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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버멘쉬'가 뭐지?

-철학 입문자의 니체 읽기

by 최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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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얘기지만 오랫동안 철학은 제 관심사가 아니었습니다. '철학은 고등학교 윤리 교과서에나 나오는 따분한 얘기 아냐?'라는 잘못된 생각 때문이었죠. 그런데 최근 출판가에 쇼펜하우어와 니체 열풍이 불면서, 또 (제가 참 좋아하는 뮤지션인) 지디가 '위버멘쉬'라는 제목의 앨범을 내면서, 철학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몇 십 년간 철학은 쳐다도 안 보고 살다가 지디 앨범 제목 때문에 철학과 니체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는 게 어이없긴 하지만요^^). 다행히 제게는 '궁금하면 일단 찾아보자'는 기특한 생각이 탑재돼 있는 지라, 자주 방문하는 온라인 서점에 들어가 니체 관련 책을 뒤져봤어요. 그리고 그중 입문서로 괜찮겠다 싶은 책을 하나 골랐습니다. 바로 <니체의 인생수업>(메이트북스)이에요. 이 책을 고른 이유는 단순합니다. '니체의 대표적 저작 6권 중 현대인의 삶에 도움이 될만한 내용을 엄선했다'는 출판사의 소개글에 끌려서예요. '철학은 잘 모르는 분야이니 잘 아는 사람(편역자)이 가이드해 주는 글을 읽으며 니체에 입문해 보자'는 생각도 한몫했고요.




책은 총 6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1장은 '내 삶의 방향을 제대로 찾기 위한 인생 수업', 2장은 '내가 원하는 나로 살기 위한 인생 수업', 3장은 '삶의 짐을 가볍게 하기 위한 인생 수업', 4장은 '삶과 인간의 본질을 들려주는 인생 수업', 5장은 '인간관계의 비밀을 알려주는 인생 수업', 6장은 '우정과 사랑의 비밀을 알려주는 인생 수업'인데요, 각 장마다 그에 해당하는 니체의 아포리즘과 짧은 에세이가 40편 전후로 수록돼 있습니다. 내용은 이해하기 쉬운 듯하지만 시적 은유가 많이 포함돼 한참 생각해야 되는 것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책 한 권을 다 읽는 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쉬었다 읽고, 또 쉬었다 읽느라 20일 가까이 시간이 소요됐죠. 좋은 내용도 많았지만, 별로 안 와닿는 내용도 많았고요. 그러면서 '편역이 꼭 좋은 건 아니구나. 남(편역자)의 도움을 받아 좀 쉽게 가보려 했는데, 그냥 니체의 책 한 권을 충실히 번역한 책을 읽는 게 나았을지도...'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뭐, 독서도 다른 모든 일처럼 시행착오를 거치며 자신한테 맞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일 테니, 이번 일을 계기로 니체와 그의 철학에 대해 좀 더 심화된 독서를 해볼까 합니다.




다음은 제가 이 책에서 뽑은, 되새겨볼 법한 니체의 아포리즘들이에요.

브런치20250706.jpg 니체의 문제적 아포리즘을 되새겨볼 수 있는 책 <니체의 인생수업>(메이트북스).


남을 뒤따르는 것도 싫고, 남을 이끄는 것도 싫다.

남을 뒤따르는 것도, 남을 이끌고 앞장서 가는 것도 싫다. 남에게 복종? 싫다! 그렇다면 군림? 그것도 싫다!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아무도 두렵게 할 수 없다. 공포를 자아내는 자만이 다른 사람을 이끌 수 있다. 내가 나를 이끄는 것, 나는 그 자체부터가 싫다. 나는 숲이나 바다의 동물이라도 된 듯 잠시 잠깐만이라도 나를 잊는 것을 좋아한다. 웅크리고 앉아 멍하니 허튼 생각에 잠겨 있다가, 멀리서 '집으로 돌아오라'고 나를 유혹해 부르거든 '돌아가자'고 스스로 달래야지


나에 대한 남들의 말들을 모두 신경 쓰면 파멸한다

(중략) 단순하게 '다른 사람들과 화해한다'는 심정으로 참자. 그들이 우리에 관해 말하고, 칭찬하고, 비난하고, 기대하고, 희망한다고 해도 귀 기울이지 말자. 그들이 우리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예 생각도 하지 말자!


