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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혜정 Sep 11. 2024

마감보다 중요한 건 퀄리티다

-함량 미달의 작업은 최악이다

1장 마인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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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하는 건 기본이다. 약속을 지키는 것도 기본이다. 하지만 후자가 전자를 앞질러선 곤란하다. 마감 약속보다 중요한 건 원고의 퀄리티다.


고스트라이터로 살아가려면 '당연히' 글을 잘 써야 합니다. 글 잘 쓰는 건 '그냥' 기본값이에요. 글을 못쓰면서 계속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잘 쓴다'는 개념은 일반적인 '잘 쓴다'와는 좀 다른 개념이에요. 문장이 신선하고 미려한 것, 물론 중요하죠. 작가란 기본적으로 독창성과 문장력이 탑재되어 있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니까요. 


하지만 내가 쓰는 글에 그 글을 의뢰한 클라이언트가 있다면 사정은 달라집니다. 내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 좋은 글을 썼다고 해도 클라이언트가 'No'라고 말하면 그 글은 사장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TV 광고에 나오는 광고 카피를 상상해 보세요. 해당 광고에 선택된 단 한 줄의 카피를 위해 카피라이터는 분명 그보다 몇 배, 혹은 수십 배 많은 분량의 카피를 썼을 겁니다. 그리고 그 많은 카피들은 최종 선택된 하나를 제외하곤 다 사장됐을 거예요. 아무리 멋진 카피라 해도요.


제가 하는 일도 비슷합니다. 기업 홍보물에 들어가는 글은 철저하게 클라이언트를 위한 글이에요. 사사(社史)든, CEO의 회고록이든, 지속가능경영보고서든 각각의 작업물(책)이 지향하는 목표가 있어요. 그 목표에서 벗어난 글은 아무리 아름다운 문장이라도 배제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쓴 글이지만 내 글은 아닌 셈이지요. 


처음에는 이 개념을 혼동하는 바람에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어요. 애써 쓴 글을 자꾸만 수정해 달라고 하는 클라이언트를 보며 '제정신인가? 저렇게 고치면 더 후져지는 걸 왜 모르지?'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 때로는 '내가 쓴 게 더 낫다'라고 고집하며 수정을 거부하고 버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다 소용없는 짓이라는 걸 깨닫게 됐어요. 글 쓰는 사람 입장에선 도무지 이해 안 될 때도 많지만, 클라이언트에게는 그 책을 간행하는 목적이 있고, 신경 써야 할 사람들(주로 결정권을 가진 임원급 이상의 높은 사람)이 있고, 원하는 글의 톤 앤 매너가 있거든요. 이걸 맞추지 않으면 책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책을 간행하지 않는데 글 쓸 사람이 필요할 일은 없겠죠. 고로 결론은 간단했어요.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방향을 충족시키되, 그 안에서 가장 좋은 결과물을 내야 한다는 것! 


물론 제한된 범위 내에서 좋은 글을 쓰는 건 쉽지 않습니다. 끊임없는 공부가 필요하죠. 일례로 기업 홍보 브로슈어 작업을 하기 위해선, 그 기업의 역사와 현황, 미래 비전을 공부하는 게 당연하고, 내부 구성원이나 고객들을 인터뷰하는 일도 잦을 수밖에 없어요. 남들이 볼 땐 쉽게 쓴 글 같아도 알고 보면 엄청나게 많은 자료를 리서치하고 분석하고 이해한 후에 쓴 글이 대부분이죠. 


그나마 다행인 건 제가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호기심이 많고 뭐든 새로운 걸 알고 싶어 하는 욕구도 커서 새로운 작업을 맡을 때마다 그 기업을 공부하는 기쁨이 컸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성향이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법 같기도 해요.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정해진 시간 내에 높은 퀄리티의 원고를 써내는 것입니다. 모든 원고에는 마감이 있어요. 마감 기한 내에 원고를 쓰는 것, 아주 중요하죠. 그러나 기한 내에 만족할 만한 원고를 완성하지 못하는 일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럴 때 마감 기한에 맞춘다고 완성도가 떨어지는 원고를 보내면 절대 안 돼요. 마감보다 중요한 건 퀄리티입니다. 사정이 있어 하루이틀 원고를 늦게 보내는 건 클라이언트도 대부분 이해해 주지만, 글쓴이 자신도 만족하지 못하는 함량 미달의 원고를 클라이언트에게 보내는 건 '나는 이 일이 떨어져 나가도 상관없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나도 만족하지 못하는 원고를 클라이언트가 만족스러워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최소한 내 기준에 '이 정도면 남에게 보여줘도 부끄럽지 않겠다'라는 정도의 원고라야 클라이언트가 OK 할 확률도 높아집니다. 

물론 아무리 내가 만족스러워하는 원고라 해도 클라이언트에게 '까이는' 일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어요. 하지만 클라이언트와의 관계가 틀어지진 않습니다. 그들의 목적에 맞지 않아 수정이 필요한 글일 순 있어도 잘 쓴 글임은 분명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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