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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봄 Oct 22. 2023

퇴사를 상상하는 일

상상 그 이상으로 기쁜 일

퇴사를 상상하는 일은 기쁘다.

꿈의 주인공이 회사 동료와 상사가 아니어서 기쁘다.

억지로 눈을 뜨지 않아도 억지로 눈을 감지 않아도 되니 기쁘다.

인상 찌푸린 사람들로만 가득한 곳으로 출근하지 않아도 돼서 기쁘다.

동료의 모멸 섞인 말과 과다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니 기쁘다.

적성에 맞지 않는 업무를 억지로 해내느라 쌓인 피로와 작별할 수 있으니 기쁘다.

무책임하고 일을 떠넘기기 일쑤인 상사를 보지 않아도 되니 기쁘다.

내 일이 아니라는 듯 무심한 태도로 일관하는 팀장이 없어서 기쁘다.

좋아하지 않아도 먹어야 하는 구내식당 밥을 먹지 않아도 돼서 기쁘다.

상사가 연습용 골프채를 휘두르는 소리를 듣지 않아도 돼서 기쁘다.

1분에도 수십 번씩 큼큼거리는 상사 옆에 있지 않아도 돼서 기쁘다.

웃기지 않은 데도 웃어줘야 하고 화가 나는 데도 참아야 하지 않아서 기쁘다.

불편한 의자에 앉아 다리가 퉁퉁 붓도록 일하지 않아도 되니 기쁘다.

밀려오는 긴급 건을 해결하느라 오줌보가 터질 것 같아도 참아야 하지 않아서 기쁘다.

하기 싫은 험담을 하지 않아도 돼서 기쁘다.

이해하고 배려할 중요한 사람이 사내에 있는 사람이 아니어서 기쁘다.

업무로 인해 누군가에게 멀리하고 싶은 인간이지 않아도 되는 게 기쁘다.

업무로 인해 미워해야 하는 인간이 생기지 않아 기쁘다.

전화 한 통으로도 충분히 공허함을 느끼게 되어 뭘 해도 컨디션이 나아지지 않는 순간이 오지 않아 기쁘다.

듣지 않아도 될 걸 듣고 보지 않아도 될 걸 보면서 사는 것에 대한 무상함을 느끼지 않아도 돼서 기쁘다.

스트레스 때문에 입은 화려한 옷차림을 보고 데이트 있냐고 묻는(애인 없는 거 뻔히 알면서) 상사의 비아냥을 듣지 않아도 돼서 기쁘다.

사놓고 입어보지 못한 회사와 맞지 않는 독특한 옷과 신발을 뽐낼 수 있어 기쁘다.

매일 조금씩 쌓인 스트레스가 더 이상 감당 안 될 크기가 됐을 때 엉뚱한 곳에 화풀이하여 그 불똥으로 더 힘들어지는 일이 없어서 기쁘다.

경영진의 친인척에게 돌아갈 몫을 번다는 생각으로 일하지 않아도 돼서 기쁘다.

더워도 에어컨을 틀지 못하고 추워도 난방을 하지 못하는 눈치 게임을 안 해도 돼서 기쁘다.

출근하는 이유가 생계를 위해서가 아니라 기쁘다.

웃으면 웃는다고 화내면 화낸다고 짜증 내는 상사의 일관성 없는 태도에 비위를 맞추지 않아도 돼서 기쁘다.

눈치 보며 연차를 쓰지 않아도 돼서 기쁘다.

좋아하는 피아니스트의 공연 티켓을 예매하기 위해(보통 평일 오후 2시 티켓팅 창이 열림) 연차를 쓰지 않아도 되니 기쁘다.

과도한 게임 중독자와 헛물이라 여긴 비트코인에 올인하는 사람들을 스트레스 해소제이니 이해하자고 여기지 않아도 돼서 기쁘다.

기분 전환만 된다면 마약이든 문신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위험한 상상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기쁘다.

피똥을 쌀 망정 가장 매운맛 불닭을 먹어야 화가 풀릴 것 같은 기분을 느끼지 않아도 돼서 기쁘다.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서 소주 650ml가 아니라 360ml만 마셔도 되니 기쁘다.

스트레스를 푼다고 술을 마시고 운동을 하고 고성을 지르지 않아도 돼서 기쁘다.

과중한 업무를 처리하느라 선약을 지키지 못하는 일이 없어서 기쁘다.

하루종일 기분이 언짢은 채로 지내지 않아도 되니 기쁘다.

위로와 격려를 기대하지 않아도 돼서 기쁘다.

성과나 보람이라는 단어와 재회할 희망이 있으니 기쁘다.

햇볕 좋은 주말에 피곤하다고 집 안에 틀어박히는 게 아니라 고민 없이 집 밖으로 나갈 수 있어 기쁘다.

가고 싶은 곳에 가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도 되니 기쁘다.

많은 긍정적인 감정들을 되찾을 수 있으니 기쁘다.

퇴사라는 단어와 퇴사할 수 있으니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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