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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유 Mar 31. 2024

To, 자기 관리와 자기 학대를 헷갈리는 사람들에게.

내가 생각하기에, 한국 사람들은 자기 관리에 대한 환상이 있는 것 같다. 매일 같이 운동을 하는 사람, 일찍 일어나는 사람, 늦게까지 무언가를 하는 사람을 모두 일명 "갓생"이라고 부르며 그것을 추앙하고, 그러한 행동을 따라하고 싶어한다.  나는 사회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에 대한 분석을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가 하는 행동들을 본 사람들은 모두 나에게 "갓생" 이라고 불렀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성적이 좋았고, 나는 대학생이다, 친구 관계가 썩 나쁜 편은 아니었으며, 술을 잘 먹었고, 회사를 하나 운영하고 있고... 사람들은 끊임없이 나에 대해 평가했다.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나도 그 평가들을 받아들였다.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내가 처음 자기 관리를 인식한 것은 우울증 환자가 되고 난 이후다. 우울증 환자의 삶은 '판타스틱'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기 힘든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고, 어떤 날은 음식을 삼키기도 힘들었다. 이런 생활 속에서 정상적인 활동을 하고, 학교를 다니는 게 벅찼다. 하지만? 해야만 했다. 왜? 그야 남들 눈에 나는 성실하고 훌륭한 모범생이니까. 나는 이렇게 그릇된 단추를 끼우는 것으로 자기 관리를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자기 관리는 별 거 없었다. 내가 시작한 자기 관리는 "갓생" 이 아니라 "인간처럼 살기"였으니까. 


솔직히 털어놓겠다. "인간처럼 살기" 위한 자기 관리는 한 달도 버티지 못했다. 나는 매일같이 쏟아지는 학보사의 일과, 나를 갈구는 상사에 완전히 지쳤다. 애초에 "인간처럼 살기"는 나에게 무리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경증도 우울증 환자에서 중증도 우울증 환자가 되었다. 대학교를 쉬었다. 


그 뒤로도 나는 때때로 학교를 쉬었다. 우울증, 공황장애, 양극성 장애... 다양한 정신병리학적 문제가 나를 괴롭혔다. 나는 정신병리학적 문제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포기했다. 내가 "인간적으로" 살려고 할 수록 그 삶이 나를 괴롭혔다. 나는 무언가에 쫓기듯 자기 관리를 했다. 항상 무언가에 쫓겼다. 인간 답게 살기에 쫓겼던 것인지, 사람 답게 살기에 쫓겼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나는 계속 무언가에 쫓겼다는 거다. 


어느 순간, 나는 그렇게 쫓기는 삶이 제법 재미없다고 생각했다.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직접적으로 너무 많은 일을 하지 말 것을 조언한 것도 그 때였다. 나는 내가 했을 때 행복하다고 생각했던 일을 다시 생각해봤다. 학교 근처 박스에서 크로스핏 하고 기숙사로 걸어가는 길이 행복했던 것 같아. 그래? 그럼 운동을 하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내가 좀 멋있는 거 같아. 그래? 그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자. 책 읽는 거 재밌는 것 같아. 그래? 그럼 책을 읽자!


놀랍게도, 그 뒤로 삶의 질은 완전히 바뀌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게 더는 힘들지 않았다. 만약에 내가 아침에 일어나는데 실패했더라도 자괴감이 들지 않았다. 운동을 자의로 시도 때도 없이 하기 시작했다. 운동을 하고 돌아와서 발을 자르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의 통증에도 웃으며 다음 운동을 또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책 못 읽어서 죽은 귀신이 있는 것 마냥 미친 듯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일주일 사이에 10권이 넘는 책을 읽었다. 도서관에 책을 연체해서 다음 책을 못 읽을까 싶어 읽자마자 책을 반납했다. 


나는 그제서야 알아차렸다. 내가 그동안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했던 행동들은 사실 사람 답게 살기가 아니라 그 틀에 나를 끼워맞추며 스스로를 괴롭혔던 거라고. 그래서 그렇게 힘들고 하기 싫었던 거라고.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아직까지는 즐거워서 하는 자기 관리 보다는 자기 학대에 기반한 자기 관리를 하는 사람이 좀 더 많은 것 같다. "갓생"이라는 이름 하에 전시되는 사람들의 일상이 그런 면모를 갖추기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나는 자기 관리와 자기 학대를 헷갈리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사실 자기 관리는 엄청 재밌는 거야. 중독성이 있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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