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중순~8월의 여름방학 기간, 몸도 마음도 급속도로 안정되는 것이 느껴져 '다 나았다'라고 오판해 버린 덕에 혹독한 10월을 맞이하게 된 딸. '성급하게 판단했던 나 때문은 아닐까'라는, 그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 자책을 되풀이하고 말았다. 섭식장애는 긴 호흡으로 보라는 전문가의 말을 앞으로도 절대로 지켜야 한다는 큰 교훈을 마음속에 다시 새겼다.
아직 저체중 상태인 진진이는, 아침마다 거울을 보고 자꾸만 살이 찐 것 같다고 한다. "거식증으로 뒤덮인 눈으로 보고 있어서 그래 보이는 거야. 어서 진진이 목을 조르고 있는 그 병을 발아래로 밀어내자. 너의 몸은 전혀 변한 게 없어." 이 말을 수십, 수백 번 되풀이해주고 있다. '저 마른 아이가 체중과 몸매에 왜 저리도 집착을 하고 터무니없는 잣대로 본인을 저울질하는 것일까?'라고 고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아이가 불안함을 표출하는 방식이 특이한 것일 뿐이므로 반복해서 안심을 시켜주자고 속으로 되뇐다. 나 조차도 병에 휩쓸리게 되면 안 된다. 사춘기 섭식장애 아이의 부모라면 반드시 명심해야 하는 사실이다.
평범한 사춘기 아이들도, 이 시기는 참 불안하다. 하나같이 예민하고, 미래에 대한 걱정도 산더미인데, 정작 공부는 썩 하기가 싫은 상황. 온 세상이 나에게 바라기만 하는 것 같다. 이 불안함을 우울감, 산만함, 무기력함으로 표현하는 아이들도 많은데, 진진이 같은 아이들은 음식에 대한 두려움을 통해 힘들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면 그나마 이해가 된다. 사춘기가 사그라들면서 이 또한 지나갈 것이라 믿으며, 아이를 보는 시선을 좀 더 따스하고 평화롭게 바꿔야 한다.
진진이가 섭식 말고 일반적인 생활 태도나 학업에 대한 반항을 시작하게 되면 나는 오히려 반갑다. 그럴 때도 오히려 4~5세 아이들 대하듯 토닥이며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는 거라 공감해 주노라면, 아이의 사나웠던 눈빛도 잔잔하게 돌아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부모가 뭐길래 이렇게 많은 인내를 해야 하는지..라는 고민도 시간낭비 일 뿐. 우리가 선택해서 낳은 아이이니, 아이의 불안정함을 잡아주기 위해 부모 말고 누가 가장 많이 도와줄 수 있으리. 사람이 일생에서 써야 하는 "지랄"의 총량 법칙이란 게 있다는데,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 혼자 고생하지 말고 가족 옆에서 엄마아빠가 도와줄 수 있을 때 모든 "지랄"을 다 소진하게 하여, 평화로운 성인기를 맞이할 수 있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