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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담 Oct 23. 2024

"학교 가기 싫어"란 아이의 말에 바른 반응은?

사춘기 부모 교육

"내 삶은 왜 이리 평범할까?"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나를 키워주신 엄마는 알고 보니 생모가 아니란 걸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거나,  불치병이라도 걸려 내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헤어진 애인이 나와의 이별을 괴로워하다가 사고로 크게 다쳤거나?


친구들과 밤새 진실게임이라도 하게 되면, 모두의 잠을 확 깨울만한 스토리가 나에게도 있기를 바랐다. 실제로, 누구의 부모님은 엄마의 불륜이 발각되어 이혼 하셨댔고, 누구는  태어나보니 심장병이라 달리기를 여태껏 못한다 고백했으며, 누구는 아빠 사업 실패로 집안의 온 가구에 빨간딱지가 붙는걸 직접 경험해 봤다고 했다. 내 기준으로 평범하지 않은 사연을 누구나 한두 가지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막연히 멋져 보였다.


얼마나 어리석고 교만했었는지!


지금은 매일밤,

부디 내일은 평온하기만을 바라며 잠을 청한다. 나와 내 가족이 아무 일 없는 내일을 보내길 기도한다. 속 시끄러운 일이 없다시피 한 내 유년과 청년시절에 한없이 감사하며, "지랄 총량의 법칙"이 누구에게나 적용된다면, 40대가 된 후 2~3년간의 내 삶은 지랄 발광의 연속이 아니었냐고, 이제 제발 이 혼란을 좀 거두어 주시라고 신께 간청한다. 이렇게 빌어온 지 1년도 더 된 것 같은데, 자꾸만 지랄의 수위가 신기록을 달성하는 것을 느끼며, 나한테 왜 그러시냐고 신을 원망하기도 한다.




내 아이의 사춘기는 좀 고단하다. 섭식장애로 시작한 불안장애가 사춘기 시기와 만나, 꽃같이 여리고 곱던 아이가 참 많이도 변했고 아주 힘들어한다.


그래서 나를 포함한 우리 가족은 늘 긴장모드이다.  가끔 잔잔함 속에 행복을 찾기도 하지만, 무언가 사건이 생기면 자기만의 감정 절제선에 닿고 만다. 사건이 생기는 빈도가 많아지면,  날카로운 칼날을 세우게 된다. 나도 많은 엄마들처럼 푸근하게 포용해 주려고 노력하지만, 또 여느 엄마들처럼 괴팍한 본성이 나와버린다.


그래서 가족상담을 시작했다. 부모관계와 부부관계에서 생겨난 뾰족한 바늘들을 좀 뭉뚝하게 만들어 보려고.


초반상담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놀랍게도 나조차 내 감정을 잘 읽을 줄 모른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상대방감정은 알기가 더 어렵다. 주로 상대의 행동에만 초점을 두어, 그 행동이 어떤 감정에서 기인하였는지 생각이 미치질 않는다.


어느 날 상담사가 아이가 내일 학교 가기 싫다고 말하며 갑자기 울면서 방에서 나오면 뭐라고 반응할 건지 물었다.


나는 오랜 생각 끝에 "왜 가기 싫어?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어?"라고 물을 거라고 했다.


남편은 같은 질문에,

"어이구 그래? 그럼 가지 마, 안 가도 돼"라고 답할 것 같다고 했다.


우리 부부의 대답에 상담사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 말들 중에, 아이의 감정은 어디 있나요?"



...



모범적인 대답은,


"아이고 ●●가 학교 가기 싫구나.."(공감)

"얼마나 힘이 들까?" (공감)

"아휴 어떡하니.." (한번 더 공감)

"엄마아빠가 어떻게 도와줄까?"(스스로 생각하고 행동을 결정하게 함)


휴... 정말 저게 정답이라고? 반발심이 생긴다.

내 반응도 완전 오답은 아니지 않냐고! 남편처럼 말할 수도 있지 않겠냐고!


상담사는 거침없이 말한다. 어머님의 반응은  아이의 감정은 무시하고 행동에만 초점을 둔 것이라 아이에게 위로가 되어주지 못할 것이고, 아버님의 대답은 아이에게 선택을 할 자율성을 주지 않아, 저러한 반응이 쌓이면 아이는 자립심을 가지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허무하다.

듣고 나면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알았으면 나도 분명 그리했을 테지만, 나는 정말 몰랐다.

내가 고심하고 던진 아이를 향한 친절한 말들이 어쩌면 털끝만큼의 위로가 되지 못할수도 있었다는  사실이 뼈아프다. 이런 내 마음은 공감도 안 해주고 팩폭을 날리는 상담사가 야속하다.


남편도 나와 비슷한 생각인지 덧붙였다.

"뭐, 우리 다 알고 있는 뻔한 얘기 아닌가요? "

(그런 말을 왜 하니 남편 -*-;;)


상담사는 말한다.

"사람들은 알면서도 잘 못하는 경우가 많죠." 그러면서 상황극을 통해 실제 저 말들을 해보기로 한다. 10분간 우리 부부는 공감의 말들을 연습해 본다. 입 밖으로 꺼내보니, 우리 부부가 하던 말습관이 아니었단 것을 느낀다. 나는 언제나 행동과 결과(그래서, 진짜 학교 안 간다고? 까지.)를 중시했던 것 같고, 남편은 허용적인 척 무심했다.




며칠 후, 아이가 "공부하기 싫어"라고 징징대기 시작했다. 옆에서 보던 남편이 당황하지 않고 연습한 대로 말했다. "아휴 어쩌냐? 정말 싫겠다.. 아빠도 내일 회사 가서 일하기 싫네"


10절은 할 것 같던 아이가 1절만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공감의 힘... 이란, 이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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