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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도 리콜이 되나요?

-사소한 수술도 힘들긴 마찬가지

by 최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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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적은 없지만 제목을 듣고 유독 감탄했던 영화 중 하나가 바로 스티븐 프리어스 감독의 2000년 작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입니다. 원제는 'High Fidelity'라는데, 누가 이런 위트 있는 한국어 제목을 지은 건지... 이와 비슷한 계열로는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2003년 작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가 있습니다. 얘는 원제가 'Lost in Translation'이라고 하네요.


제가 갑자기 뜬금없이 영화 얘길 꺼낸 이유는요, 지난 목요일에 하지정맥류 수술을 받으면서 든 생각 때문입니다. 50이 넘어가니 여기저기 안 아픈 데가 없고 슬슬 고장이 나는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닌데, 이럴 때 '몸도 자동차처럼 리콜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고요. 젊을 때의 건강하고 생생한 몸으로 돌아가는 상상을 하니 왠지 모를 설렘도 느껴졌고요. 하지만 현실은 수술 후 지혈용 솜을 붙이고 의료용 압박스타킹을 신은 채 병원 입원실 침대에 누워 있는 모습이라니... 더 괴로운 건 수술한 지 4일째인 지금도 압박스타킹과 기분 나쁜 통증, 수술 부위의 멍과 붓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거예요.ㅠ.ㅠ




사실 다리 붓기와 무릎 뒤쪽 통증이 심해 찾았던 하지정맥류 전문 병원에서 오른쪽 다리에 하지정맥류가 있다는 진단을 받은 후 고민을 많이 했어요. 얘가 운동과 식단 등으로 개선되는 병이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악화되는 병이라고 하고, 레이저 수술 외에 다른 치료 방법은 없다고 하니 수술을 하긴 해야 할 것 같은데, 무섭고 두려워서 수술 예약을 못 잡겠더라고요. '괜히 수술했다가 더 안 좋아지는 건 아닐까?' '요새 다리 상태가 좀 괜찮아진 것 같은데 하지 말고 버틸까?' 이런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하기도 했고요. 제가 회피 유형의 인간이다 보니 하기 싫은 것, 내키지 않는 건 피할 수 있을 때까지 피해보자는 주의라서요.


하지만 어떻게든 버텨보려는 마음은 "수술 예약은 했어?"라고 묻는 남편의 말에 스르르 허물어졌어요. 남편이 지방 출장 가는 날과 겹치지 않게 수술 날짜를 잡았으면 좋겠다는 기색을 보이길래, '그래, 어차피 할 거 미루면 뭐 하냐? 얘기 나왔을 때 얼른 하자'라는 생각으로 덜컥 수술 예약을 해버린 거죠. 그러곤 수술날까지 한참을 불안, 초조, 걱정, 3종 세트에 시달렸답니다. 다행인 건 남편이 수술날 휴가를 내고 병원에 동행해 주었다는 거예요. 겁쟁이 아내를 위해서요.




수술은 수술 부위를 표시하는 것으로 시작됐어요. 초음파로 수술해야 하는 혈관을 찾고, 혈관이 지나가는 부위를 표시하는 것 같더라고요. 표시가 끝난 후에는 수술실로 이동해 소독과 부분마취 후 수액주사를 맞았고요. 준비부터 후처치까지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가 소요되는 간단한 수술이라는데, 수술방 침대에 누워 아무 감각이 없는 다리에 뭔가 처치를 하는 느낌이 썩 유쾌하진 않더라고요. 무서워서 뭘 하는 건지 쳐다보진 못하겠고, 다리는 계속 얼얼하고, 마취가 덜 된 곳을 처치할 땐 아파서 비명이 절로 나고... 간호사가 혹시라도 팔을 맘대로 움직일까 봐 손에 쥐어준 붕대뭉치를 꼭 쥐고 심호흡만 계속했네요. 두려움에 머리까지 어지러워질 무렵 다행히 수술이 끝나 염증과 통증예방 주사 2대를 맞고 의료용 압박스타킹을 착용한 후 간호사님 부축을 받아 입원실로 돌아왔답니다.


병실에선 수술한 오른쪽 다리 아래에 쿠션을 받친 후 쉼 없이 발목운동을 했어요. 그래야 회복이 빠르다고 해서요. 점심은 남편이 사다준 맥도널드 햄버거로 해결했고요. 남편이 옆에 있으니 심리적 안정이 돼서 마음이 좀 편안해지더라고요. 그렇게 마취 기운이 사라질 때까지 병실에서 안정을 취하다가 4시쯤 귀가했답니다. 하지만 수술이 끝났다고 다 끝난 게 아니었어요. 샤워는 수술 이틀 후부터 가능했지만, 아침저녁으로 약을 복용하고 수술 부위에 연고를 발라줘야 하는 데다, 수술 후 일주일간 커피와 흡연 금지, 1~2주간 압박스타킹 착용, 4주간 술과 운동 금지라는 제한 규정이 남아 있었거든요. 그나마 다행인 건 운전은 해도 된다는 거예요.




이제 수술한 지 4일째. 여전히 약을 챙겨 먹고 연고를 발라주고 압박스타킹을 착용한 채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요. 당연히 컨디션은 좋질 않습니다. 조금만 움직여도 금세 피곤해지고, 다리는 붓고 아프고, 수술 부위의 멍은 빠지려면 한참 걸릴 듯해요.


이 모든 상태를 떠올리니 잠시 우울해져선 '50 넘어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다면, 20대에 좀 더 내 몸을 아끼고 사랑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보았지만, 왠지 'YES'란 대답은 나오질 않네요. 그때 지금 이럴 걸 알았다 하더라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래서 '괜한 생각으로 스스로를 괴롭히지 말고, 기왕 수술까지 했으니 회복이나 잘하자'는 쪽으로 선회했습니다. 한동안 고생은 하겠지만, 회복 후 더 나아질 모습을 떠올리면 조금쯤은 힘이 나겠지, 하는 마음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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