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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름다운 사람이 '블레싱'인가? 제주에서 만난 위로

2024년도 제주를 추억하며_사진출처: 햇살콩 인스타그램 채널

by 아헤브

10월의 햇살이 찬란하게 쏟아지는 아침, 제주의 바람은 이미 공항까지 우릴 마중 나와 있었다. 살갗을 보드랍게 스치고 지나간 가을바람이 코끝을 찌르는 동안, 맑고 신선한 찬 공기가 폐 깊숙이 조용히 파고드는 걸 그저 가만히 지켜보고 싶었다. 그렇게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아무 생각 없이 머물렀다. 그 순간만큼은 진실로 아무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잠시 후 살랑거리던 바람은 자취를 감추고 거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오감을 자극하기 위해 마중 나온 제주를 향해 나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제주야! 우리 얼마 만이지?" 그 순간 가을의 정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던, 드높은 하늘이 유독 푸르게 보였다. 천연 그대로의 느낌을 온몸으로 만끽하고 싶어, 잠시 멈춰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시야에 들어오는 그 무엇에도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찰나의 행복을 즐기는 동안 이내 눈을 뜨고 싶단 충동이 일었다. 제주에 머무르는 동안 하나라도 더 마음 안에 담아 가야겠단 생각이 새롭게 찾아왔기 때문이다. 묘한 기분이 일었다. 그제야 멀찌감치 카나리아 야자나무의 너른 품이 시야에 들어왔다. 나를 마음껏 환대하는 그 야자나무를 향해 마음의 손을 세차게 흔들고 싶어졌다.


"카나리아야자나무, 우리 오랜만이네. 다시 만나 정말 반가워~"


사진: Unsplash의 Jordan McQueen


카나리아야자나무를 향해 손을 흔드는 찰나,

문득 서슬 퍼런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날의 고통은 여전했지만 적어도 우리는 미소 지을 만큼의 여유는 되찾고 있었다.


하하 호호, 싱글벙글, 깔깔깔


누가 내는지 모르는 사람들의 들뜬 목소리가 주위에서 하나가 되어, 제주의 하늘을 시끄럽게 메웠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지난 육 개월 우리의 고통의 심연이 생각보다 훨씬 더 깊은 차원의 것이라는 사실을 체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곁에 있던 아내와 아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누가 먼저 할 것 없이 각자의 속마음을 꺼내어, 제주 여행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풀어내고 있었다. 무엇을 먹고 싶고, 어디를 가고 싶고, 지난 며칠간 어떤 계획을 세웠는지 미주알고주알 내어 놓기 바빴다. 그들의 얼굴에서 6개월여 만에 되찾은 미소가 보였다.


깊은 안식이 제주의 가을 하늘을 타고 멀리서 우릴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지치고 힘든 세월을 잠시 동안이라도 잊으라는 하늘의 위로가 내려오는 것 같았다. 마치 마른하늘의 소낙비처럼, 눌어붙어 곧 불이 날 것 같은 장작과 같은 마음에 마침내 단비가 내렸다. 어깨를 타고 등까지 태워버린 그날의 지독한 화상은 아이에게 닥친 이후 그 고통을 몇 초 만에 배가 시켰다. 열 살 아이를 순식간에 달궜던 그 뜨거운 물은 얼마나 지나자 응고가 되어 버린 듯, 단단하게 굳어 트라우마가 되었다. 밤마다 찾아오는 불청객은 아이와 내 숙면을 무참히 방해했다. 살갗 어딘가에 닿을 때마다 느껴지는 지독한 통증 때문에 아들은 한참 동안 제대로 돌아 눕지 못했다. 자면서 신음 소리를 내었고, 한 달 넘게 뒤척거리며 제 엄마를 깨웠다. 당연히 잠에서 깨는 건 우리 모두의 일이었다.


