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받을 용기

미움과 질투심

by 사나래

미움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입니다.

인류 역사의 초기에 등장하는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대쟁투 역사의 시작점을 찍은 아담과 하와의 아들들로 자라나면서

부모에게서 죄에 대한 경계와 교육을 얼마나 철저히 받았을까요?

아담과 하와는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죄의 영향력과

그 무서움을 피하도록 가르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것입니다.


미움의 감정이 싹트는 시절


자녀들이 나쁜 길로 빠지지 않기를 바라는 우리 부모들처럼 아마 최초의 그 부부도 그랬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인은 아벨을 미워했고,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 그 중심에는 질투심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아벨은 부모의 교육 방식에 순종하는, 지금으로 치면 ‘엄친아’ 같은 아들이었을 것입니다.

반면, 가인은 자율성이 강하고 창의적이며 도전적이고 독립적인 성향을 지닌,

카리스마와 의욕이 넘치는 ‘상남자’ 같은 인물이 아니었을까요?

아마도 동생에게 늘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 주는 멋진 형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적어도 첫 제단을 쌓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가인은 하나님의 말씀의 깊은 뜻을 알고 있었습니다.

부모의 죄로 인해 닥쳐올 세상의 운명과 인간 구원을 위한 계획이 어떻게 세워졌는지 모를 리 없었습니다.

제사의 올바른 방법도, 그 이유도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해야 한다는 것도,

그 모든 것에 순종으로 응답해야 한다는 사실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단지 ‘알고만’ 있었습니다.


장자인 가인은 형으로서 남다른 리더십을 발휘하고 싶었지만, 우직한 동생에게 늘 밀렸습니다.

결국, 질투심이 불타올라 동생을 미워하게 되었고,

그 미움은 끝내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을 향해 불평했습니다.

하나님은 가인과 아벨을 똑같이 사랑으로 이끄셨지만, 가인은 자신의 힘과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곧이곧대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의 연약함을 피력하면서도 하나님께 인정받고 싶었겠지만,

오히려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져 갔습니다.


나보다 잘난 사람은 용서 못해우리 역시 하나님 앞에서 순종해야 함을 ‘알고만’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스스로는 순종하지 않으면서, 순종하는 이들에게 미움을 품기도 합니다.

이런 미움의 감정은 최초의 형제들에게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더 거슬러 올라가 루시퍼에게서 비롯되었습니다.


미움의 정신은 사탄의 특급 전략이기에 우리는 늘 미움에 노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벨이 미움받았던 일,

제자들이 미움 속에서 순교했던 일,

신앙의 선배들이 핍박받았던 모든 순간이 사탄의 계략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받는 미움도 그들과 같은 이유에서일까요?

그리고 우리는 과연 그들과 같은 미움을 받을 용기를 가지고 있을까요?

가인의 행동을 정죄하면서도, 정작 나 자신에게 그 용기가 있는지 되묻게 됩니다.


나보다 나은 자들을 미워하며,

스스로의 지혜를 찬양하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아벨의 편에 서 있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을 뿐입니다.


가인도 정성을 다해 가꾼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아마도 가장 실한 과일만 골랐을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받으시겠다고 한적이 없는 인간의 대치물이었으나 가인은 나름 최선을 다했던 것입니다.

제멋대로 해놓고 도리어 화를 내는 것을 우리는 ‘적반하장’이라고 합니다.

이때 가인이 했던 것이 바로 그 적반하장. 미움과 동반되는 사탄의 정신입니다.

불평과 불만, 원망, 시기, 질투, 적반하장 등이 이때도 패키지로 동원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패턴은 지금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악인들은 그들보다 더 나은 자들을 미워해 왔다. 아벨의 순종과 확고부동한 신앙생활은 가인에게 끊임없는 견책이었다”(부조와 선지자, 74).


미움과 함께 살아가는 법


미움이란 이런 것입니다.

아벨처럼 살면서 미움받는 것은, 용기를 내어 예수께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미워하는 것보다 미움받는 것이 더 익숙한 삶,

어쩌면 그것이 미움과 함께 살아가는 법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가인에게도 회개할 기회와 은혜의 시간이 허락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진짜 사랑을 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 그것이 곧 복음이고 기적입니다.

즉결심판하지 않으시고 기회를 주셨음에도, 가인은 또다시 자기 뜻대로 살았습니다.

어쩌면 그는 예수님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누구보다도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것의 의미를 잘 알았던 가인이 끝내 외면한 것을 보면,

그는 구속의 은혜에 대한 필요성을 알아내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말씀을 통해 구속의 은혜를 조금씩, 조금씩 깨달아갈 수 있는 특권에 감사드립니다.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오늘보다 내일 조금 더 깊이 알게 하실 그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천둥벌거숭이 같았던 생각을 구속의 은혜로 모아 주시고

“예수님 없이는 안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하시니, 그 또한 감사할 뿐입니다.


“예수의 공로를 통하여서만 우리의 죄가 용서받을 수 있다. 그리스도의 피의 필요를 느끼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 없이 그들의 행위로 하나님의 가납하심을 받을 수 있다고 느끼는 자들은 가인과 동일한 과오를 범하고 있다”(부조와 선지자, 73).


미움과 증오의 정신이 대물림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만약 예수님을 닮아간다는 이유로 미움을 받게 된다면,

그 미움을 같은 방식으로 되갚으려 하지 마십시오.

미움이 솟구칠 때, 이 말씀을 기억하며 살아가 봅시다.

사랑으로 반응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승리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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