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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호랑이 May 23. 2019

[생후54일]공포영화보다 더 공포스러웠던 오늘

'용가리사건'이라고 이름 붙였다.

/생후54일/

지금까지 젖병을 빨면서 이런 일이 없었는데 오늘 저녁 젖병을 유난히 쩝쩝거리면서 빨았다.

빨면서 울기도 하고 짜증도 내고 엄마와 아빠는 그저 배가 많이 고파서 그런가보다 생각했다. 그래도 뭔가 지금까지의 모습과 너무 달라서 마음한켠에 찝찝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왜 이렇게 먹는 걸까?' 먹다가 계속 칭얼칭얼거려서 젖병을 뺐다가 다시 주고를 여러 번 반복했다. 다시 먹을 때마다 공기가 들어가는 것 같았으나 희온이가 열심히 빨고 있으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저 배가 너무 고파서 허겁지겁 먹는가 보다 했다.


희온이는 그렇게 분유를 다 먹고 났는데도 여전히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평소에는 배가 부르면 바로 잘 정도로 순한 아이인데 젖병을 다 비웠음에도 울음이 멈추질 않았다. 뭔가 불편한 게 틀림없었다. 왜 이렇게 힘들어하는지 알 수 없으니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외출 준비를 끝내고, 희온이를 계속 지켜보았다.







모든 상황이 종료된 후 평온해진 희온이







긴장한 채로 몇 분 정도 시간이 흘렀다.

갑자기 희온이의 입과 코에서 분유가 막 뿜어져 나왔다.

마치 괴수영화에서 괴물이 불을 뿜는 모습 같았다. 너무 충격적이었다. 

분수토라는 것을 생전 처음 봤는데 CG인가 싶을 정도로 놀라운 상황이었다. 희온이가 걱정됐지만 너무 놀래서 온 몸이 그대로 멈춰버렸다. 그 순간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멍하니 서있지 말고 얼른 코 흡입기 좀 가져와!"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아내에게 얼른 코 흡입기를 건네주었다. 아내의 온몸에는 게어낸 분유가 가득했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희온이의 코에 남은 분유를 다 빨아냈다. 그 순간 아내의 모습은 마치 반지의 제왕:두개의탑에서 위기의 순간 나타난 백색의 마법사 '간달프' 처럼 보였다. (엄마는 역시 대단하다乃)


희온이도 많이 놀랬는지 토를 하고 나서 잠시 멍하게 있다가 이내 엉엉 울기 시작했다. 아내는 희온이의 옷을 갈아입히고 잘 달래주었다. 나는 주변 사물에 묻은 희온이의 흔적들을 닦아내며 뒤처리를 하기 시작했다. 


모두의 마음이 조금 진정된 뒤에 희온이는 다시 배가 고파졌는지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분유를 타기 시작했다. 젖병에 분유를 털어 넣는데 어찌나 가슴이 조리던지... 무사히 잘 먹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젖병을 아내에게 건넸다. 아내는 희온이에게 젖병을 물렸고 나는 옆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하나님, 제발 우리 희온이 안 아프고 건강하게 해 주세요. 분유도 잘 먹고 소화도 잘 시키고 건강하게 해 주세요.' 이렇게 간절하게 기도했던 때가 언제였을까? 내 모습이 참 이기적이고 간사해 보였지만, 그것보다 아기의 안위가 더 중요했던 순간이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분유를 잘 먹었고 트림도 바로 했다. 아멘이 절로 나왔다.

그제야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잠이 쏙 달아나고 눈이 똘망똘망해진 희온이







모든 상황이 종료된 후 잠자리에 누워 아내와 이야기를 했다.

우린 오늘 저녁에 있었던 일을' 5.17 용가리사건'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나는 아내에게 존경심을 담아 이야기했다.

"와~ 자기 정말 멋지더라. 나는 너무 놀라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던데, 거기서 바로 코에 남은 이물질부터 제거할 생각을 하다니. 역시 엄마는 다른 것 같아!"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아내는 담담하게 내게 말했다.

"글쎄~ 나도 정신이 없었는데, 일단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았어." 아내의 담담한 목소리 위로 얇은 떨림이 함께 들렸다. 아내는 내내 긴장해 있다가 이제야 조금 진정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생각해보니 가장 놀랬을 사람이 엄마였을 것 같다. 그 상황을 직접 보고 놀라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많이 무섭고 겁이 났을 텐데, 용기있게 잘 버텨준 아내가 참 든든하고 고마웠다. 그에 비해서 남편이란 사람은 아내에게 안정감을 주기는커녕 옆에서 어리버리하게 멍하니 서 있었던 것 같아 부끄러워 졌다.


길었던 하루가 지나간다.

시간이 약이란 말은 진리인 것 같다.

불과 몇 시간 전 우리 모두를 놀래켰던 그 일은 과거가 되었고, 우린 그 일로 인해 조금 더 부모란 이름에 가까워 지게 된 것 같다. 유난히 깊은 밤 아내의 손을 꼭 잡고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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