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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추 Jun 30. 2024

캄보디아 씨엡립에서 앙코르 와트 방문한 날(2)

캄보디아, 라오스, 태국, 필리핀 여행기(8)

 해자 바깥에서 앙코르 와트의 일출을 보고 나니, 허탈함으로 인해 다시 마음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했다. 어차피 외벽 안으로 바로 돌아가봤자 일출을 보고 나온 관광객들이 중앙사원을 가득 메우고 있을 것 같았기에 일단 해자 주변을 좀 걷기로 했다. 해자를 따라 오른쪽으로 걷고 있는데, 툭툭 기사 한 명이 뒤따라 오며 호객 행위를 하기 시작했다. 해자 주변으로 한 바퀴 돌고 싶으니 툭툭은 필요 없다고 정중히 거절을 해도, 자기와 함께 하면 편하게 여러 사원 구경할 수 있다고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여느 호객꾼들과 달리 거절이 통하지도 않고, 계속 듣고 있자니 정신이 어지러우면서 진도 빠지는 게 느껴져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 다시 무지개다리를 건너 앙코르 와트 외벽 안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측면에서 바라본 무지개다리 모습, 오전 6시도 안 된 이른 시각임에도 관광객들이 끊임없이 들어오고 있다.



 날이 밝아지니 무지개다리 건너 앙코르 와트를 둘러싸고 있는 외벽과 서쪽 정문의 형태가 더 선명히 드러났다. 250m에 달하는 무지개다리를 건너 정면에 보이는 서쪽 정문으로 향했다. 정문을 통과하며 양 옆을 보니 좌우로 외벽 통로가 길게 이어져 있었다. 혹시 이곳도 중앙사원의 1층 회랑처럼 사격형으로 모두 이어져있나 싶어 통로의 끝까지 가보았으나 통로 양쪽 모두 막혀있었다. 다시 정문으로 되돌아오며 건물 내 기둥과 벽의 장식, 온갖 평면이란 평면엔 다 새겨져 있는 갖가지 부조, 그리고 문과 창문, 천장구조 등을 유심히 살펴보았지만 전날 앙코르 국립박물관의 설명문을 열심히 익혔던 내용과 잘 이어지지 않았다. 박물관에서 명확한 기준에 따라 분류된 전시품들을 하나하나 감상할 때랑은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실제 감상에서 오는 만족감을 기대했건만, 만족감 대신 당황과 혼란스러움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돈 내고 가이드를 고용하는 이유를 곧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무지개다리 위, 다리 건너 정면에 보이는 앙코르 와트의 서쪽 정문과 긴 외벽
서쪽 정문 내부, 부드러운 사암 위에 정교하고 입체적인 부조가 가득 새겨져 있었다.



 눈에 들어오는 수많은 정보를 미처 다 처리하지 못하고 얼떨결에 서쪽 정문을 나와 사원 내부로 진입했다. 어둡고 습한 석조 건물에서 밝은 실외로 나오니 조금 전 일출 보러 가는 길에 걸었던 석조로 된 긴 보도가, 앙코르 와트의 중앙사원의 1층 회랑까지 일자로 쭉 이어져 있었다.(왕의 길이라고도 부르는 이 석조 보도의 길이는 350m라고 한다.) 멀리 보이는 1층 회랑 뒤편으로 앙코르 와트 하면 떠오르는 웅장하고 우아한 모양의 고푸라들이 다시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 이 아름다운 사원의 정면을 한눈에 담고 있자니 지금이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이 공간에 있은 지도 벌써 한 시간이 훌쩍 넘었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실감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약간 멍한 상태로 1층 회랑을 향해 걸어가다 길 위 곳곳에 있는 물웅덩이 중 하나에 발을 빠뜨려 양말과 샌들이 완전히 젖기도 했다.

