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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헤브 Apr 27. 2024

16화_진짜사나이(Wild at heart)1부_군대

미국 선교 신문에 실린 아빠와 목사님 성경공부 그룹 사진이야

사랑하는 기쁨아
오늘은 아빠가 "남자다움"에 대해 이야기할 거야
진짜 사나이
아직 이 단어 들어본 적 없는 우리 기쁨 이에게
아빠가 지금부터 차근차근 그 의미를 설명해 줄 거야
자, 이제 우리 두 손 꼭 잡고 아빠 20대 시절로 함께 가보자




다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군입대를 앞둔 시기였다. 당시 카투사(KATUSA: Korean Augmentation To the United States Army)를 희망했고 반드시 가고 말겠다는 집념을 가지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세계 시민으로 살아가겠다는 굳은 의지가 있었고 미지의 세계에 대한 커다란 갈망이 있었다. 2년 2개월 카투사로 복무한다면, 그 이후 삶은 원하는 대로 펼쳐질 거 같았다. 이 세상 어디를 가도 언어적으로, 문화적으로 상대를 이해하고 커뮤니케이션하는데 큰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했다. 카투사 2년은 언어 능력을 구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간절히 꿈꾸면 반드시 이뤄진다 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내 경우엔 그렇지 않았다.


그토록 동경했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원하는 카투사 입대에 실패했다. 속절없이 시간만 낭비한 셈이 되었고, 친구들에 비해 입대가 1년 넘게 늦어졌다. 한미연합 관련 임무 수행을 상상하던 내 꿈은 물거품 되어 바닷속으로 스르륵 자취를 감춰버렸다. 신기루였는지 금세 잡힐 것 같던 그 선명한 꿈이, 내가 언제 그 꿈을 꾼 적 있냐는 듯이 한순간 사라져 버렸다


얼마 후 입영 영장이 날아왔다.


절망적이었다


그러나 받아들여야 할 현실이었고 다 돌아간 시계를 거꾸로 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사진 속 목사님이 들고 있던 성경 공부 교재)



자대 배치를 받고 가보니 해안을 수호하는 육군 부대였다. 낮과 밤 거꾸로 된 올빼미 생활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앞으로 25개월 남았다.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돌아간다는 그 말이 내게 현실이 될 줄 그때는 전혀 몰랐다. 자대 배치를 받고 중대(소대보다 큰 규모로 같은 부대로 분류됨) 대기하고 있을 때 각 잡고 정면을 응시한 채 앉아 있는 것 말고 할 일이 없었다. 중대 선임이 말을 걸면 대답하는 거였고, 아무 말 시키지 않으면 그대로 정면을 응시한 채 일어나라 할 때까지 앉아 있어야 했다. 그런 내게 중대 선임은 책이라도 읽으라 했다. 순진했던 나는 그 말을 순순히 믿었다. 그리곤 건빵 주머니에서 성경을 빼 읽었다. 그 시작을 주님께 맡기고 싶었고 그때 이미 6주 신병 교육대 보다 자대는 훨씬 더 힘들 거라는 걸 직감적으로 예상했던 것 같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성경 읽는 예수쟁이 신병 하나가 들어온다는 소문이 이미 소대까지 퍼졌다는 이야기를 한참 후에 들었다.  


이제 입대 7주 차, 25개월 남은 진짜 군생활 하게 될 소대로 이동했다. 온갖 물건으로 꽉 찬 무거운 녹색 백을 잽싸게 풀어 헤치고 양쪽 어깨에 노란 이등병 견장을 찬 햇병아리 관심사병으로서 삶이 시작되었다.  

입대 전까지 한 번도 밤 새 본 적 없었는데, 첫날 야간 근무를 하며 밤을 꼬박 새워야 했다. 앞으로 내 일은 바다를 지키는 거라 했다. 북한군이 해안가로 침투하고 몇 년 채 지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경계 근무는 F.M으로 수행되어야 한다 했다. 천장부터 내 가슴 높이까지 앞에 아무것 없는 뻥 뚫린 벽돌 초소 안에서 생겨나 처음 본 병장 선임과의 근무는 정말 곤혹스러웠다. 그날 처음 대화를 나눈 병장은 시종일관 내게 욕을 했고 나의 혼을 완전히 빼놓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충분히 예상되는 결과였다


