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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함

예찬주의자

by 매버지

개인적으로 한적한 카페를 좋아한다. 카페를 운영하시는 사장님 입장에서는 손님 없는 가게가 싫겠지만, 나는 참 좋다. 특히, 이른 아침 또는 어중간한 오후에 조용한 로컬 카페에 앉아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일은 매우 풍요로운 일이다. 지금도 우리 동네 조용한 카페에 홀로 앉아 글을 쓰고 있고 사장님은 홀로 베이킹을 열심히 하고 계시는 중이다.


한적함이 주는 즐거움은 새로운 발견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지방에 놀러 갔다가 우연히 들른 사찰이나 성당, 골목길에서 길을 잃었다가 만나는 작은 책방, 여기 이런 숙소가 있어라고 할 법한 곳의 안락한 게스트하우스 같이 매우 새롭고 반갑다. 그렇게 찾은 조용한 그 공간에서 잠시 머물고 있노라면 마치 나를 전혀 모르는 세상에 잠시 몸을 담갔다 뺀 기분이 든다.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기가 빨린다는 말이 있다. 개인적으로 사람이 많은 곳을 선호하지 않는데 가장 큰 이유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다. 너무 많은 소리가 섞이면 소음이 되어 내 숨소리는 물론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 혹은 있었을지도 모르는 새들의 지저귐까지 모두 묻혀 버리기 때문이다. 각 사물의 움직임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소리들이 각각 들리고 존재함을 느낄 때 오감이 살아나는 기분이 든다.


모 배우가 제주살이를 하면서 차에 캠핑의자 몇 개를 싣고 다니며 지인이 오면 오름에 들고 올라가 펼치고 앉아 망중한을 즐기는 모습을 TV로 본 적이 있다. 그때 내가 제주에 살게 된다면 나도 꼭 저렇게 해보고 싶다는 로망을 가졌다. 제주는 오름이 정말 많고 아주 유명한 오름을 제외하면 꽤나 한적하기 때문에 만약 내가 의자를 펴고 앉는다면 하루 종일도 있을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 곳에서는 대화하지 않아도 대화한 것 같은 충만함이 느껴질 것 같다.


살고 있는 집 안에서도 한적함은 찾을 수 있다. 단, 집안에서는 눈에 보이는 일감들이 존재하기에 마음껏 한적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설거지부터 아이가 놀다 마음껏 흩뿌려놓은 장난감들을 다 제자리에 놓고 바닥을 쓸고 닦아내야 한적한 순간을 마주할 수 있게 된다. 그땐 한적함과 피곤함이 동시에 몰려와 완벽한 고요함, 한산함을 느끼기엔 어려움이 있는 것 같다. 아마도 익숙한 공간이 주는 편안함과 의도치 못한 곳에서 느끼게 되는 한적함은 좀 다른가 보다.


맞벌이 부모님 덕분에 혼자 있었던 시간이 많았던 나는 어릴 적 자주 갔던 공간이 있다. 그곳은 집에서 10~15분 거리에 있는 실내체육관 부지이다. 실내체육관을 가운데 두고 좌측엔 수영장, 위쪽엔 양궁장 등이 주변을 크게 둘러싸고 있어 어딜 가도 한적하고 푸르거나 금색을 띈 잔디와 나무들이 많았다. 홀로 그 공간을 거닐다 보면 곤충이나 동물, 새를 만나기도 했고 잠자리는 무수히 내 머리 위를 날아다녔다. 가을엔 바람 소리와 풀들이 부딪히는 소리, 땡볕이 내리쬐는 여름엔 매미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걷노라면 마치 나 혼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혼자여도 즐거웠다.


요즘 현대인들은 시간을 내거나 마음을 먹지 않으면 한적해지기 힘든 세상이다. 복작복작 거리는 시끄러움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한적한 공간이 별로 마음에 안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원래부터 좋아해 일부러 그런 시간과 공간을 찾아다녔던 나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좋아지는 느낌이 든다. 이제는 가족이 생겨 예전만큼 그런 호사를 누리긴 쉽지 않지만 그래도 가족여행을 가서 새벽이면 조금 일찍 일어나 그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보며 조용하고 평화로운 한적함을 즐기는 나는 한적함을 예찬한다. 오늘도 그런 한적함을 찾을 수 있는 하루가 되길.


각기 다른 곳에서 찾은 한적함
뜻밖의 행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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