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시봄 Oct 22. 2023

공간이 주는 헛헛함과 풍족함에 대하여

퇴사를 부르는 회사라는 공간

구조조정 이후 회사는 위태했다.

예상대로 매출은 대폭 줄었고 직원 대부분이 6시 칼퇴근이라는 걸 하기 시작했다. 매출이 줄어든다는 건 그만큼 업무가 줄어든다는 의미이니 당연했다. 게다가 임금 삭감이 칼퇴근에 일조했다. 회사에 대한 기대가 삭감된 월급만큼 줄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퇴근한 어둡고 텅 빈 회사를 지킨 건 나를 비롯한 사무실 직원들이었다.


우리 회사 제품을 구매하는 고객사에서는 구매할 제품은 줄었는데 요구사항은 많아졌다. 개발품에 대한 견적 요청이 3배 이상 늘었고(견적을 넣는다고 바로 제품 생산에 들어가는 건 아니니 당장 업무만 늘어난 셈이다), 같은 이유로 매출이 줄어든 고객사에서 단가 네고를 요청해 오면 어떻게든 이윤을 남기기 위해 최소 네고를 위해 머리를 싸매는 날이 많아졌고, 언제 팔릴지 모를 재고 처리를 위해 고객사 구매팀을 구워삶아야 했다. 인원이 줄어 이미 업무량이 늘어난 상태에서 새로운 일거리들이 밀려드니 칼퇴근은 점점 멀어졌다. 그렇게 3개월이 흘렀고 숨만 간신히 쉬며 일하는 날이 많아졌다.


똘똘 뭉쳐도 모자랄 이때에 업무를 미루기 일쑤인 사내 품질부서의 만행(?)이 지속되면서 그동안 쌓인 업무 스트레스가 폭발했다.

인원 감축 이후에 임금 삭감을 이유로 자진 사퇴를 한 직원만 2명이고 며칠 전 사직서를 제출한 사람이 한 명 더 추가된 상황이었다. 당연히 업무가 더 타이트해지기 마련인데, 임금이 줄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직원들이 업무에 소홀해졌고 급기야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일을 미루면서 납품이 펑크 나는 일이 빈번해진 것이다. 납품에 문제가 생기면 사무실에서 구매업무를 담당하는 내가 감당하고 해결해야 할 일이 추가된다. 미리미리 납기 일정을 조율하기만 했어도 폭발은 없었을 텐데, 자신이 감당할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수시로 납기 일정을 미루는 품질부서에 짜증이 났고 결국 품질팀장에게 큰 소리를 치고  말았다. 분노조절장애 진단을 받은 것도 아닌데 분노 조절이 되지 않았다. 나의 분노는 일주일 동안 계속됐다. 분노 조절에 문제가 생긴 이후로 퇴사라는 단어가 스멀스멀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출근하는 게 곤욕스러웠다. 회사 건물만 봐도 구역질이 났고, 사무실에 들어서면 숨이 막혔다.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업무의 압박은 거셌기에 근무시간이 끔찍하게만 느껴졌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연차를 신청했다. 올해 연차 수당도 못 준다는 회사의 방침 때문에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연차를 쓰려고 했지만 업무량에 떠밀려 쓰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특별한 이유 없이 연차 쓰는 걸 싫어하는 부장에게 하루만 쉬겠다고 하자 똥 씹은 표정으로 어디 가냐고 물었다. 회사 대신 수당을 줄 것도 아니면서 왜 매번 눈치를 보게 만드는지 못마땅했지만 대충 얼버무리고 사인을 받아냈다.


회사가 아닌 다른 곳으로 차를 몰아 1시간 거리에 있는 청주의 한옥 카페에 갔다.

시골 구석에 자리한 한옥카페는 인문학 책만 있는 도서관과 같이 운영되는 곳이었다. 건물 밖 풍경만으로도 뜨거웠던 머리가 단숨에 식는 게 느껴졌다. 건물 안에 들어서자 책 냄새가 물씬 났다. 소설보다 인문학 책을 즐겨 읽는 내겐 안성맞춤의 공간이었다. 건물 밖 풍경이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일주일 전 만개했을 벚꽃이 꽃비가 되어 흩날리고, 새순이 돋은 연둣빛 버드나무와 가깝게 보이는 작은 동산의 분홍 산벚꽃까지 봄내음 물씬 나는 풍광이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여름이면 연못을 가득 채울 연잎과 연꽃을 상상하니 더욱 기분이 좋아졌다.


