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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승광 Jan 14. 2024

변호사는 단순 작업을 버틸  수 있을까?

연대는 커뮤니케이션에 기반한 도덕원리다 (2)

뒤르켐이 제시한 비정상적 분업 형태의 두 번째 유형은 '강요된 분업'입니다. 이는 현대사회에 어울리는 새로운 규범이 없는 상태에서 특정 계급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다른 계급에 임의로 강요함으로써 형성된 분업입니다. 


분업은 규범을 전제로 합니다. 규범이라는 것이 꼭 거창하지만은 않습니다. 반드시 문서화되어, 누군가의 서명이 있을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여러 명이서 하나의 일을 하기 위해 각자의 업무를 나눈 것, 그 과정이 제비 뽑기가 되었든 가위바위보가 되었든 그렇게 합의된 것이 규범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규범보다는 규칙이라는 말이 더 쉽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그렇게 규칙은 함께 하는 일에 있어서 기능의 중복을 방지하여 일의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달성에 기여하게 됩니다. 분업에 있어서 규칙은 이런 방식으로 기능합니다. 


하지만 모든 규칙에 이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합리적이고 타당한 규칙만이 위와 같은 순기능을 발휘하게 됩니다. 만일 규칙이 합리성 내지 타당성을 결여한다면, 뒤르켐의 표현처럼 규칙 그 자체가 '악의 원인'이 될 소지가 높습니다. 이러한 규칙 하에서 소위 하층 계급은 자신이 부여받은 역할에 만족하지 못하고, 금지된 역할을 소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규칙 그 자체가 사회적 갈등을 촉발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유기적 분업을 위해서는 사회가 개인의 상호작용과 성찰에 개방되어 있어야 합니다. 각자가 자신의 기능을 수행할 뿐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에서 그 수행하는 과정을 점검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세계관을 에릭 리우와 닉 바우어(Eric Liu & Nick Hanauer)는 '정원형 지성(Gardenbrain)'이라는 단어로 표현했습니다(에릭 리우, 닉 바우어, 2017). 정원형 지성은 이 세계와 민주주의를 얽히고설킨 하나의 생태계로 봅니다. 신뢰와 사회자본이 발생하고 소실되며 경제성장이 그물처럼 엮여 있습니다. 이에 따라 행동양식은 계속적으로 변화하며, 그 변화는 네트워크를 통해 끊임없이 퍼져 나가게 됩니다.


사진: Unsplash의Zane Lee


정원형 지성과 대비되는 표현이 '기계형 지성(Machinebrain)'입니다. 기계형 지성은 이 세계와 민주주의를 아날로그시계의 톱니바퀴 같은 기계장치로 봅니다.  이에 따라 세계는 규칙에 따라 대단히 효율적으로 운동하는 존재가 됩니다. 가끔은 규칙에 대한 수정 필요성이 마지못해 제기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을 그 본성으로 갖게 됩니다.     


원활한 유기적 분업을 위해서는 개인의 기능과 역할을 그 자체로 인정하고 사회와 조율시켜 나가야 합니다. 만일 기능 분배를 위한 규칙이 사회연대 의식을 창출하는 대신 갈등을 야기한다면, 이는 과거에 만들어진 해당 규칙이 더 이상 개인의 능력을 적절하게 분배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한 예로 어떤 회사에 신입사원은 1년 동안 문서 정리 및 사무실 관리만 전담한다는 내부 관습이 있다고 해봅시다. 이 관습이 만들어진 계기는 신입사원원의 원활한 조직 적응과 실수 방지에 있었습니다. 입사하자마자 실제 업무를 주도적으로 하기보다는 한 발짝 옆에 떨어져서 선배 직원들의 일처리 과정을 지켜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신입사원들의 시행착오를 줄임과 함께 갑작스럽게 바뀐 환경에서의 부담을 없애자는 목적이었죠. 기업 입장에서는 단기적 효율성을 추구하기보다는 장기적 효과성을 추구하겠다는 목적을 가집니다. 어쩌면 그 자체로만 본다면 대단히 합리적이고 타당한 규칙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모든 신입사원들에게 타당한 것은 아닙니다. 만일 이번에 들어온 신입사원이 로스쿨을 마치고 들어온 변호사라거나 자격시험을 통과한 공인회계사라고 가정해 봅시다. 그들에게도 이러한 규칙을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고 합리적일까요? 또 그렇게 한다고 했을 때 그들이 이 1년, 어쩌면 적응기간이라고도 불릴 수 있는 1년을 잘 버틸 수 있을까요? 아마도 그렇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은 입사 후 몇 주를 버티지 못하고 사직서를 내고 회사를 떠나리라 보입니다. 조직이 개인이 지닌 기능을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 참고문헌

에밀 뒤르케임. (2012). 사회분업론(민문홍 옮김). 아카넷. 

에릭 리우, 닉 하우어. (2017). 민주주의의 정원(김문주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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