초소 안에서 행동해야 할 모든 절차와 방식이 처음이었던 내게 밤새 이어진 송곳 같던 날 선 공격은 사지를 찌르는 듯했고 얼마 남아 있지 않던 혼까지 모두 빼 버렸다. 지금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데 그 선임은 다음 날 새벽 근무를 마치고 오자마자 모두를 집합시켰다. 땅바닥에 총을 집어 던 지 듯 떨꾸며 너희들 애 교육 똑바로 안 시키냐며 모든 후임들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밤샘 근무에 이은 예상치 못한 고통스러운 아침의 결말이었다. 그 순간 저쪽 편에서 붉은 해가 뜨고 있었는데, 뜨거운 태양 아래 너무나 냉혹한 얼음 같은 시간이 가혹했고.. 다음 선임이, 또다시 다음 선임이 계속 나를 중간에 두고 그 아래 후임들을 쥐 잡듯 잡았다.


그 후로 1년.. 지옥 같은 시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매일 밤 이어지는 밤샘 근무,

초소와 초소 사이는 멀었고, 밤새 초소 안에는 선임과 나 둘 뿐이었다.

마음이 여렸던 나에게는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나날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임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 하나를 듣게 되었다


우리 소대에 내가 들어오기 1년 전, 총기 사고가 있었고 괴롭힘에 못 견디던 병사는 자기 선임에게 총을 쏘고 자기 자신마저 생을 마감시켜 버렸다. 그랬다


그래서 그런 거였다


그 트라우마가 동시 다발적으로 여러 선임들 영혼을 짓밟아 버린 거였다

선임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순간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당하고 있는 고통을 그들도 그대로 겪었을 텐데 왜 그러는 거지? 오히려 혼란스러웠다.

이 모든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중학교 시절 영문도 모르고 겪은 왕따 시절과는 또 다른 참혹한 경험이었다


인정한다. 나는 자대 첫날부터 어리바리했다. 어리바리라는 뜻 그대로 정신이 또렷하지 못해, 전혀 기운이 없어서 몸을 제대로 놀리지 못했다. 그러나 아무 영문 모르고 1년 가까이 당하고만 있던 내 마음에 풀리지 않던 질문 하나가 비로소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내 영혼이 살기에 곤비하니 내 불평을 토로하고 내 마음이 괴로운 대로 말하리라 (욥기 10장 1절)


죽고 싶었다. 너무 오랜 시간 같은 사람들에게 유린당하면서 내 영혼은 곧 질식할 것 같았다. 기회가 되면 하나님 앞에 순교마저 할 수 있는 나라고 생각해 왔는데 큰 오산이었다. 어느 날부터 나는 자살에 대한 강한 충동을 느꼈다. 근무 중 수시로 주머니 안에 들어 있는 수류탄을 만지작 거렸다. 북한군이 해안가에 출몰하면 언제나 공격태세를 취할 수 있어야 했기 때문에 언제나 근무지에 실탄을 가지고 갔고 수류탄 두 발을 양 옆에 차고 다녔다. 실제 상황이 벌어지면 바로 대응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이 죽고 싶었다. 다른 이를 죽일 생각은 없었다. 그저 내가 사라지면 이 모든 고통이 한순간에 없어질 거라 생각했다. 내가 너무 나약하다 생각했다. 다른 이들은 견디는 것 같은데 나는 심적으로 너무 고통스러워했다. 이미 내 영혼은 대답 없는 주님 앞에 크게 절망한 상태였고, 내 마음 괴로운 대로 그분만이 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로 아우성치고 있었다. 밤마다 수류탄을 만지작거리던 나, 죽으면 모든 게 끝이겠지 했던 나, 그러나 생각을 실행으로 옮길 수는 없었다


평생 아들을 위해 새벽 기도하던 어머니,

그 어머니에게 그런 고통을 안겨 드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내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사랑하는 어머니를 기억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 스스로 생을 마감하면 지옥에 가지 않을까 생각했다.

왠지 죽고 나서 생명의 주관자 앞에 서면 할 말 없을 것 같았다. 그냥 마음이 그랬다

그 사실이 맞고 안 맞고를 떠나서 그런 생각이 내 영혼을 이미 잠식하고 있었다




선임들도 피해자였다. 그들도 나와 같은 수모를 당했을 것이고, 고통 속에서 어쩔 줄 몰랐을 것이다. 입대 동기가 생을 마감했을 때 그들 마음도 총을 맞은 것과 다름없었다. 그 심정이 오죽했으랴. 자신들이 당한 대로 하지 않았으면 좋았겠지만, 그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것 같다.


