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없다고 능력이 없는 건 아니다
1장 마인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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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라이터는 선택받아야 하는 직업이다. 클라이언트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일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없다. 바쁠 땐 한없이 바쁘다가도 일이 없을 땐 하나도 없는 이유다. 일이 없을 때면 늘 끝도 없는 불안과 초조가 밀려오지만, 이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딱히 없다. 그저 불안을 견디며 뭐든 하는 수밖에.
약 15년간 고스트라이터로 살다 보니 깨닫게 된 게 있는데요, 이 일은 글 쓰는 역량(스킬) 못지않게 마인드컨트롤이 중요합니다. 모든 일이 '작업 의뢰가 들어온다 - 작업을 한다 - 작업비를 받는다' 이런 3단계로 진행되기 때문이죠. 이는 바꿔 말하면 클라이언트의 작업 의뢰가 없는 경우, 해야 할 일(돈 벌 일)이 '1'도 없다는 얘기입니다.
선택받지 못한 고스트라이터는 캐스팅 제의가 없는 배우나 마찬가지예요. 최근 연예 뉴스를 보니 영화나 드라마 제작 편수가 현저하게 줄면서 주조연급의 유명한 배우들도 캐스팅 제의가 없어 쉬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다들 개인 유튜브를 개설하고 창업을 하고 취미 활동을 하는 등 대안을 찾는 중이라고 하고요. 그래도 이런 사람들은 먹고사는 문제로 고민할 일은 없을 거예요. 이미 벌어 놓은 돈이 상당할 테니까요.
하지만 저 같은 고스트라이터는 다릅니다. 벌이는 뻔한데, 감당해야 할 고정 지출은 한두 개가 아니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클라이언트의 의뢰가 없다? 이건 정말 심각한 문제입니다. 생존을 걱정해야 할 상황에 처한 거니까요. 그럴 때마다 제 감정은 극단을 오갑니다. '이번 달에 결제해야 되는 금액을 뭘로 메꾸지?' 같은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걱정을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뭐가 문제일까? 왜 일이 없는 걸까?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일이 없으면 어떻게 하지?' 같은 질문을 무한반복하며 정서적 불안 상태에 빠집니다. 게다가 이런 질문은 우울감까지 증폭시켜요. '내 글이 별로인가? 요즘 트렌드랑 안 맞나?'로 시작해 '일도 끊기고 연락 오는 사람도 없고... 나는 이제 쓸모없는 사람인가?'라는 자책으로 이어지거든요. 걱정과 불안, 우울에 완전히 잠식돼 버리는 거죠.
이런 걱정과 불안, 우울의 무한루프에 빠지지 않는 기간(아무 일 없이 쉬는 게 즐거운 기간)은 딱 일주일입니다. 그걸 넘어서면 매일매일이 불안과 초조의 연속이에요. 오직 클라이언트의 의뢰 전화만이 이런 상황을 끝낼 수 있습니다. 다행인 건 고스트라이터로 살아온 지난 15년간 이런 불안한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는 거예요. 운이 좋았던 거죠.
하지만 올해는 예정돼 있던 일들이 계속 엎어지고 지연되는 바람에, 일 없이 보낸 시간이 꽤나 길었습니다. 4월부터 7월까지 무려 4개월이나 '개점휴업'의 시간을 보낸 거죠. 역시나 첫 1개월은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불안과 우울이 무한정 차오르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암흑(?)의 시간 동안 절 지켜준 건 다이어트와 운동이었어요. 몇 년 전부터 꾸준히 해왔던 운동 루틴이 우울과 무기력 속으로 한없이 침잠하던 저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준 거죠.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저는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첫째, 불안과 우울은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일 뿐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것, 둘째, 잠시 일이 없다고 해서 내가 능력이 없거나 쓸모없는 인간은 아니라는 것, 셋째, 불안하고 우울할수록 그런 감정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를 인정하자 마음이 급속도로 편안해졌어요. 일이 없는 건 내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타이밍이 맞지 않았던 것뿐이고, 업계 상황이 나빠진 탓이라 생각하니 불안과 우울 증세도 많이 나아졌습니다.
어차피 이 일은 내가 주도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누군가(클라이언트가) 나를 필요로 하고, 나를 찾아줘야만 할 수 있는 일이에요. 그 사실을 빠르게 인정하고 내게 주어진 시간을 충실히 채워 나가야 합니다. 불안에 휩쓸리지 말고 앞으로의 일을 미리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해요. 어쩌면 이런 긍정의 마인드가 퀄리티 높은 글을 쓰는 것보다 더 중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PS: 요즘 저는 일 대신 운동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친구들과의 만남도 잦은 편이고요. 친구나 남편과 함께 훌쩍 여행을 떠나는 일도 흔해졌습니다. 여전히 일은 별로 없고 '이번 달은 또 어떻게 버티지?'라는 걱정 또한 그대로지만, 마음을 내려놓으니 그럭저럭 살 만합니다. 그래도 바라건대, 이젠 비수기(7~8월)도 지났으니 제발 추석 이후엔 일 의뢰가 많아졌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