잠시 밖으로 나가 연못이 보이는 벤치에 앉아 햇볕을 온몸으로 맞았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집에서 출발할 때는 미세먼지 가득한 뿌연 하늘이었는데 어느새 옅은 구름이 깔린 파란 하늘이 보였다. 연못 맞은편에는 꽃비를 맞으며 산책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을 보고 있는 나까지 여유가 생겼다. 공간이 주는 이 살랑한 마음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회사는 건물 외관만 봐도 숨이 막혔는데, 그곳에선 숨이 쉬어졌다. 연못의 반영만으로도 미소가 지어졌고, 빨간 외투에 빨간 모자를 쓴 할머니의 산책길이 경쾌했다. 꽃잎이 다 떨어져 붉은 꽃받침과 초록 잎이 섞인 벚나무가 꽃이 만개한 나무보다 예뻤다. 멀리 보이는 교회의 종탑도, 그 옆에 있는 모텔의 지붕도 공간의 아름다움에 힘을 실어줬다.


도서관 1층 한쪽에 있는 카페로 이동했다. 카페에서 보이는 뷰는 역시 연꽃 대기 중인 연못이다. 연못 주변으로 흰나비가 날아다녔다. 얼마 만에 보는 나비인가? 벚나무 위로 참새가 날아다녔다. 얼마 만에 보는 참새인가? 물레방아가 돌아가고 있었다. 얼마 만에 보는 물레방아인가? 물레방아 옆에 선 버드나무 가지가 바람 따라 흔들렸다. 나도 저렇게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을까? 회사에서 난 얼마나 유연한 사람인가? 이리 찍히고 저리 찍혀서 날만 세우는 모난 사람은 아닌가? 내가 공간이고 건물이라면 나는 과연 어떤 느낌의 공간일까? 숨이 막히는 곳일까, 숨이 쉬어지는 곳일까? 헛헛한 곳일까, 풍족한 곳일까?

나라는 공간에는 무엇이 채워져 있나?

일이 척척 진행되지 않으면 도망가려는 도피욕구, 점점 참기 힘든 ‘욱’의 유혹, 돈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허황된 욕망, 탄 원두로 내린 아메리카노만큼 씁쓸하고 정체성 없는 삶의 방향… 열심히 살고 있지 않고 열심히 살아지지도 않아 재미도 없고 공허한 요즘의 내가 우울한 건 아닐까, 외로운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말라비틀어진 가지 끝에 위태하게 매달린 연밥처럼 간당간당한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바람이 조금만 세게 불어도 똑 부러져 연못 속에 풍덩 빠질 위험에 처한 운명인 건 아닌지. 아주 가끔이지만 이런 일탈이 필요한 이유는 엄청난 불안감으로 차 있는 내 공간을 청소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일탈의 장소로 택한 곳에서 일하는 카페 직원들에게는 벗어나고 싶은 공간이겠지만, 나와 이곳을 가끔 찾는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공간의 공기를 바꿀 수 있는 곳이 될 것이다. 내 공간을 어두운 것이 아닌 밝은 것으로 채워줄 그런 곳!


어디선가 백로가 날아와 연못 그림에 한 획을 그었다. 저 백로에게 연못은 밝은 곳이 되어주었을까? 잠시 새의 마음이 되어본다. 또 다른 밝은 곳으로 날아가는 백로를 보며 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공간을 벗어나 또 다른 공간으로 이동할 것이고 그곳에서 또 다른 것을 채우게 되겠지. 그렇게 이것저것 좋은 것들을 채우고 회사로 돌아가면 이전과는 다른 내가 되어 있겠지. 그래도 몇 달은 버틸 힘이 되겠지. 그래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겠지.




이전 02화 회사에서 구조조정을 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