돌이켜 보면 그때 그들은 고작 스물둘, 셋의 나이였다.

오랜 세월이 흐르고 나서야 나 역시 그 상황을 멀리서 바라볼 수 있었다.

그 오랜 시간 내가 느낀 그 고통이 너무 참혹했기 때문에 20년이 지난 지금도 장면 하나하나가 생생하고 분명하게 남아 있는 걸 보면 그때 정말 힘들었던 것 같다.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내 눈이 근심으로 말미암아 쇠하며 내 모든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두워졌나이다 악을 행하는 너희는 다 나를 떠나라 여호와께서 내 울음소리를 들으셨도다 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음이여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 (시편 6:6~9)


교대 근무를 마치고 소초로 들어온 어느 날 새벽, 선임들이 잠들기를 한참 기다렸다

조용히 방문을 빠져나가 남몰래 공중전화박스 문을 열었다. 선임이 깨서 그 광경을 보면 영락없는 고통이 주어질 걸 알았기에 일종의 모험을 감행했다. 생명을 건 침투 훈련이었다


그리곤 깊은 잠에 들어 있던 군종 목사님을 깨웠다.

목사님, 안녕하십니까? 현재입니다
누구라고? 이 늦은 새벽에 무슨 일이니?
...
저 곧 죽을 거 같습니다. 살려주십시오.
다른 곳으로 부대 이전하도록 알아볼 방법이 없을까요?
...
현재야. 힘들구나 내가 기도하마.
그러나 주님께서 너의 고통을 그대로 외면하시진 않을 거다
그러니 참고 조금 더 인내해 보자
전화 끝는다..

어.. 어..


하고 싶은 말을 다 못 했는데,

수화기 너머로 중후한 그 목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야속했다. 더 이상 남은 희망이라곤 없었고 절망 만이 남았다




어떻게든 버텨야 했다. 비록 하나님은 그 존재를 감춘 지 오래되었지만, 내게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었고 그간 견딘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이대로 죽을 수는 없었다.


최선을 다했다. 일요일 교회를 가기 위해 남보다 먼저 움직였다.

인정해 주든 말든, 내 몫을 하려 했다. 그리고 정말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았다

주일에는 백사장에서 작업을 해야 했기 때문에 주일 예배에 가기 어려웠다

힘을 공급받을 곳이 없어 내 영혼은 이미 바닥까지 바싹 말라갔고, 내 내면의 바닥엔 껄끄러운 모래만 가득했다

내가 봐도 나는 선임들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어리숙한 후임이었다. 너무 긴장에 긴장을 거듭하고 살았더니 말귀를 못 알아 들었다. 매일 치이고 치였더니 생각이란 게 잘 되지 않았다. 지나치게 소극적이 되었고 위축되어 있었다. 누가 건드리면 금방 울음 터트릴 기세였다.  


그렇지만, 나는 계속 기도를 드렸다. 끝까지 견디겠다 마음먹었다. 부대 회식이 있을 때는 술 취한 선임을 대신해 불침번 근무를 오래 서거나 내가 해야 할 일을 찾아 하려 했다. 그러면서도 나에겐 나만의 고집이 있었다. 그토록 갈굼을 당하면서도, 부대 회식 때 선임들이 주는 술을 정중히 거절했다. 술을 마시는 대신 선임 대신 불침번 근무를 더 서겠다 말했다.


...

상병이 되기 얼마 전, 제대를 얼마 앞둔 선임과 초소 근무를 나가게 되었다.

그 선임이 아무래도 나를 콕 집어 저 아이와 근무를 나가겠다 한 것 같았다.

행정병이어서 바깥 초소 근무를 설 이유가 없었는데 그가 자원한 것 같았다


한 겨울 천장부터 가슴까지 앞이 뻥 뚫린 초소 안에서, 그날도 칠흑같이 어두운 밤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파도는 끊임없이 들어오고 나가고를 반복하고 있었고, 흐릿한 달빛 아래 파도 소리만이 가득했다


철썩철썩 


내피까지 다해 7~8겹을 덧대어 입은 상태로 창이 없는 그곳에서 혹독한 추위를 밤새 견디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가만히 있던 선임이 입을 열었다


현재야. 힘들지?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힘들잖아. 다 안다. 자식아. 너 힘든 거 다 안다고
.. 저 괜찮습니다..
그런데 있잖아. 그거 알아 나는 너를 좋게 보고 있다
네?..
네가 얼마나 성실한지 알고 있고
네가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알고 있어
네가 하는 행동을 보면 알아
..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병장님
... 너 생일이 언제랬지?
이때입니다.


