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 사춘기의 시작
2022년 하반기의 기록
엄마를 닮아서인지, 초등학교 5학년 후반부터 딸 진진이도 외모에 관심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려니 하고 넘겼어야 했는데, 내 잔소리나 간섭이 심했던 건지, 아이는 자꾸만 바르지 않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듯했다.
여자 손이 귀한 친가에서 유일한 여자아이로 태어났고, 우리 집안에서는 첫 아가였던 진진이는 그야말로 사랑 듬뿍 받으며 성장했다. 30대 초반의 나와 남편은, 이웃 사시는 친정 부모님 도움을 받으며 어설픈 육아를 시작했고, 헌신적인 조부모님과 풍성한 가족, 이웃 덕분에 진진이는 잘도 자랐다. 날 때부터 모범 아이였고, 또래보다 모든 면에서 빨랐으며, 늘 "우리 진진이 진진이", 닳도록 불리며 자라났다.
학년이 올라가니 활발한 성격이 빛을 발하여, 늘 반에서는 "인싸"의 대열에 오르고, 친구들을 몰고 다니는 듯했다. "나는 인기가 많아서", "나는 애들이 좋아해서"라는 말을 달고 살았고, 뭐든 잘했으나 하기 싫은 과목에는 노력을 썩 하지는 않아 보였다. 이런 아이에게, '모든 관계에는 노력이 필요하다', 혹은, '싫은 과목도 열심히 해야 한다'라는 조언을 해주지는 못했다. 무슨 과목이든 평균 이상으로 잘했고, 친구 관계는 늘 좋았으니까.
그러다가 6학년 여름방학을 앞둔 6월, 학교 신체검사를 앞두고 아이는 느닷없이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기록되는 공식 체중이니 신경이 쓰인다고 했다. 2주 정도 저녁을 적게 먹었는데, 당시 한창 4끼까지 먹던 폭풍 식욕과 급성장의 시기였던지라, 이러다 말겠지... 하며 귀엽게 넘겼다. 2주 뒤 진진이는 꽤 만족스러운 신체검사 기록을 보았다고 했다. 6학년 여자아이가 생애 처음 해보는 다이어트에 성공하더니, 이후 유지어터의 자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학교에서는 진진이 살 빠졌다고 소문이 났고, 오동통 얼굴에 젖살이 빠지니 아이들 눈에 예쁘게 보였나 보다. 아이는 친구들에게 '진진이 예뻐져서 부럽다'란 말을 많이 들었던 듯하다. 불행의 시작이었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아이는 자꾸만 적게 먹으려 했다. 간식을 끊고, 먹던 밥양을 줄이고, 심지어 음식을 잘게 쪼개어 조금씩 천천히 먹더니, 많이 남기기 시작했다. 잘 먹던 아이를 키우던 조부모님과 우리 부부는 조바심이 났다. 9월경부터 나를 포함한 주위 어른들은 진진이에게 '먹어라, 좀 더 먹어라.'를 달고 살았다. 그럴 때마다 아이 눈빛은 더 차갑게 변하더니, 10월경부터는 식욕을 완전히 잃은 것 같았다. 고형물을 먹지 않으려 하고 셰이크류나 죽을 찾더니, 매일매일 세끼 식단에 대해 나나 할머니와 네고하려고 했다. 하루 먹는 양이 학교 급식을 포함해도 1000 Kcal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11월경부터는 학교 급식도 거의 안 먹었다고 했다.
성장기 아이가 극도의 절식을 하게 되니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지는 것이 눈으로 보였다. 체중을 직접 재보지는 않았으나 하루하루 여위어 갔고, 눈빛이 흐려지더니, 어느 순간 주말마다 친구들과 잡던 약속을 잡지 않기 시작했다. 하교 후에는 소파에 앉아 이불을 덮어쓰고 움직임 없이 패드만 봤다. 간식을 주면 몰래 버렸고, 먹는 양은 점점 줄어들었다.
이 모든 것이 3~4개월 사이 서서히 진행되어, 우리 가족들은 진진이에게 어떤 일이 생기고 있는지 현실을 직시하지 못했다. 워낙 건강한 식성과 체력을 가진 아이 었기에, 나는 곧 괜찮아질 것이라고 믿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