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냥 해보는 것

예찬주의자

by 매버지

내가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음을 실감한다. 좋아함의 기준이 모호하고, 예전에는 좋아했으나 지금은 덜 좋아하거나 안 좋아하는 것도 있고, 일상에서 찾으려 하니 이게 좋아한다고 할 만한 것인가 싶기도 하며, 특별한 것이 있나 찾아보면 내 삶은 대체적으로 무난하다.

애초에 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언제 어떻게 끝을 맺을지 정해 놓지 않았기에 시작 또한 그렇게 깊이 생각을 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누군가는 이런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는 게 쉽지 않았을 거라 말하기도 하고 혹자는 언제까지 얼마나 쓸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품기도 한다. 여전히 모르겠다. 그냥 써 보는 것이다. 그냥.


이 글의 서두처럼 나는 좀 무모하다. 뒷 일을 생각지 않고 일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그중 남들과 비교해 가장 무모하다 느껴질 만한 것 중 하나는 이직과 창업이었다. 보통 은행 또는 보험사에 입사하면(증권은 다르다... 조기 이직률이 높다) 정년까지 무탈하게 근무하곤 한다. 나는 총 3곳의 금융회사를 다녔으며 각각의 금융회사에서 맡았던 업무도 다 다르다. 보험사에서는 영업과 영업관리 등의 일을 했고, 은행에서는 사업기획과 컨설팅, 교육 등의 일을 했다. 첫 번째 은행에서 근무를 하다 관심이 생겨 인재개발과 관련한 기업교육 석사과정을 밟았고 퇴사한 후 실제로 관련 창업을 하였다. 하지만 내가 재미를 느낀 부분과 사업은 큰 괴리가 있어 빠르게 접고, 운 좋게 다시 또 두 번째 은행을 입사하였다.

하지만 점점 금융회사의 업무방식에 답답함을 느낀 나는 좀 더 유연한 조직에서 내 역량을 펼쳐보고 싶었다. 그렇게 네 번째 이직을 하였고 O2O서비스를 제공하는 IT 플랫폼 회사였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노력한 만큼 드러나는 회사의 성장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고 많은 보람을 느꼈다. 그러나 임원으로서 회사의 미래를 논의하던 중 CEO와 엇갈리는 부분이 명확히 있었고 의견을 좁히지 못해 퇴사를 하였다. 이후 애니메이션 IP를 가진 콘텐츠 회사의 제안으로 이직을 해 전혀 다른 산업군에서 일을 하기도 하였다. 나름대로 각 회사별로 근무하는 동안 크고 작은 성과를 만들어 냈지만 마지막 회사를 떠난 후 지금은 집에서 전업주부로 지낸 지 1년이 되었다. 얼마 전 친한 후배가 찾아와 '형, 왜 집에서 이러고 있습니까?'라고 질문 아닌 채근을 했다. 그때 나는 '그냥. 하고 싶어서.'라고 했을 뿐 딱히 뭐라고 대답할 것이 없었다. 지금은 그냥 이게 해보고 싶다.


요리를 할 때도 새로운 도전을 해 보는 게 좋다.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 보는 것도 즐겁고, 전혀 다른 재료로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은데 얼마 전엔 홍어애를 넣은 라면을 끓여서 대실패를 맛보기도 하였다. 여행을 가도 주변을 지도 없이 걸어 다니는 것을 즐기고, 매번 걷는 길을 걸어갈 때도 가보았던 길이 아닌 새로운 길로 가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게 새로운 길을 걷다 보면 이전에는 보지 못한 새로운 가게와 사람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리고 누군가 내게 뭔가를 같이 해보자고 제안(일이나 모임 등)을 할 때 정말 아니다 싶은 제안만 아니면 거절하지 않고 해보려 한다. HRD컨설팅 회사를 운영할 때 지인의 소개로 조금 생소한 주제의 낯선 산업군을 다루는 강연을 한 기억이 난다. 강연 제안자는 이미 많은 이들에게 제안을 했다가 까였는지 꼭 해주길 바라는 눈치였는데 난 '이거 좀 재미있겠다, 그냥 한 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수락했다. 하지만 제안받은 이후 강연하는 그날까지 거의 매일 날밤을 세워가며 국내외 자료를 뒤지고 수십 번 강의자료를 수정해 나가며 1시간짜리 특강을 마쳤다. 심지어 해당 협회에서 출간하는 잡지에 관련된 내용으로 기고까지 했다.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 수 있어 참 다행이었다.


최근 들어 가장 열심히 그냥 해보는 것 중 하나가 글쓰기, 운동 그리고 나를 시스템에 끼워 맞추는 일이다. 작년 5월부터 시작한 글쓰기는 그냥 하다 보니 어느새 60개가 넘는 글을 썼고 기록으로 남았다. 누군가는 출간 등 목표를 가지고 쓰라고 하지만 아직 그런 역량도 되지 않을뿐더러 그냥 생각을 글로 쓰는 일이 즐겁기에 매주 1편 이상의 글을 쓴다. 운동은 작년 12월부터 시작해 거의 빠짐없이 매일 진행하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이젠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시작하긴 했는데 운동은 글쓰기만큼은 편하고 즐겁지는 않다. 운동을 하러 가기 전 여전히 갈까 말까 고민하는 나를 발견한다. 그래도 가서 하고 나면 얼마나 개운하고 좋은지. 그리고 정직한 몸이 얼마나 바로 아웃풋을 보여주는지 참 신기하다. 마지막으로 글쓰기, 모닝루틴, 주간/월간성찰 모임을 통해 나를 시스템 안에 넣어두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도록 하게 한다. 워낙 게으르고 스스로 목표를 세워 움직이는 것에 둔감한 사람이고, 그냥 해보는 것을 좋아하는 만큼 그냥 안 하기도 좋아하는 나이기에 이렇게 시스템 속에 들어가 있으면 그나마 크고 작은 목표를 세우고 나를 움직일 수 있도록 도움받을 수 있다.


나는 왜 이렇게 그냥 해보는 걸까? 누군가가 보기엔 '메타인지가 엄청 떨어지니까 저러지'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는 본연의 이유는 '낡고 싶지 않아서'인 것 같다. 무언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주저하지 않고 해 보는 것은 어려움이 닥칠 수 있지만 안 하고 넘어가는 일보다 훨씬 이로운 것 같다. 그 일을 해냈을 때는 또 다른 기회를 포착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실패했을 때는 나의 부족함을 보완하기 위해 추가적인 노력을 가할 수도 있다.

일적으로 하나의 산업군에서 오랜 시간 노력한 장인을 보면 늘 부럽고 감탄한다. 오랫동안 하나의 일에 자신의 노력을 축적한 경험에 대한 위대함을 느낀다. 과거 그들을 보고 '나는 왜 이럴까'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좀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다. 어쨌든 난 포기하지 않았고 내가 해보고 싶거나 의미가 있으며 좋아하거나 잘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일을 끊임없이 찾고 도전하고 있지 않은가? 이게 장인정신과 같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결국 최종에는 내가 그들과 비슷한 류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자조해 본다. 어쨌든 킵고잉.

keyword
이전 03화슬램덩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