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박함이 곧 믿음
인생을 살다 보면 때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절박한 순간이 온다.
이때 무엇이 떠오르는가.
우리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눈을 뜨고도 기도하는 순간이다.
일에 몰두하다가도(사실은... 아니 아무것에도 몰두가 안된다.)
생각만 나면 "하나님! 도와주세요" 하는 절실함! 절박함!
하나님 코 앞까지 올라가 아뢰어야 하는 순간이다. 하나님 졸졸 따라다니며 보채야 하는 순간이다.
불안한 순간, 멘붕의 순간이다.
"우리가 믿음으로 그분 앞에 나올 때에 모든 탄원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어간다.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구한 후에는 그것을 받을 것을 믿어야 하며 우리가 이미 받은 것을 인하여 그분께 감사해야 한다. 그다음에 우리는 우리가 가장 필요로 하는 때에 그 축복이 주어질 것을 확신하고 우리의 의무를 행하기 위해 나가야 한다." (DA, 200)
이런 확신의 말씀을 보면 용기가 생기고 응답해 주실 것을 믿고 잠시 평안이 찾아온다.
그런데 나는 연약한 인간이라 갈대처럼 흔들리고 불안한 현실만 자꾸 보인다.
때때로 강할 때가 있지만 자신이 없다.
나는 강하고 씩씩한 사람이라고 스스로에게 자꾸 암시를 주지만 허사가 된다.
사탄에게 들켜버렸다.
오랫동안 내 멋대로 살았더니 사탄이 내 약점을 자기 것처럼 너무나 잘 안다.
이런 위기의 순간에 사탄도 활동을 개시한 것 같다.
내가 말씀을 붙들고 씩씩하게 견디려 할 바로 그 순간, 사탄도 나를 붙들고 주저앉히려고 안간힘을 쓴다.
흔들림 없이 믿고 확신해야 하는데 수시로 갈대가 된다.
지난 몇 개월 전 동생이 위암에 걸렸다는 소식이 왔다.
소식을 들은 이틀 동안 너무나 슬펐다.
눈물이 주체가 안되었다.
그러나 이 가엾은 동생을 살려야 하기 때문에 슬퍼만 할 수 없었다.
그때부터 하나님 코앞까지 올라가서 보채기 시작했다.
예전에 내 동생의 하나님은 내가 믿는 하나님과 다른 분인 것처럼
그렇게 내 동생의 삶에 깊이 개입하시는 하나님을 목격했던 적이 있다.
그런 하나님이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의 동생을 그냥 두실리가 없을 거라는 믿음이 그 와중에 생겨났다.
하나님께서 내 동생을 살려 주셔야 할 이유 몇 가지 목록을 가지고 하나님 코 앞에서 읍소했다.
첫째, 지켜보는 믿지 않는 친척들이 있으니,
둘째, 자식 먼저 보내는 가여운 부모님 만들면 안 되니,
셋째, 어려서부터 주님만 선택하고 선교지로 다닌 우리 올케 미망인 만들면 안 되니,
넷째, 철부지 아들들 천덕꾸러기로 자라지 않도록,
다섯째, 형제들 가슴에 무거운 돌덩이 안고 살아가지 않도록 해 주실 것을 아뢰었다.
이 이유들 중 어느 것 하나 인간의 힘으로 막아볼 것이 없다.
이 절실함이 믿음으로 연결된다.
내 동생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하나님 코 앞까지 가서 보채는 것뿐이었다.
동생이 한국으로 나오고 바로 치료가 시작되었다.
단 이틀만을 슬피 울고 나의 눈물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은혜를 목격한 감사의 눈물로 바뀌었다.
내 동생의 믿음은 자신을 살릴 것이고 내 믿음은 사랑하는 내 동생을 살릴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하나님이 개입하시고 이끄시는 것을 체험했다.
가장 불안한 순간에 떠올랐던 말씀이다.
"이는 약한 데서 내 능력이 온전하여 짐이라"(고후 12:9)
온전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더없이 필요한 약한 순간임을 알게 하시고 말씀으로 만나주셨던 순간이다.
암담했던 그 순간의 절망을 처리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 보이는듯했다.
이는 부족하지만 내 믿음이었다.
천지가 무너지고 걱정하는 가족들의 애가 끊어질 일이었지만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맡기고
내가 기대한 것을 포기하도록 이끄시면서도 평안을 주셨던 이제 돌아보니 참 감사한 순간이었다.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 안 봐도 그리하실 것을 믿었다.
종종 절실함은 곧 믿음이 된다.
많은 분들이 기도로 함께 했고 나는 하나님께 매인 자들은 하나님께서 지키시는 것을 보는 복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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