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라는 선물
1. 인생에서 단 하루밖에 없는 '오늘'이라는 선물에 감사합니다.
2021년 새로운 아침 루틴으로 '명상하기'와 '따뜻한 차 마시기'를 시작했다.
어젯밤, 잠을 꽤나 설쳤는데도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목표했던 6시에서 30분 정도 지났지만,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일찍 일어나 새로이 얻은 시간은 목표로 한 명상 이외에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어제 바람이 무시무시하게 불더니 결국 오늘 수도관이 얼어 건물 전체 세대의 물을 쓸 수 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처음에는 우리 집만 그런가 싶어 꽁꽁 얼어버린 수도관을 녹이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얼마 남지 않은 생수를 끓여 싱크대에 부어보기도 하고, 드라이기로 적의 심장으로 추정되는 곳에 따뜻한 바람을 쬐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새벽 댓바람의 노력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고, 같은 건물의 언니 집에서도 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모든 것을 멈출 수 있었다.
재택을 하여 여유로운 마음 덕인지, 이른 기상으로 넉넉해진 시간 덕인지 단수는 내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얼마 남지 않은 물을 끓여 엄마에게 선물 받은 차를 우렸다. 도깨비방망이 같이 생긴 차였는데, 생전 처음 보는 방식의 티백이라 신기했다. 따뜻하게 우린 차를 한 모금하고, 유튜브에서 마음에 드는 영상을 아무거나 골라 요가매트 위에 앉았다.
1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어찌나 많은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떠다니는지. 어떤 때는 영상 속의 목소리를 듣고 있음에도 의미가 하나도 해석되지 않는 순간도 있었다. 나의 뇌는 참 바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 조금은 측은해졌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에 조금 가까워질 때쯤, 명상이 끝이 났다. 조금은 심드렁하며 썩은 집중력에 자책하던 중, 클로징 멘트가 나를 번쩍 정신이 들도록 했다.
당신은 오늘 다시는 오지 않을 오늘이라는 선물을 만끽하실 자격이 있습니다.
오늘 하루하루도 행복에 가까운 하루 보내시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너무 많이 들어 조금은 진부해지기까지 한 이 말이 오늘 왜 내 마음에 와 닿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 하루는, 내 인생에서 다시 오지 않을 날이구나. 머리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깊이 느껴졌고 오늘이라는 시간이 아주 소중하게 생각되었다. 하루를 시작하는 데 있어 이보다 좋은 마음가짐이 있을까,
조금 넉넉해진 마음으로 맛있는 점심을 해 먹었다. 꽁꽁 얼어있는 고기를 녹이는 데에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긴 했지만, 담백하면서도 고소하고 맛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운 점심. 나를 위해 한 끼를 정성 들여 차리는 일은 멋진 일이다.
내게 주어진 선물 같은 오늘의 아침과 식사.
2. 당연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에 감사합니다.
밤새 내린 눈 때문이었을까, 수도관이 꽁꽁 얼어 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
평소 너무도 당연하게 사용해왔던 것이라 당황스럽고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생수로 이를 닦으며, 새삼 얼마 남지 않은 물의 소중함과 내게 주어진 것들이 당연한 것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왜 사람은 잃어보아야지만 소중함을 아는 것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관리실에서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수리하시는 분을 불렀다는 이야기가 들렸고 그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한 시간 정도가 지난 후, 조용하던 수도꼭지에서 콸콸 물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은 사람처럼 기뻤다.
수도관이 안정이 되고, 저녁에는 내가 좋아하는 딸기를 사서 돌아왔다. 향에도 색이 있다면, 딸기 향은 왠지 핑크빛일 것 같다. 포장 용기에서 채 꺼내기도 전에 달달한 향이 코를 간지럽혔다. 콸콸 쏟아지는 물에 딸기를 씻으며, 평소에는 생각하지도 않았던 물의 소중함과 생활의 편리성을 한번 더 실감했다.
내가 무심코 누려온 많은 것들이 그 어느 것 하나 당연하지 않다는 것,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배운 오늘의 고마운 불편.
3. 예쁜 눈을 마냥 행복하게 느낄 수 있게 해 준 많은 이들께 감사합니다.
눈이 펑펑 왔다. 말 그대로 펑펑 왔다.
하늘에서 솜사탕들이 툭툭 떨어지는 것 같은 눈들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따뜻한 지역에서 내내 살아온 터라 눈을 볼 때마다 그저 신기하고 좋다. 마침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시작한 눈이라 왠지 나를 반겨주는 인사 같아 괜히 마음이 몽글몽글 해졌다.
춥다는 가족들의 만류에도 나는 기어이 밖으로 나가 차가운 눈을 한 움큼 집어 들었다. 정신이 아득해질 만큼 차가웠지만, 손에 닿는 그 찌릿하면서도 현실감 없는 차가움이 좋았다. 아직은 따뜻한 손의 온기로 눈을 꼭꼭 뭉쳐 작은 눈사람을 만들었는데, 꽤 귀여워서 마치 조각상이라도 만든 사람처럼 흐뭇하게 웃었다. 물을 사러 간 편의점까지 동행하기도 했으나, 손이 너무 시려 벤치에 그를 남겨두고 돌아왔다.
물을 사서 돌아오는 길에 내리는 눈을 열심히 쓸고 계시는 분을 보았다. 누군가를 위해 언제 그칠지도 모르는 눈을 쓰는 마음. 내리는 눈에 마냥 좋아만 하고 있다가 그 모습을 보고 문득 세상에 감사해야 할 것들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낭만적인 눈 오는 풍경을 사랑할 수 있는 데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고 계시는 많은 분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 문 앞에서 손쉽게 물건들을 받아볼 수 있도록 고생하시는 택배기사님들, 주민들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열심히 눈을 치워주시는 경비아저씨, 얼어붙은 도로를 정비해주시는 분들 생각해보면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내 하루에 있었다.
눈이 시리게 하얀 눈을 보며, 이름도 얼굴도 모를 분들께 마음 깊이 감사함을 느꼈다. 그저 많은 사람들이 무탈하게 내리는 눈을 사랑할 수 있길 바라며, 춥지만 따뜻했던 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