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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담 Mar 28. 2024

갈구는 아내 (과거형 이랍니다)

며칠 늦은 연재

섭식장애 극복 중인 중2 딸 진진이는 

신학기 적응은 슬슬 자리 잡는 것 같아 보이는 

처음으로 치르는 지필평가의 부담감으로 근심걱정이 옮겨간 모양이다. 

이 세상 모든 학생이 겪는 시험 부담이라면,

쿨하게 너도 맞닥뜨리라고 말해주고 있다. 엄마로서 자식을 응원하는 방법은 다양하겠지만,

좀 더 적극적으로 아이 학교생활에 개입하고자

다양한 학부모 활동에 참여하다 보니

덜컥 반대표 학부모로 추천되었다.


회사 다니던 시절,

1년에 한 번 있는 총회며 상담, 공개수업 일정이

바쁜 3월에만 몰려있어 거의 활동하지 못했는데,

퇴직 후 시간 될 때마다 학교활동에 참여하다 보니 우리 아이가 배우는 선생님들과 학교 일정을

내 일처럼 여기게 되었다.


반대표를 맡으면 좀 더 상세히 학교 돌아가는 모습을 알게 될 터, 매우 부담스럽지만 아이에게 득이 될 것이 분명하다.




이런 이야기를 남편에게 하니, 역시 니는 회사를 잘 그만뒀다고 격려(?)를 해준다. 최근에 "나 이렇게 경제활동 안 하고 비생산적이어도 되나?"란 고민에 휩싸여 있었기에, 남편의 한마디가 매우 큰 힘이 되었다.


그래서 대화를 이어나가다가...

"나 회사 관두니까 또 뭐가 좋아?"라고 묻자,

거침없이 날아오는 남편의 대답.


"이제 나를 갈구지 않아서 좋다!"


*'갈구다'의 사전적 정의: 사람을 교묘하게 괴롭히거나 못살게 굴다.


허허허.. 내가 남편을 갈궜다고?


남편 왈, 늘 같이 나가는 출근길에 빨리 나가자 재촉하고 (이건 다음 편에 꼭 쓸 내용!!), 주말에 골프 가면 구박하고, 회식하고 늦게 오면 촘촘히 전화해서 괴롭혔단다. 와우와우.. 이 정도가 갈굼이라면, 대한민국 모든 남편들은 갈굼 당하고 살고 있을 텐데?


이걸로 긴소리 하기도 어이가 없어서, 지금은 어떠냐 물었더니, 거의 모든 상황에서 내 갈굼은 사라졌다고 한다. 나도 모르게 내가 여유로워졌단 걸까?


이쯤 되면 내가 십수 년 동안 다 큰 성인을 갈구고 살았단 사실이 충격적이기도 하지만, 아내에게 갈굼 당한다 여기면서도 꿋꿋이 가정생활에 노력해 온 남편이 대견하다 싶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 부부가 나아갈 방향은, 서로 괴롭히지 않고 돕기만 하고 사는 것!으로 결론지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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