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라오스, 태국, 필리핀 여행기(10)
요 며칠 동안 앙코르 와트 이야기만 주구장창 했었기에, 이번 글에선 일종의 분위기 환기 차원에서 씨엠립에서 지낸 Lub d Cambodia Siem Reap 호스텔과 일상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씨엠립에 오기 전, 약간의 블로그 검색과 구글 맵 리뷰를 통해 씨엠립에서 가장 평이 좋고 유명한 호스텔 두 군데를 찾을 수 있었다. 방금 언급한 Lub d 호스텔과, 프놈펜에서 지냈던 Onederz 호스텔의 씨엠립 지점이었다. 프놈펜의 Onederz Phnom Penh 호스텔은 방이 6인실임에도 침대 커튼이 반 밖에 처지지 않아 조금 불편했었기에, 이번 씨엠립에서의 숙소는 10인실이긴 하지만 커튼으로 침대 주위가 모두 가려지는 Lub d 호스텔을 선택하게 되었다.
예약할 당시엔 공식사이트가 가장 저렴했기에 4박을 15.87달러에 예약하고, 프놈펜에서 씨엠립까지 버스로 이동한 날 늦은 저녁 숙소에 도착했다. 체크인은 프놈펜의 Onederz 호스텔과 다르게 방 열쇠 분실이나 샤워타월 대여에 대한 보증금 지불 없이, 숙소 요금만 현장에서 카드결제하고 바로 마무리되었다.(체크아웃 또한 열쇠만 반납하고 바로 끝났는데, 숙박기간 내내 이처럼 Lub d의 간단하고 빠른 일처리가 마음에 들었다.)
내가 지낼 방은 1층 긴 복도의 끝자락에 있었다. 처음 경험해 보는 10인실 이상의 호스텔이라 걱정 반 호기심 반의 기분으로, 복도 끝까지 걸어가 방의 잠금장치를 풀었다. 다행히도 숙소 첫날 방에서 만난 룸메이트들은 환한 미소와 인사로 날 반겨주었고, 대부분이 조용하고 깔끔해서 함께 방을 쓰는 며칠 동안 불편함 없이 지낼 수 있었다. 넓은 침대 크기와 사생활이 보장되는 커튼도 만족스러웠다. 방 상태와는 별개로 약간 아쉬웠던 점은 1층 로비의 테이블이나 수영장 옆 썬베드가 있긴 해도, 편안히 휴식할 수 있는 공용 공간의 부재나 화장실과 샤워부스가 깔끔히 관리되고 있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지불한 비용을 감안했을 때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었고, 약간의 고민 끝에 Lub d에서 3일째 되는 날, 2박을 더 연장해 총 6박을 묵게 되었다.(이 때는 2박에 9달러를 지불했다.)
2박 연장하기 전에도 방 구성원들이 조금씩 바뀌면서 난생처음 맡아보는 엄청난 악취를 뿜어내는 룸메이트와 이어폰을 사용하지 않고 밤낮으로 유튜브를 보는 룸메이트들을 만나기도 했지만, 악취 나는 룸메이트는 하루 뒤 바로 나갔고 유튜브 소음은 적당한 크기였기에 적당히 적응하고 지낼 수 있었다. 연장한 다음날 이른 새벽에, 짐 싸는 듯한 부스럭대는 소리로 살짝 잠이 깼던 기억이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방의 기존 멤버들이 대거 이탈해 있었다. 아마도 이 날이 일요일이라 여행을 끝내고 자국으로 돌아가거나 다른 숙소나 지역으로 이동한 게 아닐까 싶었다. 그동안 별다른 대화도 하지 않고 마주칠 때마다 반갑게 인사 정도 나누는 사이였음에도, 텅 빈 방을 보고 있자니 뭔지 모를 허전함과 아쉬움이 느껴졌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빈 침대는 곧바로 다른 사람들도 채워졌다. 확실히 유명 관광지의 인기 있는 호스텔이라 그런지 언제나 새로운 투숙객들로 바글바글한 것 같았다. 첫날에 운이 좋았던 건지, 아니면 이번에 운이 나빴던 건지, 새로운 룸메이트들은 들어오자마자 내 인내심을 시험하기 시작했다. 침대 주위의 커튼 한 장이 유일한 가림막이자 방음막이라 작은 소음에도 취약한 이 방에서, 친구와 거리낌 없이 대화하는 소리, 통화하는 소리가 수시로 들려왔다. 방 상태도 이전보다 너저분해져 있었다. 그래도 이 부분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도 늦은 저녁이나 이른 아침 시간 외엔 보통 밖에 있기도 했고, 그들도 잘 시간에는 잠을 잤기 때문에 겹치는 시간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인내심을 바닥나게 한 결정적인 까닭은 대형 전차 한 대가 바로 내 옆 침대에 주둔하게 된 것이었다. 코골이에도 경쾌한 소리와 차분한 소리, 일정한 박자나 리드미컬한 박자 등 다양한 유형이 있다는 사실을 아시는가? 그동안 친구들과 한국 아저씨들의 다양한 코골이를 들어봤지만 이렇게 불쾌한 유형의 코골이는 처음이었다. 금속류의 둔탁한 마찰음 같기도 하고, 육중한 괴물의 으르렁거리는 울음소리 같기도 한 것이, 허를 찌르는 변칙적인 리듬으로 나를 동요시켰다. 다른 코골이처럼 처음엔 시끄럽고 불편해도 어느 순간 잠드는 데는 성공하는 코골이가 아니라, 한 번 시작되면 자던 도중에도, 귀마개나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껴도, 그 틈을 뚫고 들어와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예전에 한창 층간소음으로 고통받을 때의 그 분노와 증오심을 느끼며, 코골이가 멈출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는 이 무기력한 상황을 억지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층간소음과는 다르게 코골이는 본인도 어쩔 수 없는 것임을 알지만 그것으로 잠들지 못하고 고통받는 내 입장에선 그를 원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통스럽던 이틀 밤이 지나고 드디어 기다리던 Lub d 호스텔에서의 체크아웃 날 아침이 밝았다. 짐을 챙겨 방을 떠나기 전, 아직 세상모르고 자고 있는 그의 침대 커튼 밑으로 간단한 단어 몇 개를 적은 쪽지 한 장을 밀어 넣고 나왔다. 그리고 카페에서 이 글을 적으며 씨엠립에서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 숙소가 될 Onederz 호스텔 체크인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6인실이라 변수는 조금 줄어들겠지만, 또 어떤 호스텔 생활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가 된다.
• 덧붙여 이런 분들께 추천드린다.
1. 가성비 좋은 숙소를 원하시는 분
2. 외향적이고 영어에 능통하신 분
3. 숙소 주변이 조용한 것을 선호하시는 분
4. 소음에 민감하지 않으신 분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한 아마추어 여행기입니다. 부정확한 정보가 있을 수 있으니 유의해서 재미로 읽어주시고, 궁금한 내용은 댓글 남겨주시면 답변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