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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추 Jun 26. 2024

소매치기의 아픔을 딛고 다시 캄보디아 프놈펜 둘러보기

캄보디아, 라오스, 태국, 필리핀 여행기(4)

 오전 7시도 안 된 이른 시각, 호스텔 룸메이트들의 부지런함에 나도 잠이 깼다. 호스텔 숙박의 장점 중 하나, 잠귀가 밝은 나 같은 사람은 알람을 맞춰놓지 않아도 늦잠 잘 일이 없다. 하지만 나는 바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일어나자마자 어제의 그 소매치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일어나면 다시 프놈펜을 여행해야 할 테고, 돌아다니다 보면 또 소매치기의 위험에 노출되게 될 텐데. 잠이 덜 깬 채 이런 생각을 하다가 억지로 다시 잠을 청했다. 한 시간이 조금 더 흐른 뒤, 이대로 계속 누워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일어나 준비하고 숙소를 나섰다.


 어제 대략 다음 행선지를 프놈펜 왕궁이나 뚜엉슬랭 대학살 박물관으로 정해놨지만, 숙소를 나오자 자연스럽게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북쪽으로 발걸음이 갔다. 프놈펜 왕궁이나 뚜엉슬랭 대학살 박물관은 남쪽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어제도 남쪽으로 걸어갔었기 때문에 어제와 똑같은 풍경을 보기 아깝다는 생각을 순간적으로 했던 것 같다. 숙소 북쪽에는 왓 프놈이라는 프놈펜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불교 사원이 있는데, 사원 내부로 들어가 보진 않고 바깥에서 잠깐 눈으로만 담고 서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딱히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어서 그랬던 건 아니고 반시계 방향으로 반바퀴 돌아 남쪽으로 가자는 생각에서였다.

외부에서 찍은 왓 프놈, 입장료 1달러
왓 프놈 서쪽 방면엔 대사관이나 관공서, 고급 호텔들이 밀집해 있었다.
허름한 건물들 사이로 우뚝 서있는 반짝이는 고층 빌딩이 현재 캄보디아의 급변하는 경제 상황을 말해주는 듯했다.




 정처 없이 한 시간 정도를 돌아다녔을까. 잠도 완전히 깨고 슬슬 허기도 지기 시작해 항상 쓰던 그 방법으로 아침 겸 점심을 먹을 식당을 선택하기로 했다. 구글 맵을 보면 누렇게 표시된 구역이 곳곳에 있는데, 상점도 유동인구도 밀집한 지역이라 식당 또한 그 구역 내에 많이 있을 확률이 높다. 가본 적 없는 근처 구역을 하나 찍고 가다가, 그 구역에 진입하기도 전에 지역 주민들로 북적이는 식당 하나가 눈에 띄어 주저하지 않고 들어갔다. 비어있는 자리를 골라 앉아있으니 직원 한 분이 다가왔는데 메뉴판은 따로 없고 수프 누들을 판다고 하시기에 그걸로 한 그릇 부탁드렸다. 오늘 먹을 쌀국수는 어제 먹었던 것과 어떻게 다를지 기대하며 기다리다 보니 금방 음식이 나왔다. 먼저 국물부터 한 숟가락 떠서 맛을 보았는데 나쁘지는 않았지만 어제 먹었던 쌀국수 국물에 비해 덜 깔끔하고 담백했다. 하지만 이 집의 쌀국수는 면을 먹어야 진짜를 맛볼 수 있었으니 얇은 쌀국수 면에 푹 배긴 국물이 면과 어우리 져 처음에 느꼈던 부담스러운 국물 맛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튀김가루 비슷한 짭짤하고 매콤한 작은 고명이 면과 함께 딸려오면서 바삭한 식감까지 즐길 수 있게 해 주고, 거기다가 비리거나 잡내 하나 없는 맛있는 고기 완자까지 곁들여 먹으니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처음부터 양념을 추가하지 않고 반 정도 먹고 나서 맵싹한 다진 고추 양념을 듬뿍 넣어 맛에 변주를 주니 마지막까지 질리지 않고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식당이 구글 맵에는 등록되어 있지 않아 같은 건물의 다른 상점 링크를 첨부:  https://maps.app.goo.gl/K2ugVUz1UzYoevi29)

식당의 야외 테이블은 손님들로 가득 차있었다.
고기 완자와 소고기가 들어간 쌀국수 3달러 / 차 무료 제공



 식사를 마친 뒤, 그 주변에서 1달러 짜리 아이스커피 하나 사들고 마저 그 구역을 돌아다녀 보았다. 나는 여행지의 유명한 관광 명소를 방문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관광객들은 거의 가지 않는, 그 지역에 사는 주민들의 자연스러운 생활모습을 엿볼 수 있는 골목을 찾아 돌아다니는 것도 즐긴다. 역시나 이곳에서도 마음에 쏙 드는 골목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지역 주민들만이 이용하는 상점이나 식당이 1km 정도 늘어서있었다. 바로 직전의 시끌거리는 메인도로와 달리 이상하리만치 고요했다.