끙끙 앓는 아이를 밤새워가며 돌보던 아내의 짙어 가는 다크서클이 점차적으로 커 보이기 시작했다. 그 모든 상황이 원망스러웠지만 이미 일은 벌어진 후였기 때문에 무언가 할 게 없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고통을 느끼면서도 정작 서로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한참 동안 망설였던 것 같다. 그저 마음속으로 앓는 소리를 내뱉을 뿐이었다. 혹여나 서로의 마음을 상하게 될까 봐 나부터 입술에 재갈을 물었다. 겉으로 삐져나오려 하는 고통을 애써 꿀꺽 삼켜 버렸다. 고통은 100도씨의 물이 끓어 오른 그날 밤으로부터 나를 완전히 잠에서 떼어 놓았다. 약을 먹지 않으면 밤을 새우는 건 이후 예삿일이 되었다. 수면약을 먹어도 3시간 이상 자기 어려워졌다.



사진: Unsplash의 Maarten van den Heuvel


어느 날 걸려 온 전화 한 통은 모든 상황을 순식간에 바꿔 놓았다.


지잉~ 지잉~


"형, 저예요~ 요새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기쁨인 좀 어때요? 화상치료는 잘 돼 가고 있어요?"

"한열이구나. 응 치료는 거의 매일 같이 받고 있어... 안부전화 줬구나?"

"네~ 다름 아니라... 얼마 전에 어떤 유명 인플루언서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을 보고 연락드렸어요.

형에게 뭔가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발달 장애인 재활 가정에 쉼과 회복을 선물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하는데,

그간 10년의 긴한 사연을 써 보내면 어떨까 싶어요.

사연을 채택해서, 몇 가정에 제주 여행을 선물한다고 하네요. 형도 한 번 지원해 보세요."

"한열아, 항상 형 생각 해줘서 너무 고마워."

"그런 프로젝트라면.. 누가 되더라도 좋겠는 걸, 누가 될지 몰라도 제주 여행에 가게 되는 가정에 큰 위로의 시간이 되겠다.

형도 생각해 보고 지원해 볼게. 알려줘서 고마워!"


그때는 그 선택이 우리에게 제주를 선물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제주에서 환대하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그간 힘들었던 시간을 뒤로하고, 제주에 오셔서 쉼과 회복의 시간을 잠시 누리세요."


최종 연락을 받게 되었다.


여행 일정을 먼저 선택하라는 메시지가 첨부되어 있었다. 가족회의 끝에 제주 여행은 10월 초로 확정했다. 제주에 우리를 초대한 인플루언서는 햇살콩(sunny_bean)이라는 활동명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일러스트 작가 부부였다. 제주에 정착해 활발한 사역을 하고 있는 부부 역시 알고 보니, 딸의 장애 진단 후에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을 직접 초대해 위로하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러 시작된 프로젝트였다.


아픔이란 씨앗에 물을 주고 볕을 쬐어 주고 싶었던 것 같다. 아픔을 돌봐줌으로 아픔이 스스로를 치유하도록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모두를 이롭게 하려는 뜻에서 블레싱 프로젝트라 이름 지은 것 같았다. 정확한 인원은 모르지만, 적어도 열 가정은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제주로 초대되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화상의 상흔이 채 가시기 전이었지만 우리는 제주로 가서 상처를 치유 받고자 했다. 그동안의 감정과는 사뭇 다른 행복한 표정을 만면에 품고 말이다.




꽃보다 아름다운 첫 번째 사람, 한열은 현직 마술사다. 그는 JC 매직의 대표로서 2007년부터 매직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활동해 왔다. 그는 오랫동안 나와 깊은 형제애를 누렸다. 예기치 않은 사고로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깊은 슬픔에 잠겨 있는 우리 가족에게 그는 마술 같은 제주 여행을 선물해 주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애초에 '블레싱 프로젝트'를 알 수 없었다.


