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할 수 있는 사람

예찬주의자#2

by 매버지

최근 기안84가 마라톤에 도전하는 예능인 [극한84]를 즐겨 보고 있다. 기안84와 크루들이 전 세계의 독특한 지역과 특이한 컨셉의 마라톤에 도전하고 있는데, 지금 방영되고 있는 지역이 북극 '그린란드'다. 수만 년 동안 얼어있는 빙하 위를 뛰고 툰드라를 달려 정규 마라톤 코스인 42.195km를 완주해야 한다. 비장한 모습으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북극 마라톤에 도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과연 그들은 왜 그렇게 극한의 상황에서까지 뛰어야겠다고 생각을 한 걸까?


기본적으로 도전을 좋아하는 심리와 자신의 한계가 어디인지 느껴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일 거라 생각한다. 나 역시 그런 인간이었다. 과거형으로 쓴 이유는 요즘엔 그런 마인드가 꽤 많이 흐려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그런 DNA가 다 사라져 버린 것 같지는 않다. 평온한 일상에서 가끔 꿈틀거리는 마음속 들끓음이 여전히 존재한다.


그 이유는 타고난 성향 때문일까? 어릴 적 나는 수줍음이 많은 아이였다. 간단히 국어책을 읽는 발표에도 심장이 두근대고 말이 어눌해지며 얼굴이 새 빨개지던 그런 아이. 기본적으로 겁도 두려움도 많았던 그런 아이였던 것 같다. 그런 성격이 형성된 이유로 타고난 기질도 있겠거니와 그 시절 부모님들이 대부분(?) 그러하셨지만 칭찬과 응원보다는 과잉보호와 다그침이 먼저였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성향은 용감하지 못했지만 조금씩 테토남으로 변하게 해 준 것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운동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주 잘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잘하고 싶다는 마음에 누적된 연습들이 쌓여 축구와 농구에서 조금 두각을 보였다. 반대표로 나서 다른 반과 대결을 펼치기도 하고, 다른 학교로 원정을 떠나기도 하였다. 운동을 하며 느낄 수 있는 흥분과 도파민이 승리 또는 좌절을 경험하며 용기라는 것이 쌓였던 것 같다.


내가 선택한 행동이 새로운 환경을 내게 제시해 주었고, 그 결과 타고난 기질을 이겨내고 도전을 즐기는 성향으로 바꿔준 것이다. 글을 쓰며 이런 생각을 차차 하다 보니 빅터 프랭클 박사가 얘기한 자극과 반응 사이의 공간 개념이 떠올랐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다.
그 공간 안에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있다.
그 선택이 우리의 성장과 행복에 직접 관련이 되어있다.


너무 유명한 말이지만 그다지 와닿지 않았던 말이다. 사람들의 행동은 기본적으로 자유의지에 따라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항상 나와 주변 환경의 변화와 자극에 따라 반응한다. 예를 들면 졸리면 잠을 청하는 행동 역시 내 몸속 환경 변화와 자극을 받아들이는 과정인 것이다. 하지만, 자극과 반응 사이에서 습관적으로 무의식적인 선택을 하곤 하는데 그럴 경우 긍정적인 변화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빅터 프랭클 박사가 말하는 자극을 받아 반응을 하기 전 공간에서 우리는 조금이라도 내게 가치가 있는 욕구에 부합한 선택을 해야 하며 그것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어릴 적 운동을 통해 경험했던 것처럼 골을 잘 넣는 친구를 보며 나도 더 잘하고 싶었던 욕구를 추운 겨울에도 언 땅에서 홀로 농구공을 튕기며 슛 연습을 했던 그때의 나처럼 행동해야 함을 깨닫는다. 그래서인지 새해에도 불구하고, 나태한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건강하지 못한 몸뚱이를 알면서도 드러누워 숏츠에 빠져있는 내게 벌을 주고자 주말부터 운동을 시작했다. 여전히 부족한 메타인지 덕분에 이틀 동안 굳어진 몸을 살펴보지 못하고, 마구 해댔더니 작년부터 고질적으로 날 괴롭힌 허리와 무릎이 아우성쳤다. 일단 허리에 파스를 붙이고, 뛰지 못해 걷기만이라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정신이 번쩍 드는 차가운 공기가 좋다. 코 끝이 얼얼하고 귀가 시릴수록, 나는 아직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상기하게 된다. 뛰지 못하면 걷고, 걷지 못하면 서서 숨이라도 고른다. 북극의 빙하 위를 달릴 수는 없지만, 자극과 반응 사이의 그 짧은 공간에서 오늘도 나를 조금 덜 망가뜨리는 선택을 해보려 한다. 혹독한 추위는 나태해져 가는 내 정신을 깨우는 훌륭한 비타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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