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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불안보다 나의 불안이 더 클 때

노력하고 있는 딸에게

by 소담

사춘기 아이의 섭식장애는 가족의 역할이 너무 크다는 것을 이론적으로도 경험적으로도 충분히 알고 있으나, 치료자 입장에서 내 방법이 옳은지에 대해 확신이 없을 때가 많다. 그리고 아이가 불안해하는 빈도가 잦아진다는 생각이 들면 내 예민지수도 덩달아 오르므로, 나의 감정 컨트롤이 아이의 상태만큼이나 중요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지난 5월부터 진진이 뿐 아니라 나 역시 치료자로서의 심리상담을 시작했다. 진진이의 상태와 우리 가족의 성향을 잘 알고 계시는 섭식장애 센터 선생님 중 한 분이 나의 상담자이시며, 내 역할에 대한 응원과 조언으로 상담 시간의 대부분을 채워주신다.


회복되는 모습을 보이던 진진이의 상태가 악화의 흐름으로 돌변하였을 때, 나도 3개월여 만에 상담 선생님을 다시 찾았다. 나는 4~5세 유아기로 돌아가서 떼쓰는 모습을 한 번씩 보이는 진진이의 상태를 말하며, 어릴 때 엄마로서 애정을 충분히 주지 못한 것 같다고 반성했는데, 선생님은 그 당시 최선을 다했던 자신을 자책하지 말라고 따끔하게 충고하셨다. 오히려 아이가 혹시 무언가를 얻기 위해 떼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실과 거짓을 잘 구분해야 한다고 말해 주셨다. 그리고 진진이가 엄마에게 많은 부분을 믿고 의지하고 있는 것은 우리 관계가 건강하다는 증거이며, 부모에 대해 반항적인 마음이 생기는 것도 사춘기 시기에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니 넘겨 버리라고도 하셨다. 때로는 아이에게 너무 많은 말을 할 필요 없이 그저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될 것임도..


작년 10월경부터 시작해 11~12월 급격히 악화되어 1월부터 본격적인 치료에 돌입한 지 11개월 차. 아이의 병은 여전히 전진과 후퇴의 반복이다. 6개월~1년 정도 치료하면 섭식장애가 완치될 거란 생각은 나의 착각이었다. 불안의 높낮이가 다를 뿐, 아마 꽤 오랫동안 진진이는 이 병을 앓을 것 같다. 사춘기와 함께 온 섭식장애는, 사춘기가 사라지면서 자연스레 사그라든다고 하는데, 우리 진진이도 그 경우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글들만 보면 우리 가족의 일상이 치열한 투쟁의 연속일 것 같지만, 지극히 일상적이고 한없이 잔잔한 날들이 대부분이다. 악화되는 모습을 보일 경우, 어떻게 컨트롤하면 좋을지에 대한 노하우를 1년 가까이의 시간 동안 배웠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심리적 질환을 앓고 있는 가족이 주위에 많지는 않지만, 간접적으로 접하게 될 때마다 그 가정은 엄청난 위기에 놓여있을 거라 어렴풋이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잘 안다. 이런 변화는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으며, 해프닝 정도로 넘기려면 온 가족의 관심과 도움이 필수라는 것을. 그 병을 겪으며 가족들은 때때로 힘들겠지만, 그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는 단단한 줄로 결속되어 한층 성장된 관계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진진이가 섭식장애를 앓는다고 하면, '나도 그 병 걸리고 싶다', '식욕이 없어져야 하는 사람은 나인데, 부럽다' 등의 반응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병에 대한 이해가 없고, 본인이 살 빼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환자나 치료자에게 이런 말은 큰 좌절을 준다. 그러면서 나도 배운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가벼이 여기지 말자. 그리고 너무 심각하게도 여기지 말자. 우리는 모두 어떤 부분에서는 '경계'와 '비경계'를 넘나드는 사람들이기에(*).


(*) 2023년 하반기 넷플릭스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마지막 대사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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