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를 찾는 시선

새것과 옛것

by 사나래

재물을 소유한 사람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일까요?

글쎄요...

재물을 쌓아두고 살아본 적 없는 제가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렵겠지만, 그 차이는 아마도 “자랑”과 “보관”에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단 재물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는 노력과, 그것을 과시하며 은근히 자랑하고 싶은 마음 말입니다.


말씀은 나만의 보물


재물에는 오랫동안 소유하여 쌓아둔 것 즉 옛것과,

날마다 새롭게 불어나는 것 즉 새것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옛것은 시간의 흔적과 희귀성이 그 가치를 높여줄 것이고, 새것은 남이 가지지 않은 것을 소유했다는 희소성이 척도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재물의 물성은 저와는 거리가 멉니다.

그렇다고 해서 저에게 보물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제자들에게 위탁하셨던 그 보물을 오늘날 우리에게도 위탁하신 예수님 덕분에, 내 마음에도 보물 창고 하나가 자리 잡았습니다.

예수님의 보물은 나누면 나눌수록 더 깊어지고, 더 빛을 발하는 신비한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세상의 보물은 감추고 지킬수록 가치가 높아진다고 하지만, 예수님의 보물은 그 반대입니다. 나눌 때 비로소 진정한 주인이 되고, 함께할 때 더욱 풍성해지는 것이지요.

이쯤 되면 이런 보물을 가진 사람이라면 자랑하고 싶어지는 것도 당연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그 자랑은 과시가 아니라 기쁨이요, 자신감이 아니라 감사입니다. 보물을 품은 이들의 얼굴에는 스스로 빛을 감출 수 없는 은은한 광채가 맺힙니다.

여기까지 듣고 보니 그 보물의 실체가 조금은 더 선명해지지 않나요?

그렇습니다.

그 보물은 아시다시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옛 보물은 우리에게 주어진 말씀이며, 새 보물은 그 말씀 속에서 길어 올린 깨달음이 아닐까요?

그리고 우리가 나누어야 할 보물은 다름 아닌,

그 깨달음이 만들어낸 생생한 삶의 이야기, 바로 우리 각자의 신앙의 여정이 아닐까요?


“하나님과 그분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주리고 목말라했던 경험과 그들이 성경을 연구해서 얻은 결과와 그들이 올린 기도와 심령의 고민과 또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하시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게 된 경험 등을 이야기할 것이다. …진리의 큰 보고(寶庫)는 하나님의 말씀 곧 기록된 말씀과 천연계의 책과 하나님께서 사람의 생애를 취급하시는 경험의 책 등이다. 이들 보고에는 그리스도의 일꾼들이 꺼내야 할 보화가 들어 있다”(실물교훈, 125).


하나님만을 의지하여 깨달은 말씀은 우리가 나누어야 할 보물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서 빛을 발하며 새로운 진리로 다가옵니다.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그 보물은 각자의 상황에 꼭 맞는 깨달음이 되어 가슴 깊이 새겨지고, 결국 전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은혜로 표현될 것입니다.


하염없는 언젠가의 먼 훗날


우리는 누구나 같은 말씀을 읽지만, 그 깨달음은 각자 다르게 스며듭니다.

천편일률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매일의 말씀 속에서 우리가 받을 은혜의 분량만큼,

우리의 삶에 맞는 방식으로 다가오십니다.

이토록 심오한 사랑의 신비를 우리는 최고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날마다 새롭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 깨달음은 겸손하고 통회하는 사람에게 열린다고 하셨으니,

우리가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위해 갖춰야 할 자격은 다른 무엇도 아닌 겸손입니다.

날마다 새롭게 깨닫는 말씀은 결코 지루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 안에 감출 수 없는 기쁨이 되어, 삶을 살아가는 이유이자 힘이 되어 줄 것입니다.


이 체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자랑스럽게 하며, 이 보물을 소유한 행복이 우리 안에서 넘쳐날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언젠가 먼 훗날 만날 그분을 위한 삶이 아니라, 매일의 삶 속에서 그분과 함께 행복을 만끽하는 실제적인 삶으로 우리를 이끌어 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언젠가 만날 예수님을 고대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 언젠가가 지금은 아닌 것이죠.

지금 내가 몰두하는 일들이 모두 정리된 후에야 예수님과의 만남을 가지려 합니다.


좋은 학교에 합격하고 난 이후로,

취업하고 난 다음으로,

사업이 성공한 이후로,

아니면 은퇴한 이후로,

자녀 교육을 마친 이후로,

내 집을 마련한 이후로,

혹은 시골에 삶의 터전을 잡은 이후로….


우리는 이루어야 할 성공에 우선순위를 두고,

주님과의 만남은 ‘하염없는 언젠가의 먼 훗날’로 미룹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과 함께 살아갈 수 없는 현실이어서 그렇습니다.

모두가 스스로 인생을 개척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며,

아직 예수님께 내어드릴 자리가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모습 그대로 예수님께 나아가기가 죄송스럽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먼 훗날에 가서 우리를 만나는 것을 기다리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지금, 이 순간입니다. 먼저 성공을 이루고, 삶이 안정된 후가 아니라 바로 오늘,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우리 모습 그대로, 마치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다정히 우리 곁에 오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항상 주님을 우리 앞에 모시고, 마음으로부터 그분에게 감사와 찬송을 돌린다면 우리의 신앙 생애는 늘 새로운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우리의 기도는 우리가 친구와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형식이 될 것이다”(실물교훈, 129).


그분의 마음을 읽어드리세요


안타까운 이 현실을 벗어나고 싶습니다.

상상력을 다 동원하여 너무 버겁지도, 지루하지도 않게,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분량으로 그분의 마음을 읽어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시려는 그분의 진심을 말이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 속에서 에너지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늘 다음으로 미루고, 먼저 해결해야 할 일들 속에 파묻혀 있을 때도, 그분은 우리 곁에 함께하십니다. 혹시라도 우리가 보화를 잃어버리고, 터진 웅덩이처럼 될까 염려하시며 말입니다.


만약 나의 염려가 그분의 염려를 능가하고 있다면,

잠시 발을 멈추고 심호흡하며 내 옆자리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동안 깨닫지 못했던 새로운 보물이 우리에게 들어올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곁에는 그 보물을 함께 나누기를 간절히 바라는 은혜가 필요한 사람들이 눈에 띌 것입니다.

새로운 보물로 내 눈이 열리면 최고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무궁무진한 은혜를 찾아보십시오.

은혜를 찾는 그 시선 덕분에, 매 순간 새로운 감동의 경험이 차곡차곡 쌓여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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