측면에서 바라본 앙코르 와트, 왕의 길 외에도 주변에 작은 오솔길들이 조성되어 있었다.
왕의 길 위, 앙코르 와트의 1층 회랑과 중앙사원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왕의 길을 걸어가다 보니 길 양쪽으로 같은 모양의 석조 건물 두 채가 나란히 보였는데 그 당시 기록물들이나 제사에 필요한 물건들을 보관하는 도서관 겸 창고 용도로 사용하는 건물이었다. 관광객들이 건물 여기저기에 올라가서 기념사진을 남기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도 같은 관광객으로서 그들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되면서도, 여기까지 사진 찍으러 온 건가 하는 부정적인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외에도 유적지 내 안내판과 입장권 구매 시 안내되는 문구에 사원 내는 신성한 공간이니 소란을 자제할 것과 유적지를 손으로 만지지 말 것, 흡연하지 말 것 등의 내용이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었지만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보였다. 큰 소리로 떠들거나 동행 부르기, 부조나 조각상 손으로 만지기, 흡연, 음악이나 유튜브 소리 크게 키우고 다니기, 두 사람도 지나다니기 좁은 통로에서 모여있는 단체관광객들의 통행 방해, 쓰레기 무단 투기 등 눈살이 찌푸려지는 순간을 목격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놀이공원도 아니고 명색이 종교 사원인데... 보기 싫다고 해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앙코르 유적 직원들도 아무런 제재를 안 하는데, 온갖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니 어쩔 수 없다고 체념을 하고 일단 관람에 다시 집중하기로 했다.

왕의 길 양쪽 측면으로 위치해 있는 한 쌍의 라이브러리



 드디어 왕의 길 끝자락에 있는 1층 회랑의 서편 입구에 다다랐다. 위에서 봤을 때 사각형 모양의 이 회랑은 높이 2m, 가로 215m, 세로 187m의 규모를 자랑하는데, 사각형의 네 면이 힌두교 관련 내용이나 전설, 크메르 왕국의 전쟁을 묘사한 부조로 가득 새겨져 있었다. 벽면을 빡빡하게 채운 어마어마한 양의 부조들을 보고 있자니 경이로움과 동시에 어떻게 이걸 다 봐야 할까 하는 막막함도 느껴졌다. 이들 부조의 방대함과 세밀함, 높은 표현력과 예술성에 대해선 나 같은 사람이 설명할 것이 못돼 차마 적지 못하겠다. 혹시나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다면 전문적으로 잘 설명한 글이나 유튜브 영상이 이미 많이 있으니 찾아보시면 될 것 같다. 안타깝지만 사실 나는 설명문은 읽는 것 외엔, 눈으로 보이는 부조의 내용에 대해선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

왕의 길과 맞닿아 있는 1층 회랑의 서편 중앙 입구, 1층 회랑 위에는 고푸라가 하나도 없다.
1층 회랑의 한쪽 벽면이 부조로 가득 찬 모습, 사각형의 네 면이 총 여덟 개의 테마로 나누어져 있다고 한다.
복사 붙여넣기 하나 없는 아름다운 부조들
1층 회랑 바깥에서 찍은 사진들
1층 회랑에서 안쪽(2층 회랑)을 바라보고 찍은 사진들



 그렇게 1층 회랑을 한 바퀴 도는 데만 한 시간 조금 안 되게 걸린 것 같다. 회랑을 천천히 걸으며 회랑 벽면의 부조와 회랑 밖의 풍경들을 감상하다 보니 어지러웠던 마음을 조금 가라앉힐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며 기온도 점점 올라갔지만, 바글바글 했던 새벽 관광객들도 많이 떠나갔고, 아까 젖었던 양말과 샌들도 물기가 조금 빠져 한층 쾌적하게 사원을 둘러볼 수 있었다.


 이제 2층으로 올라갈 차례였다. 1층 회랑에서 2층 회랑으로 이동하는 길에, 그 둘을 연결해 주는 중간단이라고 불리는 밭전자 모양의 십자회랑이 있었는데 앙코르 와트 스타일의 특이한 건축 양식이라는 설명이 있었다. 중간단을 지나 2층 회랑으로 천천히 올라갔다. 2층 회랑은 1층 회랑의 절반 정도 되는 크기에, 벽면에는 1층과 같은 빽빽한 부조 대신 힌두 신화 속 천상의 무희라는 압사라들의 아름다운 춤사위가 새겨져 있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압사라 조각과 창문으로 보이는 캄보디아의 푸른 숲을 감상하며 2층 회랑을 한 바퀴 돌고, 회랑 가운데 있는 3층의 중앙성소로 올라가는 입구 쪽으로 향했다.

중간단 가운데 있는 불상에 향을 올리고 기도 드리는 사람들
2층 한쪽 귀퉁이에 새겨져 있었던 춤추는 압사라들
우측 사진의 계단을 통해 3층 회랑과 중앙성소로 올라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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