안에서 먹는 손님은 세 명뿐이었다. 대부분 밖에서 기다리다 포장으로 가져갔다. 지나가 주방 가까이 있는 테이블에서 크로키북을 찾아들었다.

“이거 가져가려고 왔지, 겸사겸사 엄마랑 밥도 먹고! 좀 있음 손님 다 빠지잖아.”

지나가 의자에 앉아 익숙하게 목발을 겹쳐 벽에 세웠다.

“오~ 엄마 생각도 해 주고, 딸밖에 없네! 저녁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분식집주인은 지나의 엄마였다. 그녀는 자동적으로 순대를 썰고 튀김을 담고 포장을 하며 바쁘게 움직였다. 바쁜 손과 달리 얼굴은 아주 평온해 보였다. 금세 손님이 뜸해졌다. 지나 엄마가 한숨을 돌리고 홀의 테이블을 치우려는데 그릇들이 깔끔하게 포개져 있었다. 지나를 쳐다보자 지나는 열심히 스케치를 하고 있었다.

“우리 딸 최고야! 엄마도 도와주고 그림도 잘 그리고! 맛있는 거 뭐 해줄까?”

“음... 떡 볶음밥? 치즈 많이!”

지나 엄마가 한껏 행복해하자, 지나가 웃으며 말했다. 그때 마침 시연이 지나 분식으로 들어왔다.

“저 먹고 갈 건데요. 떡볶이랑 순대랑 일인분씩만 주세요.”

“네, 여기 앉으세요.”

지나 엄마가 시연에게 자리를 내주고 쌓인 그릇을 얼른 치웠다. 지나가 시연을 관찰하듯 빤히 쳐다보더니 활짝 웃었다.  

“저기 새로 생긴...심상! 거기 쌤이죠?”

지나가 시연에게 말을 걸자, 시연이 신기한 듯 지나를 보고 웃었다.

“오픈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어떻게 알아?”

“지나가다 봤어요. 그림 배우는데 얼마예요? 비싸죠?”

“그림 좋아하는구나?”

지나 엄마가 난처한 듯 웃으며 접시 두 개를 시연 앞에 놓았다.

“아유, 죄송해요. 애가 너무 직설적이라. 애가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데 중학생이라 그런지 학원비가 되게 비싸더라고요.”

시연이 괜찮다는 듯 지나 엄마에게 미소를 짓고 지나를 돌아봤다. 크로키북에 그린 그림은 꽤 실력이 좋았다.

“취미야, 입시야? 예고 갈 생각이야?”

시연이 지나에게 묻고 떡볶이를 입에 한가득 넣었다.

“아뇨. 그냥 좋아서 하는 거예요. 예고는 돈도 많이 들고, 저 공부도 곧잘 하거든요!”

“그럼 그냥 와. 나랑 같이 그림 그리자.”

시연이 재미있다는 듯 지나를 보고 웃었다.

“진짜요? 진짜 공짜예요? 대박! 엄마!”

지나가 흥분해서 엄마와 시연을 번갈아 쳐다봤다. 시연이 고개를 끄덕이고 떡볶이를 먹는데 집중했다.

“아유, 아니에요. 그래도 공짜는 아니죠. 많이는 못 내도...”

지나 엄마가 튀김을 건지다 말고 두 손을 저었다.

“진짜 괜찮아요. 같이 그리면 저도 즐겁고 좋죠. 핸드폰 있어?”

지나가 끄덕이며 핸드폰을 보여주자 시연이 한 손을 내밀었다. 손이 닿지 않자 지나가 목발을 잡고 일어나려 했다. 시연이 깜짝 놀라 어정쩡하게 일어나 지나의 핸드폰을 낚아챘다.

“다리는 다친 거야?”

시연이 무덤덤하게 묻더니 지나의 핸드폰에 자신의 번호를 입력하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내 번호야. 시간 약속은 톡으로 하자!”

시연이 핸드폰을 건네주자 지나는 대답 없이 번호를 저장하기 바빴다. 지나 엄마가 민망했는지 튀김을 얼른 접시에 담아 시연에게 다가왔다.

“이건 서비스예요. 사고가 나서 다쳤어요. 육 개월째 저러고 있어요. 학교도 휴학하고...”

지나 엄마가 지나를 흘끗 보고 대신 답했다. 시연이 입안 가득 오물오물 씹으며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했다. 그러곤 튀김을 집어 떡볶이 국물에 묻히더니 입 안에 쑤셔 넣었다. 그제야 지나가 시연을 보고 뿌듯한 듯 웃었다.

“우리 집 떡볶이 진짜 맛있죠?”

지나가 해맑게 물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밝은 에너지가 넘쳤다. 시연이 덩달아 기분이 밝아져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이전 07화 7. 바로서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