거대한 우주를 보듯이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자

모든 별이 순환궤도에서 돌고 돈다고 여기는 사상가들은 그리 심오하지 않다. 거대한 우주를 보듯이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사람, 그 안에 은하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모든 은하수가 얼마나 불규칙한지를 깨닫게 된다. 은하수는 인간을 존재의 무질서와 미로 속으로 인도한다.


어려서도 커서도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편파적이다

대개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자신에 대해 편파적이다. 꾸중을 들을 때는 그것이 진실이라 여기면서, 칭찬을 받을 때는 바보 같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커서도 칭찬을 과소평가하고 비난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마주 오는 바람에 맞선 후에야 알게 되는 것들

찾는 일에 힘들어 지치고 난 후 나는 발견이라는 의미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 마주 오는 바람에 맞선 후에야 나는 모든 바람을 이용해 항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의 고통을 연장시키기에 희망은 최악의 재앙이다

(중략) 인간은 행복의 상자라며 감탄했던 판도라의 상자가 재앙의 상자임을 알지 못했고, 남아 있는 재앙을 가장 큰 행복의 보물로 여겼다. 그것은 곧 '희망'이었다. 그러니까 제우스는 인간이 다른 많은 재앙에 시달리더라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새로운 재앙에 괴로워하길 바랐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제우스는 인간에게 희망을 주었다. 희망은 인간의 고통을 연장시킨다. 그래서 희망은 최악의 재앙이다.


간청은 거절해도 되지만 감사는 거절하지 마라

사람들의 간청은 거절해도 되지만 절대 사람들의 감사를 거절해서는 안 된다. 감사를 거절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깊은 모욕감을 주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들의 감사를 차갑고 형식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거절하는 것이나 다름없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내가 그를 신뢰한다고 해서 그가 나를 믿길 요구하지 마라

내가 그를 신뢰한다고 해서 그가 나를 믿길 요구하지 마라!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상대를 완전히 신뢰하면 상대도 자신을 신뢰해야 한다고 여긴다. 하지만 선물은 그냥 주는 것일 뿐 대가로 권리는 요구하는 것이 아니므로 논리적으로 완전히 잘못된 추론이다.


그가 나와 다르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즐거워하자

타인이 나와 다르게 혹은 정반대로 살고 일하며 느낀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즐거워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사랑이 아닐까? 사랑은 이러한 다름을 지양 혹은 부정해서는 안 된다. 그래야 즐거운 마음으로 다름을 극복할 수 있다. 한 사람의 인격에 내재된 자기애조차 그 무엇과도 뒤섞일 수 없는 이원성 혹은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


결혼 관계가 이어지는 내내 오직 대화만은 계속된다

결혼은 일생 동안 이어지는 대화다. 그러므로 결혼하기 전에 이렇게 자문해봐야 한다. '이 여인과 늙어서도 즐겁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리라 확신하는가?' 결혼에서 다른 것들은 모두 일시적이지만 대화만은 아니다. 대화는 결혼이라는 관계가 이어지는 내내 계속된다.


*위버멘쉬란?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긍정'인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주체로서 살아가는 인간. 니체가 제시하는 바람직한 인간상을 의미한다(네이버 오픈사전 인용). 우리가 흔히 아는 니체의 '초인'이 바로 '위버멘쉬'다.





**지난주 날씨도 더운데 시아버지 제사를 혼자 준비하느라 에너지가 너무 소진되어 제 날짜에 업데이트를 하지 못했습니다. 늦었지만 진심으로 사과드려요.ㅠ.ㅠ

KakaoTalk_20250706_164313159.jpg 지난주 제가 부친 전 5종 세트예요. 눈으로나마 맛보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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