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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승광 Jan 18. 2024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는 왜 발생했을까

연대는 커뮤니케이션에 기반한 도덕원리다 (3)

뒤르켐은 비정상적 유형의 두 번째, 강요된 분업의 예로 계급제도와 카스트제도를 들고 있습니다. 그는 분업의 기준을 결정짓는 것은 단 하나, 능력의 다양성 혹은 노동자의 자질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것 말고는 노동을 분배할 기준이 존재할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 분업화된 사회로 인해 기존의 기득권자들은 출생으로 인해 가져왔던 우월성을 잃어버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합니다. 


다행히도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카스트제도와 같은 형식적 계급은 사라졌습니다. 헌법 제11조 제2항 역시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라고 규정합니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노동자의 신분은 사실상 하나의 계급이라고 하기에 충분합니다. 2017년 우리나라에서도 번역되어 출간된 모리오카 고지의 책 제목 <고용 신분 사회>처럼 고용은 한국에서도 하나의 신분이 되었습니다. 고용이 신분화 되었다는 것은 비정규직의 월급이 적다거나, 노동시간이 많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위험한 작업, 즉 생명 또는 건강을 잃기 쉬운 작업들이 비정규직에 쏠려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016년 일어난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건은 우리가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예입니다. 5월 28일 용역회사 소속 정비원으로 구의역에서 혼자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김모(19)군은 들어오던 열차에 치여 숨졌습니다. 스크린 도어 수리의 작업 원칙은 2인 1조였으나 인력설계가 처음부터 잘못 되어 현실에서는 이 원칙을 지킬 수는 없었습니다. 정비원들은 통상 11명씩 2개팀(A팀 B팀)으로 구성되어 각 팀 휴무자3~4명을 제외하고 상황근무자 1명, 예비대 2명, 지하철 1~4호선 담당자 각 1명씩, 총 4명으로 배치되어 지하철 4개 노선의 49개역을 담당했습니다. 그들은 1일 평균 약 4회, 1주 평균 약 20회 현장에 출동하여 스크린도어 수리작업을 진행하였고, 이에 더하여 1일 평균 6개역의 스크린도어 센서 이상 여부를 점검하는 근무도 병행했습니다. 스크린도어 장애물검지 센서 노후화로 장애신고가 많이 발생하는 상황에서 순수정비인력은 역당 1.21명에 불과했기에 2인 1조작업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서울메트로는 김모군이 소속된 용역회사와 계약 체결에 있어, 안전사고에 대한 모든 책임을 용역회사에 부과하면서도 '스크린도어 장애신고 접수시 1시간 이내 출동 완료, 고장접수 24시간 이내 미처리의 경우 지연배상금 부과' 등의 특약조건을 포함시켜 놓았습니다(이상의 사실관계는 서울동부지방법원 2018. 6. 8 선고 2017고단1506 판결).



ⓒ권우성2016.06.02


우리는 여기서 많은 감상과 분석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딱 한 가지 질문만 하고 싶습니다. "과연 김군이서울메트로의 정규직이었다면 그 사고가 발생했을까?" 단언컨대 아니었을 것입니다. 정규직이라고 했다면 인력 설계부터 제대로 되었을 것입니다. 지연배상금에 쫓기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2인 1조의 원칙을 지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서울메트로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국사회에는 유해하고 위험한 작업을 직접 수행하지 않고 도급을 주는 아웃소싱이 일반화 되었습니다. 자신의 회사 소속 정규직 노동자로 하여금 이와 같은 일을 수행토록 하기 위해서는 인건비 부담 외에도 규정 합리화, 노동조합의 감시 등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이와 같이 번거로운 일을 피하기 위해 외주로 돌리는 것입니다. 간단하게 계약서 한 장으로 말이지요. 쉽게 말해 '위험의 외주화'입니다. 실제로 한국노동연구원의 사업체패널조사를 통해 비정규직 비율별 산업재해율(2005~2017년 평균)을 분석해본다면 300인 이상 사업체 중 비정규직 비율이 75%를 넘는 사업체들의 경우 산업재해율이 대단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김정우, 2021).  위험의 외주화는 노동자의 능력 또는 자질과 관계 없는 현상입니다. 노동자가 속한 일터가 기업 생태계,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본의 먹이사슬 어디쯤에 속해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확률 게임입니다.  그리고 그 어떤 분업도 사망의 위험을 높이는 기준을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다행인 것은 2021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어 이와 같은 위험의 외주화에 제동을 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법은 법인 뿐 아니라 자연인인 경영책임자 등에게  사업 또는 사업장의 안전보건상 위험 방지 의무를 지우는데, 그 의무는 직접 고용 관계 뿐 아니라 해당 업무에 대해 도급, 용역, 위탁을 준 경우에도 적용 됩니다.  권오성은 이 법의 핵심을 '일하다 죽지 않을 권리'의 보장이라고 간명하게 이야기합니다(권오성, 2022). 부디 이 법을 통해 일하다 죽는 이들이 적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뒤르켐이 <사회분업론> 제2권 제1장의 제목으로 삼은 것과 같이 분업은 인간 행복을 확대시키는 데 그 목적이 있으니까요. 



※ 참고문헌

권오성. (2022). 중대재해처벌법의 체계. 새빛.

김정우. (2021). 사업체 특성별 산업재해 현황과 과제. KLI패널브리프, (19), 1-13.

모리오카 고지. (2017). 고용 신분 사회(김경원 옮김). 갈라파고스.

에밀 뒤르케임. (2012). 사회분업론(민문홍 옮김). 아카넷. 

서울동부지방법원 2018. 6. 8 선고 2017고단1506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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