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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템포 Jan 13. 2021

일곱 번째 감사일기,

꽃을 사는 마음


1. 하루의 시작을 고요한 명상과 좋아하는 일로 시작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합니다. 



오늘 내가 선택한 나의 감정은 '안온함'


 알람이 울리고서도 조금 더 눈을 뜨지 못하고 누워있다가 아침 명상을 위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침잠이 집안 내력이라며 동네방네 떠벌리고 다녔는데, 그건 그냥 게으름에 대한 변명이었나 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안온한 아침시간이 있다고 생각하니 몸은 무거워도 마음은 가볍다. 


 아직 어둑어둑한 바깥 하늘과 일부러 켜지 않은 조명으로 고요한 새벽이었다. 어제 도착한 우드윅 심지에 탁-하고 불을 붙이고 요가매트를 깔고 마음에 드는 영상을 골랐다. 나무 심지 타는 소리가 꼭 장작이 타는 것 같았는데, 불규칙하지만 타닥거리는 소리가 한층 더 새벽의 안온함을 강조해주는 느낌이었다. 


 유튜브에는 다양한 분들이 진행한 명상 영상이 많아서 참 좋다. 고르는 재미가 있는 아침.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영상을 한 번 더 보기로 했다. 여전히 생각을 흘려보내는 것은 쉽지 않아서, 과거의 질척거리는 미련에 잠시 머물렀다가 오늘 당장 해야 하는 일들을 되뇌다가 허리가 굽은 것 같아서 바로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과거와 미래 현재를 오가느라 나의 마음이 참 바빴다. 영상에서 제시한 방법은 어떠한 비난과 평가 없이 그 감정과 생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대신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을 생각해보는 것이었다. 


 어째서인지 미국에서 본 하늘이 떠올랐다. 높은 건물이 없어 하늘의 끝과 시작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드넓은 하늘.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쨍한 그 파란색이 떠오르자 마음이 조금은 안정되는 느낌이 들었다. 나의 잡다한 생각들도 하늘의 푸르름에 빨려 들어 조금씩 희미해지는 그 기분이 좋았다. 이후에도 잡생각이 날 때마다 파란 하늘을 떠올렸는데, 꽤나 효과가 있어 자주 사용해보아야겠다. 

 

온전한 나만의 시간

 명상과 스트레칭을 끝내고, 머리를 감았다. 채 마르지 않은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앉아 저널링을 위한 노트를 펴 보았다. 주로 공책에는 나의 감정들을 적는데, 긍정적인 감정이나 감사한 부분을 적으려고 노력한다. 부정적인 감정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명상의 과정이었다면, 노트에 글을 쓰는 것은 아침의 힘을 빌어 긍정적인 부분을 조금 더 뚜렷하게 만들어주는 과정이다. 오늘의 마무리는, 또 없을 선물 같은 하루를 살게 되어 감사합니다-로 끝맺음했다. 


 그리고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출근시간 전까지 책을 읽었다. 빨강머리 앤을 분명 읽었던 것 같은데, 새로운 느낌이다. 표현들이 눈에 그려지듯이 구체적이고 참신하다. 비록 나의 육체는 허리의 비명을 무시한 채 소파에 녹아 있는 형태지만, 마치 앤이 있는 그곳에 있는 듯한 문장 문장들이 좋았다. 아예 이불을 끌어와서 드러누운 채, 고요 속의 독서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만족감과 온전한 내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감사함을 동시에 선물했다. 


그리고 왠지 허기가 져서 이것저것 먹었다. 아침으로 준비해둔 스무디를 먹고도, 요구르트와 그래놀라를 먹고, 빵을 구워 피넛버터까지 발라 먹었다. 


감정적 허기가 채워지지 않았는지, 혹은 아직 이른 기상이 몸에 익지 않았는지 배가 아주 부를 때까지 먹었다. 오히려 이렇게 먹고 나면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데, 항상 하고 나서야 후회하고 자책한다. 아마 이 부분은 심리적인 부분에 기인한 것으로 생각되어 방법을 연구 중이다. 첫 번째로는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하지 않는 것.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하며, 아침식사를 마쳤다. 


2. 그냥 해버린 나 자신의 의지와 꽃 한 송이가 준 큰 행복에 감사합니다. 

 계단 오르기를 매일 일정에 넣은 요즘, 사실 몸을 이끌고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이 쉽지 않다. 아니 사실 미루고 미룬 다음에 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크다. 오늘 역시 소파에 누워 뒹굴거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머릿속에 생각이 조금씩 차오르는 것이 느껴져 일단 운동복을 입었다. 


 그 이후는 어렵지 않았다. 그냥 내려가서 그냥 했다. 

아마 계단 오르기가 유달리 싫었던 것은 '잘'해야 한다는 것에 있었던 것 같다. '자세를 잘 유지하고,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게, 한 계단 한 계단을 정성스럽게 올라야 해.'라는 노력파의 성실함이 칼날이 되어 이 모든 과정을 재미없게 만들어버렸다. 그래서 그냥 계단 대충 올라도 되니까, 그냥 하자. 빨리 해치우고 싶은 것은 사실이니까 두 계단씩 올라도 좋아, 라면서 스스로를 꼬드겼다. 결과는 대성공. 오히려 3번쯤 계단을 올랐을 때에는 끝까지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다. 역시 이것저것 재는 것보다는 그냥 해야 하는 일도 있다. 깨달음을 얻은 나 자신의 의지를 칭찬하며, 어찌 되었든 첫 발걸음을 뗀 스스로에게 감사한 순간이었다. 

