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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템포 Jan 12. 2021

여섯 번째 감사일기,

당연한 것들을 당연하게 보지 않기 

 

1. 영양가 있고 맛있었던 점심과 지루함을 날려준 간식을 먹을 수 있었음에 감사합니다. 

 오늘은 왜인지 밥을 먹고 싶은 날이었다. 보통 밥이 먹고 싶은 날이 별로 없는데, 이상하게 오늘은 알알이 씹히는 쌀알을 꼭 꼭 씹어 먹고 싶었다. 나에게는 다양한 옵션들이 있었지만, 냉동실의 매콤한 곤약 볶음밥이 선택되었다. 이유는 살짝 매운듯한 느낌이 오랜만에 땡겼기 때문이다. 


 얼려진 밥을 프라이팬에 쏟아 놓고 보니 어쩐지 심심한 느낌이 들었다. 조금만 더 방치했다면, 작은 머리에 곰팡이를 잔뜩 피워댈 것 같이 생긴 버섯을 추가하고, 나름 볶음밥의 느낌을 내고자 계란도 따로 구웠다. 계란을 따로 굽는 것은 엄청난 정성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왠지 예쁘게 굽고 싶은 욕심에 신생아를 만지듯 노른자가 터지지 않게 조심스럽기 그지없이 계란을 구웠다. 엄마의 조언대로 썰어서 냉동실에 넣어둔 마늘까지 넣고, 푸릇푸릇한 샐러드를 함께 넣어주니 삼위일체가 완벽했다. 


 요즘 열심히 보고 있는 명상 관련 영상을 시청하며 여유롭게 식사를 시작했다. 예상보다 훨씬 맛있어서 어깨가 1cm는 올라간 것 같았다. 따지고 보면 나의 노력은 크게 들어가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어찌 되었든 내가 한 것이라는 뿌듯함은 숨길 수 없었다. 재택 덕분에 스스로 식사를 차려먹을 수 있는 여유에 감사한 시간이었다. 내가 먹고 싶은 메뉴를, 구애받지 않고 잘 차려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참 좋았다. 


 그리고 미팅으로 당이 조금 떨어질 때쯤, 어제 사고 얼려둔 찹쌀떡과 과자로 간식을 챙겨 먹었다. 보통 때였다면 간식을 먹었다며 자책할 법도 했지만,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그저 이 달콤함을 최대로 즐기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맛있는 점심을 먹고도, 내가 좋아하는 과자를 챙겨 먹을 수 있다니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감사 덕분에 한 뼘 늘어난 내 마음의 공간. 


2. 스트레스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된 것과 좋은 책을 함께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음에 감사합니다. 

 오늘은 출근시간에 아슬아슬하게 일어나 아침 명상을 하지 못했다. 보통 때라면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생각에 풀이 죽거나, 어차피 망친 것 내 마음대로 살아버려야지 하고 브레이크가 고장 난 일톤 트럭처럼 모든 스케줄을 파괴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감사의 덕인지, 명상의 덕인지 그저 출근시간에 늦지 않게 일어나 감사하고, 밀린 스케줄은 점심이나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실제 오늘 명상은 스트레스를 받아들이는 방식을 다룬 영상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 있는 것을 빠르게 빠져나오기 위해 노력한다. 나 역시도, 그 불편한 과정을 잘 참지 못하는 사람에 속하고 이 감정을 어떻게 해서든 없애기 위해 이것저것 하는 사람에 속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깊은 수렁에 빠졌다. 감정은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범주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상에서 제시하는 것은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는, 이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인지'하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화가 나거나 다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을 비정상적으로 보고 고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그럴만한 일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이고, 내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구나- 하고 차분히 내 감정을 응시해주는 것이다. 요즘 새로운 업무에 내던져지며 다시 발동한 말도 안 되는 완벽주의로 스트레스를 받는 내게 감정을 다루는 새로운 방법을 알게 해 주어 감사했다. 


또 틈틈이 친구들과의 독서모임인 소설 살롱을 위한 책을 읽고 있는데, 갑자기 이렇게 꾸준하게 한 달에 한 권이라도 책을 읽게 해주는 친구들과 새로운 관점과 좋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를 깨달았다. 혼자라면 절대 읽지 않았을 것 같은 책들도 읽게 되고, 편협한 사고에 갇히지 않도록 타인의 의견을 듣고 한번 더 생각해볼 수 있게 해 준 것에도 감사하다. 


 3. 추운 날 따뜻한 방 안에서 하루를 보낼 수 있었음에, 운동을 할 수 있는 건강한 신체를 가진 것에 감사합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계단을 올랐다. 

자칫 비장해 보이기도 하지만, 첫 계단을 오르는 나의 마음은 에베레스트 산을 오르는 사람처럼 비장하다. 1층에서는 도무지 그 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오른다. 너무 지루할 때면, 유튜브에서 평소 보고 싶었던 영상을 보기도 하고, 그 마저도 싫어지면 그냥 신나는 노래를 듣는다. 


 한 번에 목표한 양을 다 오르려니 너무 힘들어서 방법을 바꾸었다. 지나친 채찍질은 습관을 만들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이제 나는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씩 쪼개어서 심심할 때가 생기면 계단을 오르는 방식으로 바꾸었다. 효과는 다소 떨어질 수 있지만, 우선 한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열심히 계단을 오르는데 문득 이렇게 자유롭게 운동을 하고 움직일 수 있는 신체에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가지고 있을 때 가장 당연시 여기는 것이 건강이 아닌가 싶다. 조금만 아파서야 비로소 내가 아무렇지 않게 사용해온 이 신체가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운 것인지 깨닫게 된다. 


 오후에는 눈이 펑펑 내렸는데, 계단을 오르며 창밖을 보는 순간 굉장히 신기한 경험을 했다. 

하염없이 떨어지는 눈송이를 보며, 잠시 멈추어 섰는데 노이즈 캔슬링 기능 덕분인지 주변은 한 없이 고요하고 쿵쿵 뛰는 내 심장소리만 들렸다.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았다. 무슨 영화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의 심장소리를 제외하고 모든 소리를 지워버린 그 순간은 오래도록 내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눈이 다시 내린다. 따뜻한 집안에서 하루를 보낼 수 있음에 감사하고, 내가 누리는 모든 행복이 있게 해 준 많은 분들께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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