그날 밤 처음으로 따뜻한 대화를 나눴다.

입대 1년 만에 나눈 대화 다운 대화

영하 20도를 넘는 혹한의 추위였지만 정말 춥지 않았다.

얼어붙은 내 영혼에 다시 뜨거운 태양볕이 내리쬐기 시작하면서 죽어 있던 마음이 소생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달이 흘렀을까..

아무도 모르는 생일 아침, 나만이 알고 있는 내 생일을 속으로 가만히 자축하고 싶었다


밤샘 근무를 마치고 평상시처럼 씻고 오전 잠을 청하기 직전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무의식적으로 관물대를 열었다


어 이게 뭐지?

분명 내 관물대였다

다시 관물대를 닫아 재차 확인했다

분명히 내 관물대 안에 보지 못하던 책이 5권 꽂혀 있었다 

한비야 여행기였다. 그날 근무지에서 했던 대화가 갑자기 떠올랐다

여행을 좋아한다 말했던 이야기, 책을 좋아한다 했던 이야기


사실 나는 책이 너무 읽고 싶어, 밤샘 근무를 마치고, 아침잠을 들기 전,

새벽 교대 근무를 들어와서 잠을 자야 할 시간에, 20분씩 책을 몰래 읽었다

제대할 때 세어보니 150권 정도 읽었다. 그만큼 간절했었나 보다




책 맨 앞 편에 편지가 적혀 있었다

생일 축하한다 현재야..

거기서 울 순 없었다.

다른 선임들이 바로 곁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용히 자리를 피했다.

화장실로 들어가 한참을 울었다. 내 입을 틀어막고 한참 펑펑 울고 나왔다

내 눈이 부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자살하려는 생각을 밥 먹듯 먹던 내게, 사는 동안 그토록 깊게 만난 하나님은 군대에 없다 거의 확신할 즈음에

이해되지 않던 큰 그림의 조각이 그 첫 번째 퍼즐을 맞추었다


하나님이 일하고 계셨다

내가 부인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그분이 갑작스레 내 앞에 나타나셨다

믿지 않는 한 사람을 사용함으로

내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셨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협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로마서 8장 28절)

.

.

.


그날부터 양상이 바뀌기 시작했다.

마음 깊은 곳에서 회복 신호탄이 울렸다

그 병장 선임은 가는 곳마다 나를 괴롭히는 후임 선임들을 제지하였다

앞으로 더 이상 현재를 괴롭히지 말라고, 그러면 너희 군생활 꼬일 줄 알라고

그는 나에 대한 인식을 적극적으로 바꿔주었다

내가 얼마나 노력해 왔는지를, 다른 선임에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이어 다른 선임들 태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여전히 전적으로 나를 좋아하진 않았지만 고삐를 풀어주기 시작했다

내게 농담을 걸고, 잘해주기 시작했다.


나도 마음이 해갈되면서, 여유 있어지면서, 머리가 잘 돌아가기 시작했고 선임들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관계 개선이 이뤄졌다. 선임의 은혜였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그 하나님이 선임 한 명을 통해 일하고 계셨다.

나는 그게 감사해서, 그 사실이 믿기지 않아서 남몰래 울고 또 울었다


그리고 얼마 후 그 많던 선임들이 한꺼번에 제대를 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선임들은 내게 미안하다는 말을 직접 남기고 사회로 나갔다


그때 이미 나는 상병이 되어 있었다


두 어깨에 녹색 분대장 견장을 찬 소대 내 몇 번째 선임이 되어 있었다


하나님, 날마다 죽고 싶었습니다
 1년 넘는 긴 시간 속에서 제 생명을 지켜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저를 살려 주셨으니
이제 받은 은혜를 그대로 돌려 드리고자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불쌍한 아들을 도우소서
제대하는 그날까지 나를 이끄소서
나는 여전히 두렵습니다



그 사이 많은 후임병들이 내 밑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늘 어리바리했고, 예전 내 모습 그대로를 보는 것 같았다.


이제 나의 선택만이 남아 있었다.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모든 상황 앞에 내가 키를 쥐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부족한 선임이었지만, 분명한 건 내가 이 상황을 진두지휘할 수 있는 자격과 조건을 얻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두 번째 기적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제 나는 진짜 사나이가 될 채비를 모두 마쳤다






사랑하는 기쁨이 안녕!