 아침을 과하게 먹어서 배가 채 꺼지지 않아 오랜만에 건물 밖으로 나가 먹고 싶은 것을 사 오기로 했다. 

바깥은 눈이 녹아 질척거리는 물웅덩이와 그 사이를 어떻게든 피하려 종종 거리는 행인들로 가득했다. 나는 재택근무자의 특권으로 더욱 느긋하게 걸었다. 오늘은 날씨가 포근하여 걷기도 좋았다. 신발 사이에 물이 들어가 양말까지 젖어버렸지만,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한 뼘의 여유가 늘어난 기분. 


 돌아오는 길에는 계획에는 없었던 꽃집에 들렀다.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꽃을 사겠다 마음을 먹는 일, 꽃집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어떤 꽃들이 서로 잘 어울릴까 고민하는 것, 포장된 꽃을 들고 나오는 일련의 과정들 모두가 행복이다. 그래서 꽃을 선물하고 선물 받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꽃을 보는 순간 이 모든 것들을 상상하게 되니까. 


 게다가 처음 방문한 꽃집 사장님이 너무 친절하셨다. 꽃 한 송이를 사겠다며 한참을 고민하고 이 꽃 저 꽃 이름을 물어보는, 어쩌면 성가신 손님일지도 모르는 내게 '이 꽃은 금방 시들고, 이 꽃은 부스러기가 많이 떨어져요'라며 하나하나 설명해주셨다. 딸기 바구니에 오이를 덜렁 들고 있는 내게 왜 손에 들고 있냐며 봉투를 주시고, 무거우니 내려놓고 꽃을 고르라는 작은 다정함을 건네주셨다. 아마 나는 이 꽃집의 단골이 될 것 같다. 


 돌아오는 길, 이 한 송이의 꽃을 피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랑이 담겨있을까- 생각했다. 씨앗에서 꽃 한 송이가 되기까지 따뜻한 햇볕, 물, 그리고 예쁘게 피워내기까지 꽃과 사람들의 노력. 오늘 무언가 텅 빈듯한 느낌이 가득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커피 한 잔의 가격에 그 이상을 얻었다. 


3. 맛있는 제철과일을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꽃 외에도 신이 났던 것은 딸기를 사 왔기 때문이다. 

여름을 좋아하는 이유는 복숭아 (a.k.a 딱복), 겨울을 좋아하는 이유는 딸기인데, 요즘 먹는 딸기는 더 맛있는 것 같다. 사람들도 대부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지, 마트에 가면 언제나 딸기 코너는 텅텅 비어있었다. 내가 워낙 늦게 장을 보러 가기도 했지만, 왠지 좀 억울한 느낌이 들었다. 


 점심에 나온 김에 맛있는 딸기를 사야겠다는 의지로 가득 찼다. 무언가 결연해 보이는 다짐치 고는 카드 하나 딸랑 들고 나온 가벼운 차림새였지만. 다행히 일찍 도착한 마트에는 딸기가 잔뜩 있었고, 심지어 할인도 하고 있었다. 의심 가는 상대를 꼼꼼하게 살피는 형사처럼 딸기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살펴보다가, 뭉개지면 갈아먹지 뭐- 하고 마음에 드는 녀석으로 골랐다. 


 집에 돌아와서는 예쁘게 꽃을 꽂아두고 딸기를 물에 씻었다. 손 씻을 때는 곧 죽어도 따뜻한 물을 고집하면서, 딸기를 씻을 때만큼은 얼음장만큼 차가운 물을 쓴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다. 딸기는 사과처럼 박박 씻기도 곤란한 과일이라 씻는 것이 조금 난처하긴 하지만, 내 나름 최선을 다했다 말할 수 있다. 


 대강의 샤워를 끝내고, 먹기 좋도록 꼭지를 잘라 주었다. 칼로 사각사각 썰어내는 것도 꽤 재미있는데, 사과를 깎기 싫어 대충 베어 먹는 것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사과야 미안해). 내가 싫어하는 하얀 부분을 마구 잘라낼 수 있는 것도 흡족한 부분이다. 엄마가 잘라낸 꼭지들을 보았다면 분명 한 소리를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왠지 부자 으른의 기분을 느끼는 스스로가 웃겨서 피식했다. 


그리고 예쁜 도시락통에 담아 켜켜이 냉장고에 쌓아놓으니 겨울철 곰이 된 것 마냥 마음이 두둑해졌다. 접시에 담기도 전에 한 두 개를 집어 먹었다. 찌릿하게 달달하면서도 새콤한 겨울의 맛. 색에도 색깔이 있다면, 딸기의 단내는 분명 핑크색일 것 같다. 맛있는 딸기를 먹을 수 있음에 감사했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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