 더위가 절정에 이르는 한낮도 다가오고 있었고, 어느새 숙소에서 멀리 떨어져 버려서 더 멀어지기 전에 숙소로 돌아가보기로 했다. 돌아가는 길에도 매력적인 거리의 풍경이 즐비하게 기다리고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 목적지 없이 걷고 또 걸으며 천천히 여행지를 눈에 담는 이 여행방식을 어떻게 좋아하게 됐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좋아하게 되어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예쁜 모양의 건물과 테라스, 푸른 식물, 햇볕에 잘 마르고 있는 빨래들
유럽풍 건물 안에 오래된 전통시장이 있는 센트럴 마켓
주변에 비해 튀는 색감의 건물이 내 눈길을 끌었다.
불교 사원 바로 옆 골목에 있는 유흥 거리
캄보디아 국기와 톤레삽 강



 아침의 우려와는 다르게 즐겁게 오전 일정을 마쳤다. 어제의 프놈펜은 잔뜩 흐렸었는데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걸어 다니며 구경하기에도 좋았고, 마음에 드는 풍경들도 많이 볼 수 있어 어젯밤에 비해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물론 돌아다니면서 호객꾼 들이나 가방 속 귀중품이 수시로 신경 쓰이기는 했지만 다행히도 별다른 일은 없었다. 계속 주의해서 다니는 게 조금 피곤하긴 하지만 남은 세 달도 이렇게 조심해서 다니면 큰 문제는 안 생기지 않을까.


 다리도 쉬게 할 겸, 숙소 1층 로비에서 어제 쓰다 남은 글을 두세 시간 정도 쓰고 있다 보니 오전의 맑았던 날씨가 잔뜩 흐려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끝내 장대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왕궁이나 박물관 가는 건 무리일 것 같아 내일 이른 오전으로 미루고, 여행 전에 미리 찾아두었던 헬스장에 가기로 했다. 대부분의 프놈펜 헬스장 가격이 1일 3~5달러 선인데, 지금 숙소에서 도보로 20분 거리의 헬스장 하루 요금이 1달러라기에 구글 맵에 고이 저장해 놨던 것이다. 조금 약해진 비를 뚫고 헬스장을 찾아가 보니 1달러라는 요금에 걸맞게 천정의 팬 몇 개를 제외하곤 냉방시설이 일절 없었고, 전기를 사용하는 기구는 추가금을 내야 했다. 그 습한 더위 속에서 다양한 연령대의 캄보디아 남성들이 웃통을 벗고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나는 차마 탈의할 용기를 낼 수 없었다. 저렴한 가격으로 현지 헬스장 만의 날것의 매력을 한 껏 느끼는 데는 성공하였지만 한증막 같은 더위에 현기증을 느끼며 가까스로 50분 정도 운동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간판은 없지만 구글 맵에 EurAsia Fitness Club이라는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다.
엄청난 열기와 습도와 냄새를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끝내고 저녁 식사를 위해 나가려고 하니 헬스장 갔을 때 잠시 그쳤던 비가 다시 내리고 있었다. 비가 그치길 기다리며 구글 맵으로 가까운 식당을 검색해 보았다. 검색하여 나온 식당 중 이거다 싶은 곳이 보이지 않아 이번에도 항상 쓰던 그 방법을 사용해 보기로 했다. 숙소 바로 옆이지만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골목을 대략적인 목표 위치로 정하고 가보았는데, 막상 가보니 생각지도 못했던 유흥 거리가 나왔다. 거리 양옆으로 술집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고, 그 앞을 지나갈 때마다 여러 명의 여자들이 동시에 빽빽 고함을 지르며 호객하는 것이 무서우면서도 신기했다. 이런 방식의 호객은 처음 경험한 거였다. 수십 명의 고함소리를 듣고 나서야 가까스로 지역 주민들로 가득한 술집 겸 식당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들어가서 메뉴판 먼저 확인해 보니 대부분이 맥주 안주 위주였지만 다행히 반가운 사진 하나가 끼어있어서 맥주 한 캔과 함께 그것으로 바로 주문을 하였다.(식당 구글 맵 링크: https://maps.app.goo.gl/5nHRSo8XpayuCGu16)

식당도 붐볐지만 포장 주문도 매우 많았다.


볶음밥 2.5달러 / 맥주 0.75달러. 실패하기 힘든 볶음밥을 주문했다. 누구나 맛있게 먹을 만한 안정적인 맛이었고, 간장에 절여진 고추 한 조각 곁들여 먹으니 더 훌륭했다.



 다행히 이번에도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어제 소매치기당한 후 흔들리는 멘탈 속에서 충동적으로 예매한 씨엠립행 버스가 당장 내일 점심이었기 때문에 프놈펜에서의 마지막 밤을 이대로 숙소로 돌아가 보내기엔 뭔가 아쉬웠다. 마침 톤레삽 강변이 멀지 않았기에 비 내리는 강 풍경을 보며 마무리하기로 했다. 강과 거리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있자니 오늘이 프놈펜에서의 마지막 밤이라는 게 아쉬워졌다.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를 풍경이라 열심히 두 눈과 카메라에 담아보았다.

야경 또한 아름다운 톤레삽 강
비가 내리는 중임에도 승객들을 태우고 내리는 여객선들이 꽤 있었다
강변에서 바라보는 도심 방면의 풍경도 운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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