아빠 군생활 이야기 듣고 많이 놀랬지? 솔직히 고민했어

얼마나 구체적으로 알려줘야 할지. 네 여린 마음에 상처가 되지 않을지

오래 기도해야 했어. 벌써 그 일이 있은지 20년이 흘렀구나


아빠와 같이 군생활 하던 후임들 마저 모두 40대 아저씨가 되었어.

참 세월 빠르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죽을 것 같은 고통이 계속 이어져도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있었어  

시간이 멈춘 줄 알았는데, 아니 시간이 거꾸로 도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


기쁨아, 고통스러운 시간을 잘 견디고 나면, 그전에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삶의 큰 의미를 느낄 수 있어

내 삶이 정말 소중해진단다. 넌 그런 기회를 이미 얻은 거야.


아빠는 하나님이 침묵하던 1년 넘는 시간 동안 그전에 쌓아 둔 믿음과 신앙을 통해 그 어두운 시간을 견뎌낼 수 있었어. 만약에 아빠가 하나님을 믿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아빠는 지금 이 글을 쓸 수 없었을 거고, 너도 이 세상에 없었을 거야


아빠를 힘들게 했던 삼촌들도 지금은 아빠들이 되어 있겠지. 좋은 아빠로 자기 자리를 지키고 살아가고 있을 거야 그 삼촌들은 얼마나 힘들었겠어. 같이 생활하던 동기, 후임이 자기 생명을 놓아 버렸을 때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겠어.


아빠는 오랜 시간 동안 그 사건들을 조망해야 했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하나님께 묻고 또 물었어. 상처가 너무 깊었거든. 아빠 마음이 너무 아팠거든. 그래서 그 사건을 제대로 해석하고 싶었나 봐.


지난번에 말했지. 사람은 고통의 의미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당한 고통의 강도만큼 다른 누군가를 힘들게 할 수 있다는 거. 부지불식간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이들을 아프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야.


아빠는 더 이상 미워하지 않아.

솔직히 당시는 정말 많이 미웠거든


아빠에게 자기 보는 앞에서 하나님을 욕하고 저주하라 했던 사람도 있었어.

아빠에게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알았기에 빼앗으려고 했던 것 같아.

그러나 아빠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단다.


고통스러운 얼차려를 받더라도, 초소 바깥으로 쫓겨나 밤새도록 장대비 맞으며 온몸 다 젖어 부들부들 떠는 그날 밤에도 하나님께 살려 달라고 부르짖었어.

주님은 아빠 음성을 그래도 듣고 계실 거라 믿고 싶다 울며 기도 했었어


다음에 이어질 이야기는 회복에 대한 이야기야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야기야


진짜 사나이란


자유와 열정, 모험으로 어우러진 삶을 살아가는 남자를 지칭해. 나를 먼저 사랑할 줄 알고, 다른 이를 동일하게 사랑하고 존중하는 사람을 뜻해. 나도 살고 너도 살고 다 같이 살아가자 말하는 대로, 그대로 살아가는 사람을 뜻해


아빠는 그 삶으로 너를 초대하고 싶어. 네가 겪는 지금의 고난이 비록 너에게 이해되지 않는 수많은 질문을 던질지라도, 너는 그 대답을 곧 얻게 될 거야 그리고 아빠가 초대하는 삶으로 들어오면 너는 자유와 열정, 모험으로 가득한 신나는 삶을 살 수 있을 거야


아빠는 준비되었어. 너를 돕는 것으로 내 인생의 소임을 다할 거야

이제 열 살 밖에 안 됐어. 사실 언제고 깨달을 때 시작하면 늦지 않은 거야. 지금이 가장 빠른 거라고


기쁨아 네가 배움이 느려도 괜찮아. 자꾸 시도하는데 서툴러서 속상해도 괜찮아.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너는 진짜 사나이가 될 수 있어

사랑해 아주 많이 사랑해 기쁨아  


이제 다음에는 아빠가 겪은 그 고통 이후에 어떤 회복이 찾아왔는지 그 이야기를 들려줄게.. 조금만 쉬었다 다시 말해줄게 사랑해 기쁨아

  

P.S 마음에 감동이 되신다면 제 글을 몸과 마음이 아픈 분들께 보내주세요 스쳐지나가지 말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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