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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담 Oct 30. 2024

내 아이를 세상의 중심으로 키우자 했으나...

28세였던 2007년, 두 살 위 남편과 결혼했다. 내 친구들도 30세가 되기 전인 28~29세 사이에 많이들 결혼을 했고, 그 시기에 결혼을 놓친 친구는 해외 유학 중이거나 비혼주의자들 뿐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여자 나이 서른"은 노처녀라고 불리는 기준이 되었다.


결혼은 휩쓸려했지만, 임신과 출산은 그렇지 않았다. 결혼 후 바로 임신한 경우는 고향인 대구에 살고 있는 친구들 뿐, 서울에 터전을 잡고 있는 나를 포함한 상경자들에게  결혼보다 몇 곱절 높은 산이었다. 근처에 도와주실 수 있는 부모님이 계시는 것과 아닌 것은 임신과 출산을  결정하는 큰 잣 되었다.


결혼 후 1년여 지났을 때, 고향인 대구에서 박사 학위를 마친 언니의 서울 취업과 형부의 서울 발령, 아빠의 은퇴가 같은 시기에 일어났다. 언니 부부의 상경과 함께 부모님도 이사를 결정하게 되었고, 세 가정이 서울 근교의 같은 아파트 단지에 이사하며 모계중심 부족사회가 시작되었다.


엄마는 일하는 두 딸이 아이를 낳으면 돌봐주신다고 하셨고, 육아의 숙제가 해결될 거라 생각한 나는 바로 임신했는데,  당시 서울 사는 친구들과 또래 직장 동료 중에서 임신은 내가 1호였다. 가까운 주위에 임신과 출산의 케이스가 없었기 때문에, 아기를 낳는다는 게 내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예측하지 못했다. 다만 친정엄마가 있어 든든했고, 엄마도 막내딸의 출산에 만반의 준비를 하셨다.


어려서부터 책을 중요시하여 딸들에게 독서를 강요하셨던 엄마는, 내 출산에 앞서 "베이비 위스퍼러"라는 책을 사서 탐독하셨다. 작게는 아이가 병원에서 태어나 집 현관에 들어오는 순간의 동선부터, 크게는 수유 및 잠 습관까지, 세세하게 계획하셨다.


이렇게 태어난 우리 딸은, 우리 가족 첫 아이로 관심과 사랑 듬뿍 받으며 잘 자랐다. 순했고, 모범 아가였다. 모범 아가라 함은, "베이비 위스퍼러"에서 알려준 방법이 100프로 먹혀 들어가는 아이였다는 뜻이다. 시기에 맞게 분유 양이나 이유식 종류를 조심스레 변경해도 거부감 없이 잘 적응했고, 통잠 자는 시기도 책에서 알려주는 시기를 잘 따라주었다.


나는 출산 백일만에 출근해야 했어서, 친정엄마가 아이의 육아를 전담하셨다. 퇴근했을 때 아이가 벌써 잠들어 있으면, 너무 아쉬워 옆에서 아이 손을 잡고 나도 같이 잤다. 잠 결에라도 네 엄마 체온을 느끼라고.


친정 엄마는 사교성이 좋으셔서, 우리 딸도 덕분에 많은 이웃 어른들과 교류했다. **이는 "모범아가" , "명품아가" 라며 칭찬이 자자했다. 친정 엄마는 그럼에도 몸이 약하셔서, 아이에게 온 정성 다 쏟으시다가 한 번씩 폐렴에 걸리시기도, 독감에 걸리시기도 하는 등 체력적인 안타까움이 있었다. 입원하셨다가도 퇴원하시면 바로 육아 모드에 돌입하셔서 아이의 시간에 맞추어 온몸 다해 희생하셨다.


이렇게 우리 아이는 친정엄마의 시간과 체력을 "갈아 넣고", 우리 부부와 언니네 부부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잘 자랐고, 초등학교 6학년 섭식장애가 발병하기 전까지, 병원 몇 번 안 가고 친구들과도 잘 지내는 "몸과 마음 건강한" 아이로 잘 커왔다.




이 스토리를 상담사에게 했더니,

"족의 정성을 '갈아 넣어' 아이를 키웠다는 말하는 부분에서 굉장한 뿌듯함과 자부심이 느껴진다 "라고 했다.


나는 크게 반문했다. "뭐라고요? 아이를 열심히 키운 게 잘못은  아니잖아요?"


상담사는 이어갔다.

온 가족이 아이에게 과잉 관심을 쏟은 건 아니었을 까요.

온 가족의 기대과 관심이 아이에게 부담이 된 건 아니었을까요.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키워야 가장 좋습니다.

억지로 노력하여 키우면,

집안에는 긴장감이 돌 수 있고, 아이는 불안하고

전체적으로 온 가족이 불편해질 수 있습니다.


아이는 많은 어른들의 칭찬을 듣고 칭찬중독에 게 되고,

원하는 게 옆에 있으니 참을성이 어져 욕구지연 능력이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가족의 체질을 바꾸셔야 합니다.




이런 얘기를 엄마와 나누었다. 엄마는 눈시울을 붉히신다.  나도 이렇게 마음 아픈데 엄마도 얼마나 속상하실까. 말이 없어도 글이 없어도 다 알겠다.


엄마, 우리가 잘못한 건 아니잖아요. 몰랐을 뿐. 작은 균열이 생긴 걸 눈치 못 챘을 뿐. 우리의 노력마저 가치 없다 여기지 말아요.


우리 온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해 준 엄마, 감사하고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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