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낮'보다는 '자뻑'이 낫다
1장 마인드 편
3
겸손이 미덕인 시대는 지나갔다. 고스트라이터는 선택받는 직업이고, 선택받기 위해선 겸손보다 자신감이 먼저여야 한다. 스스로를 낮추기보다 존중하는 마음을 갖자. 내가 나를 인정해야 남도 나를 인정한다.
클라이언트와의 첫 만남은 일종의 경력직 입사 면접과 유사합니다. 내가 작가(고스트라이터)로서 어느 정도의 경력과 역량이 있는지, 나 자신을 입증해 보여야 하는 자리니까요. 그런 자리에서 나 자신을 낮추는 건 하등 쓸모없는 일입니다. 오히려 그동안 어떤 종류의 작업들을 얼마나 성공적으로 이끌어 왔는지 강력하게 어필해야 해요.
만약 일의 종류가 사사(社史)라면 그동안 사사 작가로서 어떤 작업들을 해왔는지 그 이력을 상세하게 밝히고, 앞으로 해나가야 할 일도 문제없이 잘해나갈 수 있음을 설득해야 합니다. 잘 정리해 둔 프로필과 포트폴리오를 전달해야 하는 건 물론이고, 미팅 전 해당 기업에 대한 공부를 미리 해가는 것도 필수입니다. 홈페이지의 기업 소개와 역사, 최신 뉴스 기사 정도는 일별하고 가는 게 좋겠죠. 만약 CEO 회고록이나 화보집 같은 일이라면 그동안 어떤 분들의 작업을 해왔는지, 그때는 어떤 형태로 작업이 이루어졌는지 등의 경험을 밝히는 한편, 이전에 발간됐던 해당 CEO에 대한 저술이나 기사 등을 미리 읽어두는 게 도움이 됩니다.
자신을 어필하는 것 못지않게 클라이언트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자세도 중요합니다. 면접이란 서로를 탐색하는 과정이니까요. 클라이언트가 나를 면밀히 살피면서 이 사람이 과연 우리 일을 잘해줄 작가인지 판단하는 것처럼, 나 역시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게 뭔지, 내가 그 일을 잘 해낼 수 있을지 판단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그들의 말을 잘 들어봐야 해요. 클라이언트의 요구사항을 명확하게 캐치해야 이후 작업도 수월해지고, 내 요구사항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쉽지 않았어요. 저는 어릴 때 칭찬을 못 받고 자란 아이라 자존감이 많이 낮았거든요. 자신을 낮추는 데는 익숙하지만, 높이는 건 왠지 거짓말 같아서 꺼려질 때가 많았습니다. 누가 나를 칭찬해도 '저 사람이 왜 저러지? 나한테 뭐 바라는 게 있나?'라고 생각할 정도였어요. '칭찬받을 게 전혀 없는 나를 칭찬하는 건 분명 바라는 게 있어서일 거야'라는 편견을 꽤나 오랫동안 간직해 왔던 거죠.
그러니 클라이언트가 "작가님, 글이 너무 좋아요"라고 칭찬해 줘도, "뭘요,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하네요"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그냥 일이 다 끝났으니 듣기 좋은 말을 해주는 거겠지'라고 생각하면서요. 칭찬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니, 일견 겸손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부정하는 반응을 벗어나지 못했던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어요.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곤 생각하지 않지만 나 정도면 괜찮은 사람이지,라는 생각을 갖게 됐거든요. 첫 번째는 고스트라이터로 살아온 지난 15년간 일 의뢰가 끊긴 적이 거의 없다는 것(매년 일정 수준 이상의 매출을 기록했다는 것), 두 번째는 많은 이들이 나를 다른 사람에게 소개해 줄 만큼 신뢰하고 있다는 것 때문이에요. 나를 잘 모르는 이들도 나를 인정하고 끊임없이 찾아주는데, 굳이 내가 나를 부정할 이유가 없다는 걸 깨달은 겁니다.
그 뒤부터 클라이언트의 칭찬에 대한 제 반응은 달라졌답니다. "작가님, 글이 너무 좋아요"라는 칭찬에는 "그런가요? 제가 이번에 뼈를 갈아 넣었거든요"라는 농담 섞인 답변을 하고, "작가님이랑 일하니까 작업이 한결 수월해요"라는 칭찬에는 "제가 어딜 가든 좀 잘한다는 소릴 듣긴 해요"라고 웃어넘기죠. 저 혼자만의 생각인진 모르겠지만, 클라이언트의 반응도 예전보다는 지금이 훨씬 나아요. 웃으면서 살짝 자기 과시를 해주는 걸 자신감의 표현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더라고요. 알고 보면 이 업계도 경쟁이 치열한 분야인데, 괜히 겸양한답시고 나를 낮추는 것보다는 조금 낯이 뜨겁더라도 나의 강점을 어필하는 게 여러모로 나은 선택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자낮'보다는 '자뻑'이 낫다! 제가 이제야 비로소 깨닫게 된 소중한 교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