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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봄 Oct 22. 2023

그 사람에게 쌍욕을 하게 된 사연

꿈을 가져라! 꿈을 꿀 것이다!!

글을 잘 쓰고 싶다고 했더니 ‘그 사람’을 만나보라고 했다.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해 어느 건물의 지하 계단으로 내려갔다. 분명 건물 안 지하로 내려갔는데 도착한 곳은 한적한 산속에 자리한 게임장이었다. 네다섯씩 쌍을 이뤄 이런저런 게임을 즐기고 있는 시끌벅적한 속에서 그 사람이 다가왔다. 그 사람은 나를 한눈에 알아보고 나를 끌어안았다. 이어 그 사람의 손이 내 허벅지에 닿는 것을 느꼈다.


그 사람의 손을 내 허벅지에 붙인 채로 끌려다녔다. 게임장의 모든 사람들에게 나와 그의 낯 뜨거운 모습이 공개됐지만 어쩐지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 사람의 손이 허벅지와 엉덩이를 더듬는데도 불평 한마디 없이 따라다니는 내가 못마땅했고 부끄러웠지만 글을 잘 쓰고 싶다는 마음 하나만 간직한 채 그 사람의 터치를 방치했다. 반나절이 지나도록 그 사람은 내가 원하는 말은 해주지 않고 추행만 일삼았다. 어느 순간 내가 언짢아하는 걸 느꼈는지 그 사람이 말했다.


“넌 글 쓰지 마. 재능 없어.”

“그걸 어떻게 알아요?”

“보면 알아.”


게임장 입구로 돌아왔을 때 그 사람의 손은 내 가슴으로 향하고 있었다. 내 꿈을 말 한마디로 묵살해 버린 놈이 감히 내 몸을 취하겠다고? 그때서야 뭔가 잘못됐음을 깨달은 나는 그 사람을 세게 밀쳤다. 도랑 속에 고꾸라진 그 사람을 향해 냅따 욕을 퍼부었다.


“야 이 미친 새끼야! 내가 가만히 있으니까 좋아서 그러는 줄 알았어? 더러운 새끼. 네가 뭘 알아? 여자 몸뚱이에만 관심 있는 놈이 글쓰기를 논해? 나쁜 놈. 너 같은 놈한테 뭘 배우겠다고 온 내가 병신이지. 그동안 찾아오는 여자들한테 네가 어떻게 했을지 뻔히 보여서 더 역겹다, 이 새끼야. 다시 한번 내 몸에 손가락 하나라도 대봐. 아주 팔다리를 부러뜨려서 날 평생 원망하면서 살게 해 줄 테니까. 알았어 새꺄?? “


쌍욕을 뱉어내느라 얼굴이 벌게지고 목이 쉬어버린 나를 보며 그가 피식 웃었다.


“웃어? 아직도 내가 우스워?”

“이제 좀 작가 같네.”

“뭐라고? 안 들려 이 새꺄? 네가 뭐라든 이제 다시는….”


그의 묘한 미소를 보며 잠에서 깼다. 아이고 이건 또 무슨 꿈이람… 잠에서 깼는데도 욕하는 소리가 귀에 쟁쟁하게 울렸다. 한 번도 그런 욕을 해본 적 없는 내가 꿈속에서지만 상대방을 코 앞에 두고 그런 쌍욕을 했다는 게 어이없고 기가 막혀 잠시 넋을 놓았다.




인원감축과 임금 삭감으로 뒤숭숭한 회사에서 반년만에 팀 미팅을 했다.

그런 자리에서 되도록 발언을 삼가던 내가 아무 말 대잔치를 벌였다. 다시 생각해도 낯 뜨거워 얼굴을 들 수가 없을 지경이다.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못 하고 두서없이 불평불만만 잔뜩 늘어놨다. 평소 나를 대놓고 무시했던 상사가 퇴사를 앞둔 상황에서 내가 일하는 스타일이 자기와 달라 어쩌고저쩌고 말을 꺼내려고 해서 그의 입을 원천봉쇄했다. “며칠 있으면 퇴사할 거면서 굳이 그런 말은 왜 하는 거예요?”라고.


3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8년 만에 재입사해서 2년을 다녔다.

회사의 사정이 어렵고 그 어두운 사정이 직원들에게까지 물들어 서로 일을 떠미는 상황이 되고, 그러다 보니 일은 많은데 일에 진전이 없는 상황이 견디기 어려워 다시 퇴사하고 싶은 마음이 커지던 때였다. 그래서 이때다 싶어 준비도 없이 그동안 쌓아뒀던 말을 내뱉었던 것이다. 속이 시원한 동시에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보겠지?’라는 두려움도 생겼다. 그래서 그런 꿈을 꿨나 보다. 나는 욕도 할 줄 알고 부당한 것을 참지 못하는 사람인데, 참기만 하고 표현을 못해 화가 쌓였던 것이다.


글을 써서 돈을 벌고, 돈은 못 벌었지만 글쓰기에 올인했을 때는 몰랐다. 내가 무서워하는 게 뭔지.

나는 타인에게 나를 들키는 걸 무서워한다. 내가 얼마나 형편없는지를 알게 될까 봐 두렵다. 그래서 사람을 되도록 자주 안 만나고 만나도 말을 아낀다. 모르는 사람들은 ‘속이 깊다, 다른 사람 말을 잘 들어준다’고 하지만 속내는 다른 것이다. 그 성향은 글을 쓸 때도 유감없이 발휘되어 내가 쓴 글은 솔직하지 못하고 겉핥기만 하는 아주 얕은 지식의 나열 그 이상이 되지 못했다. 어떻게든 나를 드러내기 위해 노력했지만 노력하면 할수록 공포만 커질 뿐이었고, 그럴수록 나를 숨기기 급급했다. 이건 고백이 아니라 사실이며 실제 상황이다. 내가 왜 회사를 그만두고 2년이나 집에 틀어박혀 글공부를 했는데도 진전이 없었는지, 5년 넘게 매일 스터디카페에 다니며 드라마 공부를 했는데도 공모전에서 매번 탈락했는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에세이를 쓰면서도 감출 거 감추느라 포장하기 급급했는지 이제 알겠다.


내 속을 다 보여주고 살 필요야 없겠지만 감추기만 한다고 능사가 아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건강한 삶을 위해서 나는 나를 드러낼 필요가 있다. 내게도 어둡고 습하고 까칠하고 예민하고 음흉하고 비열하고 이기적이고 소심한 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필요 말이다. 겉으로는 좋은 사람인 척, 다 이겨내는 척, 괜찮은 척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웬만하면 져주고 배려하고 참는 건 내 일부일 뿐이라는 걸. 꿈에서지만 쌍욕을 해보니 속이 후련하다는 게 이런 건가 싶다. 현실에서는 사람을 앞에 두고 그렇게까지 욕 할 일이 있을까 싶지만-물론 마음속으로는 백번 천 번도 더 욕한다- 이제부터 욕 좀 하면서 살아야겠다. 이건 어디까지나 나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이지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욕을 못해 퇴사할 일은 없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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