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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봄 Dec 26. 2022

회사에서 구조조정을 했다

나이 많고 재입사한 나는?

구조조정의 핵심안은 정리해고. 전체 인력의 40% 인원감축이 확정됐다.

회사 창립 20주년이 되는 해라며 신년회에서 기분 좋은 일만 있을 거라고 했던 사장이 올해가 다 가지도 않았는데 정리해고를 통보했다.


사실 구조조정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뼈 아픈 과거가 스쳐 지나가서다. 팀이 하루아침에 바뀐 그날! 내 책상에 다른 사람이 앉아 있던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

방송작가로 일할 때 아침 생방송 팀이었던 우리는 메인작가 1명에 서브작가 4명 막내작가 2명으로 총 7명이 한 팀이었다. 처음 시작하는 아침 생방송 프로그램을 기획부터 진행하여 1년을 넘게 꾸려온 팀인데 제작사 국장이 자기 입맛에 맞는 작가팀으로 재구성하려고 우리 팀을 해고한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해고에 어리둥절하고 당황스러워할 시간도 없이 출근과 동시에 퇴근을 해야 했다. 인수인계도 없고 아쉬움이나 억울함을 토로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처음으로 겪어보는 해고 통보는 생각보다 쓴 맛이었고, 그날 밤 술에 취한 나는 제작팀장에게 전화해 해고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책임지라고 소리쳤다. 눈물 콧물 쥐어짜며 하소연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첫 해고를 경험하고 그 후로도 여러 번 비슷한 일을 겪으면서 회사라는 곳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 믿고 일한다기보다는 돈을 받기 위해 일하는 일개미가 되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내 결정으로 인한 퇴사가 아닌 해고되는 일만큼은 겪고 싶지 않아 최대한 조용히 일했다.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회사에서는 이익을 위해서 언제든 내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살아남았다.

어쩌면 1순위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나이도 많고 내 살 길 찾겠다고 퇴사했다가 8년 후에 재입사한 어찌 보면 괘씸한 사원이었으니까! 그런데 해고 대상자가 아니란다. 부장의 그 말을 듣자마자 누가 대상인지 짐작이 됐다. 입사한 지 3개월 된 신입이다. 겪고 싶지 않았던 해고라는 불상사에서 벗어났지만 같이 일하던 동료가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된 것이다.


전 직원의 40%라는 어마어마한 인원이 해고됐다.

고객사의 잿빛 실적 전망에 따라 회사도 덩달아 경영난에 허덕였고 그런 이유로 퇴직을 요구하니 모두 수긍했다고 한다. 그 속이야 어땠든 회사에 부당함을 지적한 사람은 없었던 모양이다. 이게 과연 어쩔 수 없는 일이며 순순히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었을까? 지금까지 나는 스스로 택한 퇴사가 아닌 경우 항상 오너나 인사 담당자에게 따져 물었다. 내가 아닌 동료의 해고에 발 벗고 나섰다가 동반 퇴사를 한 적도 있다. 내가 정의로운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단지 부당함을 참지 못해서였다. 일이 미숙해서, 교체할 인원이 있어서, 회사가 어려워서? 회사에서는 정당하다고 말하는 이런 이유들이 나는 못마땅했고 말도 안 되는 억지로 여겨졌다. 단 한 명의 억울한 사람도 있어선 안 된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난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받아들였다. 회사의 절반 가까운 인원이 경영난을 이유로 썰려 나가는 데도 항변하지 않았다. 사무실에서 같이 근무하던 3개월 된 신입이 인사담당 부장과 면담을 하고 와서 눈물을 흘렸다. 억울하긴 하지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며 점점 더 굵은 눈물을 떨어 뜨렸다. 안타깝고 속상해서 보고 있던 나도 눈물이 났고, 한참을 울었다. 그날 저녁 같이 소주잔을 부딪치며 회사를 욕했지만, 회사 내에선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살아남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없었는데 이번엔 달랐던 걸까?

갈 곳 없고 받아줄 데 없는 나이가 된 나는 이제 부당함에도 침묵하는 정의롭지 못한 인간이 된 걸까?

올해의 마무리가 정리해고로 인한 씁쓸함 뿐이라니… 쇳덩이를 삼킨 것처럼 가슴이 답답하고 몸이 무겁다. 살아남아도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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