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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사춘기는 어떤 모습이었나요?

과거의 나와의 화해

by 소담

90년대 많은 아파트의 안방을 차지하고 있던 12자 원목 장롱과 앉은뱅이 화장대가 우리 집에도 있었다.


화장대 위에 얹힌 세로로 긴 거울은 유리의 굴곡 때문인지 희한하게도 사람이 참 못생겨 보이고 뚱뚱해 보였다. 중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매일 그 거울을 통해 내 몸을 관찰하며 다이어트를 결심하곤 했다. 티브이에 나오는 연예인들과 나는 왜 이리 몸매가 다를까 한탄스러웠다. 한창 성장하는 중학생에게 다이어트가 쉬울 리가 없다. 한 끼 굶으면 다음 끼는 더 많이 먹게 되고, 밥 안 먹고 간식으로 때우기 일쑤. 그 당시 용어조차 익숙하지 않던 '요요 현상'을 매번 경험하며, 체중은 얻고 자존감은 잃었다.


다이어트 실패의 불똥은 엄마, 아빠에게로 튀었다. 당시 엄청나게 유행하던 풀*원 다이어트약을 사달라고 밤낮으로 부모님을 졸랐다. 결국 중2병 딸의 집요함에 두 손 드신 부모님이 거금을 들여 제품을 사주셨다. 그러나 하루에 세 번, 다른 음식 없이 저열량의 셰이크만을 먹는 식이었으므로, 단기간 체중계 숫자만 줄었을 뿐이었다. 정상식으로 돌아오자 곧 체중은 원복이 되었고, 앉아서 공부만 하던 고교 시절이 되자 체중계 숫자는 커져만 갔다.


대학 가면 살 빠진다는 어른들의 말씀은 틀리지 않았으나, 내 10대는 다이어트와 요요로 뒤범벅되어 힘든 기억으로 남아있다. 부모님을 아주 힘들게 한 것은 같은데 구체적인 기억은 희미한 것을 보니, 사춘기 시기는 자기중심적인 시간임이 분명한 것 같다.

과거의 나를 토닥이고 화해해야겠다고 느낀 것은 최근의 일이다. 깊숙이 묻어놓고 꺼내보기도, 너도 힘들었겠구나! 다정히 말 걸어주기도 쉽지 않았다. 아이의 여러 가지 사춘기 모습을 대하고 있노라니, 나도 그 시절 비슷한 이유로 힘들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사춘기 아이와 잘 지내기 위해서는, 사춘기 시절의 나를 들여다보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의 내 감정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지금의 아이를 이해하는 실마리가 나올 것 같았다.


그때건 지금이건, 외모 지상주의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긍정적이지 않은 것은 여전하다. '외모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힘이란다'라고, 아직도 마음의 힘 기르기 연습을 하는 40대의 내가, 10대의 나에게 다정히 알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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