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도대체 왜요?

믿음과 인내심

by 사나래

성경에는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많은 사례가 등장합니다.

성경 초반부에 나오는 인물들만 봐도 그렇습니다.

믿음의 조상이라 불렸던 아브라함, 그의 충성스럽고 효성스러운 아들 이삭, 그토록 심사숙고하여 고르고 고른 이삭의 아내 리브가와 그들의 사랑하는 아들들 야곱과 에서 역시 결정적인 순간마다 믿음이 흔들리고 시험을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시험 앞에서 흔들릴 때마다 쉽게 원망을 입에 올립니다.

때로는 환경을 탓하고, 때로는 상황을 탓하며, 때로는 하나님께까지 원망을 돌립니다.

그러고는 감히 인간이 시험을 통과하지 못할 정도로 감당하기 어려운 시험을 주셨다고 하나님께 책임을 돌리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그분은 언제나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시험만을 허락하시고, 그 시험 속에서도 빠져나갈 길을 마련해 두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자주 잊고 살아갑니다. (고전 10:13)

제가 이런 발칙한 생각이 든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아브라함,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다


아브라함의 경우 이렇습니다. 그에게는 하나님께서는 바다의 모래처럼, 밤하늘의 무수한 별처럼 많은 후손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눈에는 상황이 답답하기만 했어요. 사라는 점점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나이가 되어갔고 하나님의 약속이 현실과 동떨어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후손을 번창하게 하려면, 우리가 더 늙기 전에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하지 않을까?”


그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기보다, 자신의 방법으로 약속을 이루려 했습니다.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하나님의 약속은 점점 희미해져만 갔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될지도 모를 방법으로서 자신의 여종들 가운데 한 사람을 아브라함이 취하여 첩으로 맞이해야 한다고 제의하였다. 일부다처는 아주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죄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어 버렸으나, 그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위반하는 일이었으며 가족 관계의 신성성과 평화에 치명적이었다(부조, 145).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비장한 각오로 하갈을 첩으로 들입니다. 물론 둘의 합의하에 이루어진 것이지요. 하지만 그 선택은 평생 후회로 남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그들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사명이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효성 지극한 아들 이삭과 그의 아내 리브가는 또 다른 실수를 저지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쌍둥이 아들 중 둘째인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주겠다고 이미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기다림은 초조해졌습니다.

이삭은 자신의 성향과는 정반대인 야심차고 외향적이어서 들로 산으로 사냥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큰아들만 편애하였습니다. 그러니 리브가는 둘째인 야곱을 애정할 수밖에 없었어요. 아무리 기다려도 하나님의 축복이 야곱에게 임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리브가는 사랑하는 아들의 인생을 위해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말았습니다.


살아남기 위한 수단, 내려놓음


또다시 인간의 계획이 하나님의 계획을 그르치는 순간입니다.

하나님은 도대체 왜 그러셔야만 했을까요?

끝까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보여 주지 않으시고 우리를 지켜보며 즐기시는 것처럼 보이니, 도대체 하나님께서 왜 그러시는 걸까요? 그냥 적당한 때 허락하시면 되실 것을... 기어이 나약한 인간이 사고 칠 때까지 기다리셨다가 사고를 치고 나면 그제야 주시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불평하고 원망하던 내게 하나님께서 손가락을 딱 하고 튕기시며 정신 차리라십니다.


불현듯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인생은 서바이벌 게임이라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살아남기 위해서는 끝까지 안간힘을 써야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그렇게 힘만 쓰다가 인생을 마감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죽기 직전에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이 인생이라는 생각 말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이것저것 다 해보고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는 순간이 오면, 우리는 그제야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렇게도 힘겹게 자기 자신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면 그제서야 굴복합니다. 바로 그때가 하나님께서 일하실 수 있는 때입니다.

우리가 힘이 빠진 바로 그 순간, 드디어 하나님은 약속을 펼치십니다.


하나님의 방법을 이해할 수 없었던 나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굳이 이렇게 하시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다고 투덜거렸습니다.

“인간이 계획하기 전에 미리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주시면 될 텐데.”

“사라가 늙기 전에 아들을 낳도록 하셨다면 아브라함의 인생에 흠이 남지 않았을 텐데.”이러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왜 그러시는지 알 것 같습니다.

인간을 시험하실 수밖에 없는 하나님을 이제는 이해합니다.

왜냐하면 거기에 찐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인간에게 가장 바라시는 것은 충성심과 순종과 믿음이었고, 이것은 인간의 특성상 끝까지 가야만 그 참된 모습이 드러납니다. 처음에는 누구나 약속을 믿고 성실하게 나아갑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본심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참지 못하고, 기다리지 못하고, 결국 믿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릅니다. 믿음과 충성은 끝까지 가 산전수전을 겪어야 비로소 나타납니다. 인간의 조급함 때문에 중간에서는 결코 그 참모습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순도 100퍼센트의 충성심과 순종, 그리고 믿음, 즉 사랑은 중간쯤에서 그렇게 밀려납니다.


대부분의 우리는 어느 정도까지는 기다립니다.

그럼에도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조급한 마음에 하나님의 방법을 뒷전으로 미루어 두고

스스로 계획을 세웁니다. 그러고는 그 계획이 하나님의 방법인 줄 착각해 버립니다.

이처럼 고집부리는 우리를, 저처럼 불평하며 원망하는 우리를 옆에서 지켜보셔야 했던 하나님 아버지의 가슴 아픈 마음이 이제야 조금 헤아려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족으로 여기시고 아버지라 부르라고 하시니 우리는 너무나 주제넘게도 스스로 신이 된 줄 착각했던 것은 아닐까요? 본래의 신분을 잊고, 은혜를 잊은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가 인간이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니 끊임없이 올라오는 자아와 의심의 싹들을 잘라내 가며 예수님 곁에서 끝까지 살아남아야 합니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그것을 하겠다고 미련하게 인생 낭비하지 말고 하나님께 굴복하는 삶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는 어느 것을 핑게로 피난처를 찾고자 하지 않았다. 아브라함도 인간이었고 그의 애정과 애착도 우리의 그것과 같았다”(부조, 153)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끝까지 흔들림 없이 믿고 기다리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 믿음이 완성되는 순간이 오면,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대미를 화려하게 장식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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