그가 나를 햇살콩 부부에게로 초대했다. 마술사 한열과 작가 햇살콩 부부는 기쁨 이에게 평생 기억 남을

제주 여행을 선물해 주었다. 아이는 짧은 시간 동안 행복감을 만끽할 수 있었다. 숙소와 차량, 가족 스냅사진, 비행기 값의 일부까지 지원받을 수 있었다. 치료를 잠시 쉬고 떠난 제주 여행은 우리 세 가족에게 모처럼만에 온전한 쉼과 회복의 시간이 되었다.




세상에는 타인의 고통을 나의 것으로 여기고, 그들의 아픔을 내가 대신 짊어지겠다는 마음으로, 나눔을 실천하는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고통받고 상처받은 사람들은 결국 그런 행동하는 선한 사람들을 통해 치유를 받는다. 나의 고통의 역치를 넘어설 때, 우리는 쉽사리 무너지지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유일한 동력은 행동하는 선한 이웃을 만날 때 얻는 게 가능해진다. 이 시대는 실로 고통받는 이들이 즐비하다. 저마다의 이유로 슬프고 억압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 아픔과 신음, 괴로움이 바깥으로 꺼내지지 못할 때, 그들은 속으로부터 서서히 사그라들게 된다. 고립되며 마음의 불씨는 점차적으로 꺼져 간다.


다행히 우리 주위에는 여전히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많다. 그들은 어딜 가나 사람을 세운다. 어디서나 사람을 생각한다. 타인의 고통이 줄어들기를 바람으로, 상대의 마음과 형편을 헤아린다. 사람을 진정 행복하게 하는 힘은 오직 사람에게서 나온다. 시시때때로 음울한 뉴스가 매스컴을 수놓을 때, 세상 어딘가에는 여전히 선한 동기를 가진 친절한 사람들이 자기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사진: Unsplash의 Irina Iriser


우리의 시선은 어디로 향해야 할까?


우리를 자극하는 이야기들에 우리의 시간을 쓸 만큼 우리의 삶이 무한하지 않다. 한 번 써 버린 시간은 더 이상 돌아오지 않는다. 우리는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에 먼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어떤 사람들이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인지 먼저 분별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나 자신을 설득해야 한다. 아울러 좋은 것을 보고, 세상의 좋은 면을 계속 경험해야 한다. 좋은 것이란 본질적으로 무엇인지 생각할 시간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좋은 사람을 가까이해야 한다. 돈과 명예, 권력이 우리의 삶에 보탬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유용하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만 하는 절대 가치가 될 수 없다. 그 세 가지는 사람을 아름답게 만드는 유용한 도구이지, 아름다움 자체는 아니다. 누구든 자기 책임을 회피하면 무책임한 사람이 되고 자기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누군가 결국 피해를 입는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단 한 번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는 나의 경험을 통해 다시 한번 이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끊임없이 사람을 살리고, 세우고, 돌보는 사람으로 자라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배우고 사랑하고, 겸손히 나를 낮출 때 우리는 진정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한 줌 노력마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결국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세상을 희망의 향기로 가득 물들일 수 있다. 내가 마음을 먹는다면 우리 모두는 세상에 희망의 향기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나는 희망한다.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것을.


끝으로 단 한 번 사는 인생을 꽃처럼 향기내며 살아가리라 다짐한다. 그리고 그 삶으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1년이 지난 24년 여행을 추억하며..


두 분을 소개합니다.


일반 기관, 단체, 조직, 교회에서 연중, 연말 공연이 필요하신 경우에 아래 사이트를 통해 마술사 한열님을 초대해 주십시오. 한열 님은 일반 마술 공연뿐만 아니라 기독교 마술쇼 등을 진행하고 있으니, 많은 분들의 관심과 사랑을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http://www.jcmagic.co.kr/



https://store.kyobobook.co.kr/person/detail/3001317901

햇살콩 부부는 기독교 계에서 알려진 일러스트, 캘리 작가입니다. 이미 규장 출판사를 통해 여러 책이 시중에 출간되어 있습니다. 앞으로 이분들께 많은 분들의 관심과 사랑을 흘려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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