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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데를 콕 찔러야 상처가 아문다

글이 주는 위로

by 다시봄 Mar 24. 2025
아래로
연애해라!


10년 전 드라마 공부를 시작했을 때 방송작가교육원의 담임선생님이었던 작가님은 내게 필요한 게 ‘사랑’이라고 하시며 이렇게 써주셨다.




마지막 연인과 헤어진 후 미친 듯이 배움에 몰두했다.

평소보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많은 모임을 만들고 매주 서울에 다니며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만나는 사람들과 술을 마시며 밤을 지새웠다. 혼자 틀어박혀 있기를 좋아했던 내가 밖으로 나돌기 시작했다.


쉼 없이 배우고 사람 만나기를 반복하다가 드라마 작가가 되기 위해 한국방송작가교육원에 등록했다. 첫 수업을 듣고 기초반 전문반 연수반 창작반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나는 과연 어떤 글을 쓰는 어떤 작가가 될지 생각이 많아졌다. 기초반 담임을 맡은 선생님은 옆집 아저씨 같은 구수한 말투를 쓰는 드라마 작가였지만 ‘촌철살인’ 한방이 있는 날카로운 분이었다.


글은 아픔에서 시작된다.


일주일에 한 번 수업 이후엔 선생님과 교육원 근처에서 술을 마시며 수업보다 더 유익하고 재밌는 번외 강의를 들었다. 선생님 말로는 그동안 많은 작가지망생들을 가르쳤지만 번외 강의 편 참석률이 좋은 기수는 단연 이번 기수라고 했다. 선생님과 1:1로 대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기에 나도 빠짐없이 참석했다. 글은 아픔에서 시작된다는 명언도 그 자리에서 들었다.


그리고 합평과 함께 마무리된 마지막 수업.

단막극 한 편을 완성하는 게 목표인 기초반 수업에서 내가 쓴 드라마는 가족극이었다. 합평은 무난하게 넘어갔고 다시 번외 강의실로 이동했다. 합평을 당한 대상자에게 꼭 필요한 조언을 해주기로 유명한 선생님이었기에 내 글에 대해 뭐라고 하실지 기다려졌다.


내게 먼저 와서 한마디 해주실 줄 알았는데 자꾸만 뜸을 들이시는 선생님의 의중을 알 수가 없어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가 술이 얼큰히 취해버렸다. 그제야 선생님은 내 옆에 앉아서 내 글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넌… 사랑을 해 인마!

네? 갑자기 사랑은 왜요?

니 글엔 사랑이 없어. 메말랐어. 아주 말라비틀어졌어. 


난 누구보다 사랑이 많은 사람인 줄 알았다. 마지막 그놈에게 버림받긴 했지만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랑 충만한 상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선생님은 로맨스도 아닌 가족극을 보고 내 안에 사랑이 부족함을 느낀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한마디 대꾸도 못하고 있는 사이 선생님의 사인이 담긴 수료증이 내 손에 쥐어졌다.


“연애해라!”


그 한마디를 보자마자 눈물이 쏟아졌다. 번외 강의실의 분위기가 싸해질 정도로 눈물은 멈출 줄 몰랐다.


마지막 연인과 헤어진 게 5년 전이었다.

상처를 극복했고 그 사람 없이도 잘 살 수 있게 되었다고 믿으며 살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스스로 방어벽을 쳐 오히려 다른 사랑의 문까지 굳게 닫아버렸나? 옭아맨 것도 모르고 다 괜찮아졌다고 착각했나? 다시 연애하지 않으면 메마른 사랑이 적셔질 일은 없는 건가?


선생님은 하염없이 우는 내게 미안했는지 “글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넌 연애만 하면 끝난다” “지금 그 마음으로 다시 글을 쓰면 얼마나 좋은 글이 나오겠느냐”며 위로하고 격려하셨다.


사실 눈물이 난 이유는 선생님의 말이 서운하거나 야속해서가 아니라, 남들은 보지 못했던 내 아픔을 선생님이 알아봐줬기 때문이다. 아픈 데를 콕 찔러서 아닌 척했던 마음을 깨닫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글을 쓰면 많은 게 드러나고 그 안에 많은 게 담긴다.

고민과 상처와 슬픔과 트라우마 등등. 그게 내 눈에는 안 보여도 글을 읽는 사람의 가슴엔 느껴진다. 지금 어디가 아픈지, 뭘 원하고 있는지, 필요한 게 뭔지.


내 속을 들키는 것 같아 가끔은 글 쓰는 게 두렵기도 하지만, 글을 쓰지 않았다면 알 수 없었을 덜 아문 상처를 발견했으니 글을 쓰지 않을 수가 없다.


연애하라는 조언은 아직까지 실현하지 못한 미션이지만, 지금도 글을 쓸 때마다 기억한다.


지금… 어디가 아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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